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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사기 5
세가(世家) 권31-권42 양장
이한우
21세기북스 2026.04.01.
베스트
동양사/동양문화 80위 동양사/동양문화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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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지인지감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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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권31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제1
권32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제2
권33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제3
권34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제4
권35 관채세가(管蔡世家) 제5
권36 진기세가(陳杞世家) 제6
권37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제7
권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제8
권39 진세가(晉世家) 제9
권40 초세가(楚世家) 제10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제11
권42 정세가(鄭世家) 제12

저자 소개 1

LEE,HAN-WOO,李翰雨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매료되어 석사학위 논문으로 [마르틴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의 문제]를 썼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198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첫 작품으로 《헤겔 이후의 역사철학》을 냈다. 그 후 지금까지 평균 1년에 한 권 정도 번역 작업을 해왔다. 심지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번역병으로 근무할 때에는 네 권을 번역해 계급마다 한 권씩 번역한 셈이 됐다. 번역은 나의 운명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1990년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중앙일보]의 《뉴스위크》였다. 그때 정식기자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번역하는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삶은 점점 그쪽으로 몰고갔다. 1991년 《월간중앙》에 김용옥의 《대화》를 비판한 것이 계기가 돼 [문화일보] 학술 담당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번역하는 기자’에서 ‘기사 쓰는 기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화일보] 기자 생활 만 3년째 되던 1994년 12월에 [조선일보]의 제의를 받았다. [조선일보] 학술 출판 담당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명암을 볼 수 있을 만큼 봤다. 2001년부터 1년 동안 독일 뮌헨에서 연수 생활을 하면서 촌티도 많이 벗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일했고, 지금은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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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08쪽 | 152*225*35mm
ISBN13
9791173578984

책 속으로

여상은 대개 일찍이 생활이 곤궁하고 나이가 많았는데, 낚시를 통해 주(周)나라 서백(西伯-문왕)을 만나고자 시도했다[奸=干=求]. 서백이 장차 사냥을 가려고 점을 쳤더니 “잡게 되는 것은 용도 이무기[彲]도 호랑이도 곰도 아니다. 패왕을 보좌할 신하를 얻을 것이다”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주나라 서백이 사냥을 나갔는데, 과연 위수(渭水) 북쪽[陽]에서 태공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선군이신 태공(太公) 때부터 ‘빼어난 이[聖人]가 주나라에 오면 주나라가 흥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당신이 진정 그분 아니십니까? 우리 태공께서 당신을 기다리신[太公望]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그를 ‘태공망(太公望)’이라고 부르며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와서는 그를 세워 사(師-스승)로 삼았다.
---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제2」 중에서

소공(召公) 석(奭)은 주(周)나라와 같은 성으로 희씨(姬氏)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고[滅紂] 소공을 북연(北燕)에 봉했다. 성왕(成王) 때 소공은 삼공(三公)이 되었으니, 섬(陝)의 서쪽 지역은 소공이, 섬의 동쪽 지역은 주공(周公)이 다스렸다[主=治]. 성왕이 아직 어려서 주공이 섭정하면서 국정을 주관하고 천자의 일을 대신했는데[踐祚], 소공이 그를 의심해 「군석(君奭)」을 지었다. 「군석(君奭)」은 주공을 달가워하지 않는 내용이다.
---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제4」 중에서

무왕이 이미 붕했을 때 성왕(成王)은 어렸다. 주공(周公) 단(旦)이 성왕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면서 국정을 맡았다[當國]. 관숙과 채숙은 주공을 의심해 마침내 무경 녹보와 함께 난을 일으켜 성주(成周)를 공격하려 했다. 주공 단이 성왕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일으켜 은나라를 쳐서 무경 녹보와 관숙을 죽이고 채숙을 추방한 다음에, 무경의 은나라 유민을 갖고서 강숙을 봉해주고 그를 위(衛)나라 임금으로 삼아서 황하(黃河)와 기수(淇水) 사이에 있는 옛 상나라 터[墟=殷墟]를 관할하게 했다[居=當].
---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제7」 중에서

