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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3 삼대 세표(三代世表) 제1
권14 12제후 연표(十二諸侯年表) 제2 권15 육국 연표(六國年表) 제3 권16 진·초 사이 월표(秦楚之際月表) 제4 권17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의 제후왕 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제5 권18 고조 공신 중 후가 된 사람 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제6 권19 혜제에서 경제 사이에 후가 된 사람 연표(惠景間侯者年表) 제7 권20 건원 이래 후가 된 사람 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 제8 권21 건원 이래 왕자 중에서 후가 된 사람 연표(建元已來王子侯者年表) 제9 권22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 장군·재상·명신 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 제10 |
LEE,HAN-WOO,李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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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余]가 『첩기(諜記)』를 읽어보니 황제(黃帝) 이래로 모두 연수(年數)가 있었다. 역대 보첩(譜諜)과 (음양가의) 오덕(五德)이 끝나면 다시 시작해[終始] 전해지는 것[傳]을 고찰해보건대, 옛글들은 모두 서로 같지가 않고 어그러지거나 차이가 났다. (『상서(尙書-서경)』를 편찬한) 부자(夫子-공자)가 그 연월(年月)을 논해 정리하지[論次] 않은 것이 어찌 하릴없이 그랬으랴! 이에 오제계첩(五帝繫諜)과 『상서(尙書)』를 갖고서 세기(世紀)를 모아 황제 이래로부터 공화(共和)까지[訖=至]를 세표(世表)로 만들었다.
--- 「삼대 세표(三代世表) 제1」 중에서 진나라가 이미 뜻을 이루고 나자, 천하의 시서(詩書-유가의 책들)를 불태우고 제후들의 역사 기록을 불태운 것이 더욱 심했으니, 여기에는 (진나라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말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서(詩書-유가의 책들)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책들이 대부분 민가(民家)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지만, 제후들의 역사 기록은 오직 주나라 왕실(서고)에만 보관되어 있어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애석하고 또 애석하도다! 오직 진나라 기록만이 남았는데, 그나마도 일월(日月)은 싣지 않았고 문장도 간략해서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전국(戰國)들의 권(權變)에도 실로 뽑아낼 만한 것들이 자못 있으니, 어찌 반드시 상고(上古)의 것이어야만 하겠는가? --- 「육국 연표(六國年表) 제3」 중에서 한나라가 천하를 평정한 지 100년이 되자 친속들은 점점 멀어졌다. 제후 중에 혹 교만하고 사치한 자들은 간사한 신하의 계모(計謀)에 빠져들어[忕] 음란(淫亂)을 일삼았으니, 크게는 반역을 일으키는 자도 있었고 작게는 국법을 마구 어기다가[不軌] 그 명(命)을 위태롭게 해서 몸이 죽고 나라를 잃는 자도 있었다. 천자는 상고(上古)시대의 제도와 풍습을 잘 살핀 연후에 은혜를 베풀어서 제후들이 추은(推恩)해 자제들에게 국읍(國邑)을 나눠줄 수 있게 했으니, 그래서 제(齊)나라는 일곱, 조(趙)나라는 여섯, 양(梁)나라는 다섯, 회남(淮南)은 셋으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천자의 지서자(支庶子-방계) 중에 왕이 된 자, 왕자의 방계 중에 후가 된 자가 100여 명 이었다. ---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의 제후왕 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제5」 중에서 효혜로부터 효경(孝景)에 이르는 50년 동안에는 고조 때 남은 공신들이추봉(追封)되었고 (또) 효문제(孝文帝)를 따라 대(代)나라에서 온 신하들과 오초(吳楚)의 난을 평정해 공을 세운 신하들이 봉해졌으며, 또 제후의 자제들과 왕실과 지근거리에 있는 외척들, 외국에서 귀의해 온 자 중에서 분봉된 자가 90여 명이었다. 모두 그 시작과 끝[始終]을 표(表)로 만드니, 그 당시 어짊과 마땅함[仁義]을 갖추거나 공로를 이룬 바가 드러난 사람들이다. --- 「혜제에서 경제 사이에 후가 된 사람 연표(惠景間侯者年表) 제7」 중에서 [색은술찬(索隱述贊)] 고조가 처음 일어났을 때[高祖初起]/여러 영웅도 더불어 봉기했다네[嘯命群雄]/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을 때[天下未定]/우리 한중에서 왕 노릇했도다[王我漢中]/웅걸 셋 이미 얻으니[三傑旣得]/여섯 가지 기략으로 공로를 바쳤구나[六奇獻功]/장한이 이미 격파되자[章邯已破]/소하는 함양에 궁궐을 지었다네[蕭何築宮]/주발은 두텁고 진중했고[周勃厚重]/주허후 지극한 충성 다했도다[朱虛至忠]/평진후 공손홍 재상이 되었고[平津作相]/조후 주아부는 병권을 쥐었도다[條侯總戎]/병길과 위상 나란히 뜻을 세워[丙魏立志]/몸 바쳐 정사를 바로잡았다네[湯堯飾躬]/천한 연간 이후로는[天漢之後]/공로가 없이도 표에 서술되었구나[表述非功]! ---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 장군·재상·명신 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 제10」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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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이 탐독한,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통찰
공자를 계승하여 ‘군군신신(君君臣臣)’에 초점을 맞춘 역사 읽기 『사기』는 핵심적인 면에서 공자 사상과 맞닿아 있다. 즉, 군군신신(君君臣臣)의 원리를 밝히는 데 서술의 원칙을 두었다. 그 구성을 보면, ‘본기’는 황제, ‘세가’는 제후, ‘열전’은 신하의 기록이다. 여기서 제후는 신하인 동시에 임금이다. 이렇듯 사마천이 파악한 역사는 나라의 기록이며 군신(君臣)의 기록이다. 군신 간의 의견 충돌과 의견 합치 등을 빚어내는 인간 내면을 조명한다. 그래서 사기는 2000년이라는 시간 거리를 뛰어넘어 지금도 펄떡펄떡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사리(事理)와 사세(事勢), 정(正)과 중(中), 예(禮)와 명(命)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히며, 공자의 현실주의적 제왕학을 계승한다. 사리(事理)는 상도(常道)와 정(正)과 예(禮)로, 사세(事勢)는 권도(權道)와 중(中)과 명(命)으로 흐른다. 사마천은 역사 서술을 통해 임금이란 기본적으로 권도를 발휘하는 자리이고, 신하는 상도를 따르는 자리임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공자 사상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표(表)」: 일목요연한 역사 이해 역사의 줄기를 잡아주는 지도 「표」는 복잡하게 얽힌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총 10권으로 구성된 연표이다. 사마천은 수많은 국가와 인물의 부침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격자로 배치함으로써, 단편적인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의 복잡다단한 정세를 시간순으로 정교하게 정리했다. 「표」는 방대한 서술 위주의 본문 사이에서 역사의 줄기를 잡아주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하며, 후대 정사(正史) 편찬의 전형적인 틀이 되었다. 특히, 수많은 나라와 인물이 얽힌 춘추전국시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이한우의 사기 (3)』은 「표」 전체를 담은 책으로 권13~권22를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