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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단절된 맥박을 고동치게 하라 | 안병찬 01 시사저널의 추억 고지식해 아름다운 사람들 | 김상익 뉴스 전쟁터에서 띄우는 '편집장의 편지' | 서명숙 "네, 이문재입니다" | 이문재 시사저널은 어떻게 '명품'이 되었나 | 성우제 '불발'로 끝난 히로뽕 체험 기사 | 박상기 어떻게 지킨 시사저널인데 | 백승기 02 시사저널 사람들 아직도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이상한 기자들 | 문정우 내가 만난 김훈과 서명숙 | 김은남 시사저널 문화부라는 곳 | 노순동 야박하고 불친절한 선배들| 안은주 03 기자로 산다는 것 '수수께끼 기자'의 수수께끼 같은 기사 | 남문희 열다섯 번의 특종, 열세 건의 소송 | 정희상 경제 기사, 나의 달콤 살벌한 연인 | 장영희 고춧가루 전문, 시사저널 정치부 | 이숙이 나를 주눅들게 한 '공포의 리라이팅' | 오윤현 '몸빼 바지' 입고 스스로 표지가 되다 | 양한모 수습 기자의 행복한 시간 | 고제규 우리는 시사저널 기자이니까 | 차형석 이건희 회장의 '황제 스키'를 몰래 찍다 | 안희태 부록_ 시사저널 사태를 말한다 시사저널 사태 일지 김훈은 말한다 - 내가 무너졌던 30년 전 그 자리에 후배들이 서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아름다운 고통의 날들 ㅣ 고재열 한국 언론의 명예, 시사저널에 달려 있다 ㅣ 고종석 이우일 만화 이철수 엽서 "힘내세요, 시사저널" |
Koh, Johng-Seok,高宗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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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자신의 추태가 기사화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해당 의원이 그날 밤 8시께 편집국으로 찾아왔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그는 4선 정도의 여당 중진이었다. 그의 보좌관이 최종 교정지를 검토하던 김훈 국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ㅇㅇㅇ 의원님이 오셨습니다.’ 김국장은 교정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보좌관이 다시 한 번 말했다. ‘ㅇㅇㅇ 의원님이 오셨습니다.’ 김국장은 교정지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짓만 했다. 그 손짓은 ‘나가라’는 표시였다. 그것을 본 국회위원은 몇 분을 더 버티다가 결국 한마디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성우제(전 시사저널 기자?소설가)
“마감이 머지 않았음을 알리는 또다른 증거물은 그의 책상 위에 즐비한 종이 커피잔이었다. 반쯤 마시다 남긴 그 커피잔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상 주변에 쓰다가 구겨버린 원고지더미가 수북히 널리고, 책상 위에 지우개똥이 가득해질 즈음이면 한 주일의 기사도, 김훈 국장의 편지도 마감되곤 했다. 피말리는 뉴스의 전쟁터에서 독자에게 띄운 편지였다.” ---서명숙(전 시사저널 편집장·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김훈 국장(김국)으로 말하자면, 편집국에서는 시퍼런 인광을 내뿜으며 후배들을 호령하다가도 술자리에 가면 후배보다 더 살갑게 ‘재롱’을 떠는 스타일이었다. 취재원과의 줄다리기, 마감 스트레스 따위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가도 김국이 술을 따라주며 “내가 잘하께(‘잘할께’를 김국은 꼭 이렇게 발음했다)” “늙은이 좀 이쁘게 봐 주라”라고 육탄 공세를 벌여오면 후배들은 배시시 경직된 표정을 풀곤 했다.” ---김은남(시사저널 기자) 기자) “데스크들은 국방부와 조선일보 등 힘 센 기관에 내가 소송을 당하면 스스로 발로 뛰어 새로운 대응 물증을 찾아내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서명숙 전 편집장은 내가 기사를 쓴 뒤 조폭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당하자 그 조폭 두목을 만나 협상을 벌여 문제를 풀어내주기까지 했다. 또 각종 게이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편집 책임자인 자신의 코앞까지 닥친 소송 역풍에도 굴하지 않고 앞장서 격려하며 “괜찮아, 큰 특종은 으레 큰 소송을 물고 들어오는 법이야”라며 앞장서 방어해준 선배도 역시 서편집장이었다.” ---정희상(시사저널 기자) “어느 날 밤, 야근을 하고 있는데 문정우 선배가 사무실을 나서며 한 마디 툭 던졌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한 법이다. 기자가 설렁설렁 취재하고 기사 써봐라. 그걸 읽는 독자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낭패감만 들 거야. 당신이 그렇게 고생해서 취재하고 쓴 기사라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야.’ 문선배의 그 말은 이후 내 기자 생활의 ‘나침반’이 되었다.” ---안은주 기자(시사저널 기자)· “나는 후배 기자들에게 ??한 페이지짜리 작은 기사라도 최소한 다섯 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이 말을 단지 열심히 취재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사저널 초창기의 편집국 분위기는 실제로 그러했고 그 전통은 아직도 시사저널 지면에 묻어나고 있다.” ---김상익(전 시사저널 편집장·환경재단/도요새 주간) “문화부 후배 기자 셋을 불러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 ‘객관을 버려라. 세상에 객관적 기사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특종 개념이 달랐다. 시사 주간지 문화면 특종은, 어떤 사안을 다른 매체보다 먼저 보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각을 우선해야 했다. 신간 안내 한 줄을 쓰더라도 시각이 새로워야 했고, 특히 문장이 정확해야 했다.” ---이문재(전 시사저널 취재부장?시인) “기자가 곧 매체인 시사저널 기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은 이 사건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면 기사를 안 쓴다는 원칙이다. 이해할 때까지 파고든다. 시사저널을 진보적이라고 평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합리적인 매체라는 게 더 정확하다. 그동안 팩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언론이 드물어서 시사저널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보였을 뿐이다.” ---고제규(시사저널 기자)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저도 그때 무너진 기자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30년 후에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김 훈(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인터뷰 중에서 “현재 (시사저널) 경영진 쪽에서는 편집권을 자신의 인격권이나 재산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먹느냐, 자장면을 먹느냐를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정도의 권리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편집권이란 것은 우동이냐 자장면이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권이나 재산권이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의무의 문제입니다. 곧 편집권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서의 권리로, 기본적으로 자유권에 속하는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 훈(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인터뷰 중에서 --- 본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