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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웅이 내린 박달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박달나무일까?/박달나무를 찾아서/다시 박달나무를 찾아서/왜 우리 민족은 박달나무를 숭배했는가 2. 백악기 시대 속씨식물, 달 속의 계수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달 속의 계수나무를 찾아서/세상에 하나뿐인 또 하나의 계수나무 3. 사람도 사랑도 낳은 신비한 대나무 풀인가, 나무인가/인간을 낳은 대나무/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의 대나무, 소상반죽/공자는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쿠빌라이 칸의 대나무 궁궐 4. 공자는 은행나무에서 제자를 가르쳤을까, 살구나무에서 가르쳤을까? 행단의 비밀/수억 년 동안 이름없이 살아온 나무, 은행나무/기다림의 미학, 천년의 사랑 은행나무/※용문사와 은행나무/※세계에서 가장 비싼 은행나무 5. 화가 고흐의 자살과 천연기념물 제1호 측백나무 우리 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 대구 도동의 측백수림/『논어』에 나오는 송백(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인가, 아니면 측백나무인가/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측백나무/귀를 자른 화가 고흐의 정신병 치료약, 측백나무 6. 동서 교류의 하이웨이, 비단길로 들어온 호두나무 실크 로드 타고 들어온 천안의 명물 호두/슈만의 신혼여행을 인도한 호두나무/※실크 로드는 어떤 길인가? 7. 불교미술의 비밀 간직한 향나무 향을 좇는 인간, 향을 품는 나무/일본에서 가장 많이 수입한 패총향나무/한국 불교의 비밀 간직한 침향과 매향/※그들은 왜 향료에 열광했을까? 8. 복숭아 세 개로 삼천 년을 산 삼천갑자 동방삭 괴력의 상징 복숭아/유비·관우·장비가 의리 맺은 도원결의/무릉도원에서 세상 근심 잊은 시인 도연명/천도 먹고 괴력 얻은 손오공/※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은 왜 유비일까? 9. 의류혁명을 뛰어넘은 뽕나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뽕나무를 찾아서/역사를 움직인 뽕나무/천상의 나무, 뽕나무/지혜의 나무, 뽕나무 10. 게으름의 미학 일깨워 준 석류와 당나라 정치 게을러야만 터지는 석류/장건이 비단길로 가져온 석류/※안석국은 어떤 나라였나? 11. 양귀비보다 배롱나무를 사랑한 당 현종 사랑하면 보이는 배롱나무/사육신 성삼문은 왜 배롱나무를 사랑했을까/당 현종은 정말 양귀비보다 배롱나무를 사랑했을까/※현종과 양귀비 12. 신라는 고로쇠나무 물 먹고 삼국을 통일했다? 단풍의 유혹에 빠진 식물학자의 오류/캐나다 국기에 그려진 캐나다단풍을 찾아서/신라군이 백제군을 물리친 힘, 고로쇠나무/단풍나무로 만든 사랑과 진실의 피리 13. 칭기즈칸의 말발굽 아래 태어난 자작나무 아! 그리운 백두산, 보고 싶은 자작나무/왕자의 영혼으로 태어난 자작나무 14.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의 비밀 간직한 산벚나무와 돌배나무 지혜의 바다, 극락의 시간으로 가는 길/벚나무와 돌배나무에 새긴 팔만 번뇌/우리의 나무, 벚나무/※대장경 15. 조선시대 산림정책으로 가꾼 한국인의 기상, 소나무 우리 나라 최초의 나무 탄생설화 주인공, 소나무/우리의 소나무는 신이다/황장봉산을 아시나요/300살 소나무로 만든 천태종의 본산, 구인사 대조사당/소나무는 우리의 미래, 우리의 국보이다 16. 봉황을 기다리는 벽오동, 선비가 그리운 봉황 거문고는 벽오동으로 만들었을까, 오동으로 만들었을까/여왕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오동나무/봉황을 기다리는 선비/※오동도의 벽오동이 사라진 이유 |
姜判權, 나무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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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달나무를 바라보면서 이 나무가 과연 단군신화에 나오는 박달나무인가를 생각했다. 인간이 우주목으로 삼는 나무가 지녀야 할 특징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신성한 나무라면 우선 오래 사는 나무여야 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나무들이 인간보다 오래 살지만 그 중에서도 장수하는 특정한 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생각했을 것이다. 또 키가 작은 관목보다는 키가 큰 교목이어야 할 것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숭배한 레드우드나 자이언트세쿼이아처럼 당당한 외모를 갖춘 나무라야 하늘의 신에게 인간의 바람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성한 나무는 인간의 일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 신성한 나무는 인간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물질세계까지도 지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성한 나무라고 해서 모두 인간의 물질적 삶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신성한 나무는 인간에게 물질적인 혜택도 준다. 신단수가 박달나무라면, 과연 박달나무는 청동기시대 우리 조상들에게 어떤 물질적 혜택을 주었을까. 과연 박달나무는 정신적 물질적 조건을 갖춘 나무였는가. 물론 자료의 부족으로 그 시대 박달나무의 현황과 용도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사실을 입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무리한 일이지만, 나무를 통해서 단군신화에 접근해 보는 것도 한 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pp. 3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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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의 탄생화 석류에 대한 느낌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석류는 보물단지가 아니라 애물단지였다. 고향 초가집 앞 양지바른 언덕에 닥나무와 함께 서 있던 석류나무의 열매는 너무 시어서 배가 고파도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지금은 누가 베어 버렸는지 사라지고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모든 식물이 인간의 스승이지만 석류는 인간이 게을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시인 이문재의 '석류는 폭발한다'라는 한 편의 시는 석류가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를 잘 포착하고 있다. - 중략 - 석류가 탐스러운 알을 만들어 껍질을 열고 나오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게으르지 않으면, 한곳에 모든 정력을 쏟지 않으면 안된다. 석류는 우리에게 게으르고 게을러서 게을러터지길 요구한다.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일에 한없이 게을러야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쓸데없는 데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차이도 자기가 하는 일에 얼마나 부지런한지, 아니 자기 일 이외의 것에 얼마나 게으른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게으르길 명령하는 석류는 석류과에 속하는 낙엽성 키 작은 나무이다. 윗부분에 가시가 있는 가지, 주홍색의 꽃, 9~10월에 황갈색으로 익는 열매를 가진 석류는 중부 이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린네가 붙인 석류의 학명도 종명이 쌀 모양인 석류알을 의미하는 그라나툼이다. 