태사공(太史公)이 말한다. “진나라 문공은 옛날의 이른바 눈 밝은 임금[明君]으로, 나라 밖에서 살기를 19년이나 하면서 곤궁한 처지에 놓였으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오히려 개자추(介子推)를 잊어버렸으니, 하물며 교만한 임금[驕主]이야 어떻겠는가? 영공(靈公)이 이미 시해되고 나자, 그의 후예 성공(成公)과 경공(景公)은 지나치게 엄격했고 여공(厲公)에 이르러서는 너무 각박했으니[大刻], 대부들이 주살될까 두려워해 재앙이 시작되었다. 도공(悼公) 이후로는 날로 쇠퇴해져서 육경(六卿)이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러므로 임금의 도리로 신하를 제어하는 일[御臣=禦臣]이란 진실로 쉽지 않도다!”
--- 「진세가(晉世家) 제9」 중에서

간공 원년에 여러 공자가 재상 자사를 죽이려고 모의했는데, 자사가 이를 알아채고는 도리어 여러 공자를 모조리 죽였다. 2년에 진(晉)나라가 정나라를 쳤고, 정나라가 맹세하자 진나라는 물러갔다. 겨울에 다시 초나라와 동맹했다. 자사는 주살당할까 두려워 진나라, 초나라 모두와 가깝게 지냈다. 3년에 재상 자사가 자신을 세워 임금이 되려고 하자 공자 자공(子孔)이 위지(尉止)를 시켜 자사를 죽이고 그를 대신했다. 자공 또한 자립하려고 했는데, 자산(子産)이 말했다. “자사가 이런 방향으로 하려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주살되었는데 지금 또 그를 본받으려 하시니, 이렇게 되면 난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자공이 자산의 말을 따라 정나라 간공의 재상이 되었다.

--- 「정세가(鄭世家) 제12」 중에서

출판사 리뷰

황제들이 탐독한,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통찰
공자를 계승하여 ‘군군신신(君君臣臣)’에 초점을 맞춘 역사 읽기

『사기』는 핵심적인 면에서 공자 사상과 맞닿아 있다. 즉, 군군신신(君君臣臣)의 원리를 밝히는 데 서술의 원칙을 두었다. 그 구성을 보면, ‘본기’는 황제, ‘세가’는 제후, ‘열전’은 신하의 기록이다. 여기서 제후는 신하인 동시에 임금이다. 이렇듯 사마천이 파악한 역사는 나라의 기록이며 군신(君臣)의 기록이다. 군신 간의 의견 충돌과 의견 합치 등을 빚어내는 인간 내면을 조명한다. 그래서 사기는 2000년이라는 시간 거리를 뛰어넘어 지금도 펄떡펄떡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사리(事理)와 사세(事勢), 정(正)과 중(中), 예(禮)와 명(命)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히며, 공자의 현실주의적 제왕학을 계승한다. 사리(事理)는 상도(常道)와 정(正)과 예(禮)로, 사세(事勢)는 권도(權道)와 중(中)과 명(命)으로 흐른다. 사마천은 역사 서술을 통해 임금이란 기본적으로 권도를 발휘하는 자리이고, 신하는 상도를 따르는 자리임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공자 사상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세가(世家)」: 제후의 역사
권력의 이동과 가문의 명운이 결정되는 과정

「세가」는 제왕을 보좌하며 각 지역을 통치했던 제후들의 역사와 그 가문을 다룬 기록이다. 제후의 반열에 속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공자, 진승, 장량, 소하와 같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들을 포함했다.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이며, 진승은 진나라에 반기를 든 농민 지도자이다. 장량, 소하는 한나라 건국의 공신이다. 이 또한 형식적 지위보다는 실제적인 업적과 영향력을 중시하는 사마천의 혁신적인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가」는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통해 권력의 이동과 가문의 명운이 결정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세가」는 권31~권60이며 총 30권이다.

『이한우의 사기 (5)』은 「세가(世家)」 첫 번째 책으로 권31-권42를 옮겼다.

오나라 시조 태백과 그 후손들인 부차, 합려 등의 오태백세가, 강태공이 세운 제나라 제태공세가, 주공 단이 세운 노나라 노주공세가, 소공 석이 세운 연나라 연소공세가, 주나라 왕실의 친척인 관숙과 채숙의 관채세가, 순임금과 우임금의 후손들이 세운 진나라와 기나라의 진기세가, 위나라 시조 강숙과 그 후손들의 위강숙세가, 은나라 후손이 세운 송나라 송미자세가, 춘추시대 패권국이었던 진나라의 진세가, 남방의 강대국 초나라 초세가, 와신상담의 주인공 구천과 월나라 월왕구천세가, 춘추시대 초기 강성했던 정나라 정세가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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