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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조선의 화신(化身), 세종
1장 태종, 조선의 명운(命運)을 건 주사위를 던지다 1418년 6월 개경 충녕, 조선의 4대 국왕에 오르다 비극을 품은 거대한 음모 2장 인간 세종, 온후담백한 성품을 갖추다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나다 이도의 호학(好學)하는 성품 세종은 비중(肥重)했다 3장 정치가 세종, “억지로 남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은 정치하는 체통이 아니다” 세종도 강력한 왕권을 원했다 세종의 홀로서기 학문적 역량과 경륜을 쌓아가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리더십 4장 학자 세종, “이단(異端)이라도 그 근원을 캐봐야겠다” 학문에 대한 열린 태도 조선 국왕의 제왕학 경(經)과 사(史)의 균형 5장 국방 외교 전략가 세종, 강토를 넓히고 굳건히 하다 군사에 대한 관심 일본과 외교 관계를 맺다 파저강 여진족을 정벌하다 세종`-`김종서, 6진을 개척하다 명나라에 대한 지성사대 6장 예(禮):집현전의 힘 “집현전 설립을 서둘라” 집현전에 대한 세종의 애정 “집현전은 옛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라” 집현전 엘리트 신숙주와 성삼문의 엇갈린 운명 7장 사(史): “너희가 역사를 아느냐”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하다 우리 역사를 보는 세종의 시각 30년 프로젝트, “『고려사』를 완성하라” 『고려사』를 함께 쓴 김종서와 정인지 8장 악(樂): 조선의 악을 바로 잡다 혼란에 빠진 조선 초의 음악 박연, “아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조선 소리의 공동기획자 세종과 맹사성 9장 법(法): 백성을 위한 법치의 나라를 꿈꾸다 개국에서 태종 때까지의 법제 법전 편찬 사업을 이끌다 세종의 법치는 애민(愛民) 10장 훈민(訓民)을 위한 바른 글자를 만들다 ‘특급 비밀’ 훈민정음 창제 언어학에 대한 세종의 식견 김화의 살부(殺父) 사건에서 훈민정음 논쟁까지 11장 세종 시대의 빛과 그림자 “사대부 중에서 형벌로 죽은 자가 없었다” ‘적재적소’의 원칙으로 인재를 길러내다 흔들리는 세종 세종 권한 밖의 신하, 한확 12장 비극과 불행 속에서 지다 세종과 가장 가까웠던 세 여인 세종을 쏙 빼닮은 장남 문종 무(武)의 수양 대 문(文)의 안평 ‘해동요순(海東堯舜)’ 세종과의 작별 |
LEE,HAN-WOO,李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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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심을 내린 태종은 즉시 조말생 등을 불러 “이런 큰일은 시간을 끌면 반드시 사람을 상하게 된다”며 최대한 빨리 절차를 밟도록 지시했다. 사실 충녕에 대한 신하들의 신망은 오래전부터 컸다. 사람과 말을 보는 눈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태종은 “충녕은 관홍장중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던 이숙번도 일찍부터 태종에게 충녕대군을 은밀하게 추천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 무렵 조선을 자주 찾았던 명나라 사신 황엄도 충녕을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명하기가 뛰어나 부왕(태종)을 닮았다. 동국(東國)의 임금 자리는 장차 이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실제로 원민생이 충녕의 세자 책봉을 승인받기 위한 사신이 북경에 갔을 때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을 자주 찾았던 관리 황엄이 무슨 일로 왔는가라고 묻자 원민생은 “세자를 바꾸기를 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황엄은 원민생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필시 충녕을 봉하도록 청하는 것이리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 <1장 태종, 조선의 명운(命運)을 건 주사위를 던지다> 중에서 태종도 왕권을 강화한 인물이지만 세종도 그에 못지않다. 차이가 있다면 태종이 생사를 넘나드는 쟁투의 파고를 넘은 카리스마와 출중한 정치력으로 새 왕조의 골격을 갖췄다면 세종은 가히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문치(文治)의 이상을 실천함으로써 신하들을 설복해 왕권 강화를 이루었다. 태종이 실체의 권력을 다루는 혁명적 정치가였다면 세종은 여백의 권력까지 활용할 줄 아는 경륜의 정치가였다. 태종의 정치가 죽임을 통한 정치였다면 세종의 정치는 살림에 의한 정치다. 태종은 집중을, 세종은 집념을 통해 일을 했고 신하들을 장악했다. 태종은 표범의 정치, 세종은 곰의 정치였다고 할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세종이 신하들의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채 탄탄대로를 달리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권력을 유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흔히 생각하듯이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도 아버지 못지않은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생애는 여타의 조선시대 국왕들과 마찬가지로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권력투쟁으로 점철돼 있었다. 