린네 역시 석류의 특징을 열매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서아시아로 알고 있는 석류의 원산지를 '카르타고의'를 뜻하는 라틴어 푸니쿠스에서 유래한 푸니카, 즉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로 표시하고 있다.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가 인접 지역이기는 하지만, 린네가 원산지를 북아프리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식물의 원산지 문제는 존재의 기원을 찾는 힘든 문제이며 늘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게다가 원산지 표시자가 죽은 후 새로운 원산지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아서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석류가 중국에 들어온 시기는 한나라 무제 때 장건이 서역에서 돌아오면서부터이다. 장건이 장안으로 돌아온 해가 기원전 126년이니, 석류가 중국에 들어온 지는 이천 년이 넘었다. 포도와 호두 등과 함께 들어온 석류는 장건이 대원국, 페르시아, 안석국 등 서아시아 제국의 실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안석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 pp. 162~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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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한때 성리학을 철저하게 실천한 땅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자란 사람들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성리학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 …… 내가 나무를 세는 것은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공부(工夫)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무를 보는 것, 나무를 세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공부란 단지 책에서 배우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공부 중 하나는 나처럼 나무를 세면서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런 방법을 『예기』의 한 편(篇)인 「대학」에 나오는 팔조목(八條目), 즉 정심(正心)·성의(誠意)·격물(格物)·치지(致知)·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 중 '격물치지'에서 차용했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격물치지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물(物)에 이르러 이치를 깨닫는 방식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또 다른 공부는 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이 『근사록(近思錄)』을 애지중지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논어』의 「자장(子章)」 편에 나오는 자하(子夏)의 말, 즉 "배우길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에서 따온 '근사(近思)'는 공부의 기본이었다. …… 내가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게 한 것은 성리학적 공부를 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리학적 공부는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맹자는 이런 과정을 "(물은) 웅덩이를 채운 후에 나아간다[盈科而後進]"는 말로 표현했다. 물이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야 나아간다면 분명 힘들고 험난한 길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웅덩이를 다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량없는 바다도 웅덩이를 모두 채운 물이 넘쳐흘러서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 pp. 1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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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한때 성리학을 철저하게 실천한 땅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자란 사람들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성리학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 …… 내가 나무를 세는 것은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공부(工夫)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무를 보는 것, 나무를 세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공부란 단지 책에서 배우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공부 중 하나는 나처럼 나무를 세면서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런 방법을 『예기』의 한 편(篇)인 「대학」에 나오는 팔조목(八條目), 즉 정심(正心)·성의(誠意)·격물(格物)·치지(致知)·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 중 '격물치지'에서 차용했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격물치지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물(物)에 이르러 이치를 깨닫는 방식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또 다른 공부는 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이 『근사록(近思錄)』을 애지중지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논어』의 「자장(子章)」 편에 나오는 자하(子夏)의 말, 즉 "배우길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에서 따온 '근사(近思)'는 공부의 기본이었다. …… 내가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게 한 것은 성리학적 공부를 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리학적 공부는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맹자는 이런 과정을 "(물은) 웅덩이를 채운 후에 나아간다[盈科而後進]"는 말로 표현했다. 물이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야 나아간다면 분명 힘들고 험난한 길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웅덩이를 다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량없는 바다도 웅덩이를 모두 채운 물이 넘쳐흘러서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 pp. 1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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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세는 것이 공부다?
