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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이한우
해냄 200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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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한국문화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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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군주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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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비운의 영명 군주, 선조

프롤로그
불의의 시대, 정의의 인간
개혁의 실패, 기묘사화
기묘사화에 대한 재평가 운동

1장 꿈에서도 왕위를 꿈꿀 수 없었다
중종과 창빈 안씨의 손자로 세상에 나다
문정왕후 윤씨와 윤원형의 ‘폭정 20년’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다

2장 마침내 사림의 세상이 열리다
역사 청산을 둘러싼 신구세력의 충돌
‘행복한 학생’ 선조, 조선 최고의 스승들에게 배우다
성군 만들기에 대한 기대와 불안

3장 갈림길에 선 선조
현실의 지도자 이준경의 길과 산림의 지도자 이황의 길
어린 시절의 이준경과 이황
중종시대 혼탁한 정국에서 만나다
명종시대 폭정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
선조 집권 초, 이준경과 이황의 긴장관계

4장 학자군주 선조의 정신세계
천품은 높고 그릇은 작아
신하들의 간절한 꿈, ‘내성외왕을 이루소서!’
양명학에 대한 관심
지식의 공유, 사서(四書)와 훈민정음의 만남
『주역』에 이른 선조의 학문적 경지

5장 당쟁의 불길이 타오르다
동인과 서인으로 갈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정국
폭풍 전야

6장 방계승통과 적장자에 대한 갈증
왕실의 두 어른, 왕대비와 대비
첫 단추부터 어긋나다
조정의 시한폭탄 ‘건저의’

7장 조선왕실 200년의 숙원 사업을 이루다
“내가 이제야 할말이 있게 되었다!”
종계변무를 위한 조선왕실의 200년 고투

8장 국왕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임진왜란과 의주 파천
왜란 발발 15일 후, 1592년 4월 28일 한양 창덕궁
한양을 버리다
선조, “요동으로 가자!”

9장 명군 참전과 ‘전쟁신’ 이순신
명군(明軍)을 기다리며
명나라 참전으로 전세가 뒤바뀌다
역사의 악연, 선조와 이순신
원균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10장 7년 전쟁이 끝나다
국가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다
종전(終戰) 직후의 정치 지형도

11장 선조의 꿈을 박살낸 광해군
차기 권력에서 멀어지는 광해군
정국의 새로운 변수, 선조의 건강 악화
비운의 영명 군주, 눈을 감다

|사진출처|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422쪽 | 749g | 153*224*30mm
ISBN13
9788973378272

책 속으로

선조의 즉위는 사림들, 특히 신진 사림들에게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라의 앞길에 서광(曙光)이 비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참으로 지긋지긋했던 척신들의 공포정치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7월 3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즉위식에 참석한 조정대신들은, 어린 신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나라의 미래를 점쳐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다 궐내에서 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어상(御床)에도 처음에는 오르려 하지 않아 대신 이하 모두가 여러 차례 권하니 마지못해 자리에 올랐다. 특히 이날 즉위식이 끝나고 신왕의 유모가 화려한 가마를 타고 들어와 무언가를 청탁했다. 그러나 어린 신왕은 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참람되게’ 가마를 타고 들어온 것을 꾸짖었다. 그 바람에 유모는 집으로 갈 때 걸어서 가야 했다. 또 선조는 즉위하자마자 환관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늘 편전에 묵묵히 앉아 독서에 전념했다. 이에 “조정과 재야에서는 성덕(聖德)이 성취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높아만 갔다. 이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초미의 관심을 쏟아야 할 만큼, 과거 정권에서 폭정의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남긴 상처도 그만큼 깊었다.
― <2장 마침내 사림의 세상이 열리다> 중에서

선조의 좬경서훈해좭 작업은 무엇보다도 훈민정음의 격조를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서오경을 훈민정음으로 언해하려 했다는 것은 훈민정음을 학문 언어로 격상시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양에서 라틴어 성서를 영어나 독일어 등 자국어로 번역하려 했던 문화혁명에 준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어떻게 이렇게 중대한 문화적 사건을 우리의 역사가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고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서술조차 하지 않았는지 모를 정도다. 그 또한 선조라는 인물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사실 선조가 사서오경의 언해를 명한 데는 지식의 공유라는 목표가 있었다. 전란이 한창이던 선조 28년(1595년) 5월 28일에는 조총에 맞설 수 있는 삼안총이라는 총구가 3개인 신병기의 개발을 기뻐하면서, 그것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교본인 『살수보(殺手譜)』를 언해하도록 지시한 지 오래인 데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진노했다.
― <4장 학자군주 선조의 정신세계> 중에서

『대명회전』이란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경국대전』에 해당하는 명나라의 법전이었다. 1509년에 간행되었는데 마침 1587년에 중수(重修) 작업이 이뤄졌다. 문제는 이 『대명회전』에 조선과 관련된 대목이 들어 있는데 거기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고려 말의 권신이었던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명태조실록』에 처음부터 잘못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 명나라 공식 문헌에는 계속 그렇게 기록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홍의 소식은 바로 이 종계, 즉 이성계의 혈통을 바로잡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선조의 반응을 보면 그가 종계변무 성공에 얼마나 감격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경들의 힘을 입어 오늘날 이같이 기쁜 일이 있으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지금 유홍의 서장을 보니 황은(皇恩)의 망극함 역시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수백 년 마음 아팠던 응어리가 깨끗이 씻기어, 아버지가 없다가 아버지가 있게 되었고, 임금이 없다가 임금이 있게 되었다. 우리 나라 수천 리가 비로소 인류(人類-국왕의 뿌리)를 되찾아 동한(東韓)이 재조(再造)되었으니, 하늘에 계시는 조상의 영혼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내가 이제야 할말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같이 천박한 사람이 어찌 이를 이룰 수 있었겠는가. 이는 모두 조정의 제현(諸賢)들이 마음을 다해 주선한 소치다.”
― <7장 조선왕실 200년의 숙원 사업을 이루다>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호’라는 낡고 오래된 배의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은 선조다. 애당초 자신이 키를 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배에 관한, 항해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한줌도 되지 않았고 바다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갑자기 노련한 항해사들이 와서 열여섯 살 어린아이를 보고 선장을 맡아줄 것을 강권했다. 사양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선장직을 수락한 후에도 모든 것은 항해사들이 알아서 했고 자신은 뒤늦게 항해술에 관한 수업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난파 조짐을 보이던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씩이나마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마흔 살을 넘어 조금씩 항해에 흥미를 가지려 할 무렵에 태산 같은 파도가 밀려오더니 7년간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동안 익힌 항해술로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발 다른 사람이 키를 맡아달라고 수도 없이 호소했지만 아무나 선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자리를 지켜줄 것을 강요했다. 폭풍우가 잦아들었을 때 배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난파는 면했다. 이것은 선조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비유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 <9장 명군 참전과 ‘전쟁신’ 이순신> 중에서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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