어린 시절 형을 제치고 태종의 인정을 이끌어내 왕권을 차지한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양녕과의 권력투쟁이었으며, 여기서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완승을 거뒀다. 다만 아버지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아들은 온화한 현실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3장 정치가 세종: “억지로 남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은 정치하는 체통이 아니다”> 중에서 면이무치(免而無恥), 법치 만능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형벌을 피하는 데만 급급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세종은 누구보다 법 만능주의의 이 같은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법만으로 백성을 보호하는 것은 아무래도 소극적인 방법이었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백성들이 처음부터 법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화였다. 세종은 법치보다는 덕치를 기본으로 삼는 전형적인 유가의 통치자였다. 백성을 바로잡는 것은 형틀 위에서의 법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의 인륜임을 세종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훈민이다. 세종 6년 8월에 내린 교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생각건대 옛날 어진 임금들이 형벌을 사이런 형벌관을 가진 세종이었기에 형벌을 하더라도 최대한 신중하고 백성에게 가혹하지 않도록 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그래서 세종이 법보다 중시했던 것은 윤리, 당시로서는 삼강오륜이었다. 세종에게 있어 훈민이란 다름 아닌 삼강오륜에 의해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엄혹하기 그지없는 법의 치죄(治罪)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여간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악으로 삼강(三綱)을 키워 백성을 일깨우겠다는 세종의 생각은 결국은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예와 악 그리고 법은 별개가 아니라 바로 ‘훈민’ 하나로 어우러진다. ― <9장 법(法): 백성을 위한 법치의 나라를 꿈꾸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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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화된 성군이 아닌, 살아 있는 세종을 복원하는 본격 역사교양서!
역사의 거인 세종의 숨과 결을 따라가며 그의 리더십을 분석한다! 조선왕조를 빛낸 군주들의 활약상과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 2005년 『태종:조선의 길을 열다』를 첫 책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사료들을 전방위로 추적하고 그 행간의 의미에 대한 통찰과 역사적 상황을 직조해 내는 저널리스트 특유의 감각이 만나, 역사로부터 배우는 리더십에 관한 뛰어난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인물은, 역사 이래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조선의 4대 국왕 세종이다. 『세종:조선의 표준을 세우다』는 『실록』에 담긴 그의 육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박제화·신격화된 영웅이 아닌, 살아 있는 군주 세종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무엇보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역사 읽기가 불러올 수 있는, 편중된 역사의식, 역사 연구의 불균형을 경계한다. 일종의 정치적·역사적 콤플렉스로 여긴 채 덮어두거나, 오늘의 시각으로 재단하고 비판하기에 바빴던 조선시대를 ‘조선의 눈’으로써 볼 것을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단순히 조선 최고의 국왕으로서가 아닌 조선의 표준을 세우며 조선 그 자체였던 세종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세종의 왕위 등극에서 그의 말년까지 생애를 따라가며, 첨예한 정치 갈등과, 개인적 비극을 넘어 예(禮)·법(法)·사(史)·악(樂)·군(軍) 등 각 분야에서 조선의 표준을 세우고 훈민과 애민의 정치를 펼친 세종의 리더십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그 과정에 담긴 군주 세종의 집념과 완벽주의, 인간 세종의 눈물과 고뇌 그리고 살림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문치의 이상을 실현한 정치가 세종까지, ‘세종’ 읽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