인문학의 위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인문학 부흥을 위한 새로운 공부론을 제안하는 한 젊은 역사학도의 낮은 목소리가 있다. 성리학적 격물치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주변의 사물을 살피는, 이른바 근사(近思)의 공부법이 바로 그것.
이 책의 저자인 강판권 박사는 나무를 통해 역사를 해석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다. 나무에 깃들여 있는 사연을 더듬어 가다 보면 어느덧 인류의 기나긴 정신사적 궤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학교 교정에서, 동네 어귀에서, 답사의 길목마다에서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세고 있다. 나무를 세는 것은 이제 그에게 더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나무 세기에 관한 보고서'이다. 한 그루 나무를 통해 역사를 읽는다는 일이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예컨대 "환웅이 내린 박달나무는 어디에 있을까?"라거나 "백악기 시대 속씨식물, 달 속의 계수나무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떠올렸다고 해보자. 이들 질문들은 어쩌면 역사 이전의 단계, 즉 신화의 세계에 속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여기에는 강한 '추측'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과 상상을 넘나들다 보면 어느새 이들 나무들에 대한 '역사적 실체'가 조금이나마 만져지지 않을까? 본문에서는 저자가 실제 박달나무와 계수나무를 찾아 안타깝게 헤맨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 박달나무를 만났을 때의 감격을 그는 이렇게 전한다. "도로변에 우뚝 선 물박달나무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박달나무를 만났다는 기쁨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물박달나무가 내가 상상했던 우주목(宇宙木) 혹은 세계수(世界樹)와는 달리 너무 왜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안아 보았다. 굵지 않은 나무인지라 작은 가슴에 들어왔다. 비가 내린 뒤라 나무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본문 31∼32쪽)." 그러면서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왜 박달나무를 숭배하게 되었는가로 이어진다. 그 이유가 다듬잇방망이나 홍두깨, 빨랫방망이와 관련이 있다면, 과연 신성한 나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어진다. 화가 고흐의 자살과 측백나무를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고흐는 왜 죽기 직전에(1년 전) <측백나무>를 그렸을까? 과연 그는 측백나무가 불로장생의 상징이자 실제로도 정신병 치료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측백나무에는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좋은 '백자인'이 있다.) 이런 생각들을 좇다 보면 참으로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논어』의 「자한」 편에 나오는 "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의 송백(松柏)을 우리는 흔히 '소나무와 잣나무'라고 해석하는데 사실은 '측백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저자의 지나친 억측일까? 그럼 이런 생각은 어떤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된 팔만대장경의 비밀이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에 숨어 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는 이 팔만대장경판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250개의 표본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는 기존의 설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팔만 가지의 번뇌를 새긴, 81340매의 경판을 이루는 나무의 주종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류였다고 한다. 또,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오지 않고 / 무심한 일편 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더라"는 시조처럼 큰 뜻을 품었던 옛 선비들의 기상을 기리는 대목에서는 오늘날 이땅의 지식인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케 한다. 정녕 벽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 있는데 봉황은 선비가 그리운 것은 아닌지……. 이렇듯 이 책은 열여섯 나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에 얽힌 역사와 신화를 더듬어 보는 책이다. 하지만 단지 나무에 얽힌 온갖 지식의 단편들을 주워 모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무'라는 하나의 고리를 통해 새롭게 역사를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방법'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나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더욱 풍요로운 경험들은 독자의 몫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