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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제57
권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제58 권119 순리열전(循吏列傳) 제59 권120 급정열전(汲鄭列傳-급암·정당시 열전) 제60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 제61 권122 혹리열전(酷吏列傳) 제62 권123 대원열전(大宛列傳) 제63 권124 유협열전(游俠列傳) 제64 권125 영행열전(佞幸列傳) 제65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 제66 권127 일자열전(日者列傳) 제67 권128 귀책열전(龜策列傳) 제68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 제69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제70 |
LEE,HAN-WOO,李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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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상여가 이미 졸하고 5년이 지나서야 상은 비로소 후토(后土)에 제사를 지냈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나 드디어 중악(中嶽)에 제례(祭禮)한 뒤 태산(太山)에 봉(封)하고 양보산(梁父山) 자락의 숙연산(肅然山)에서 선(禪)했다. 상여가 지은 다른 글로는 「유평릉후서(遺平陵侯書)」, 「여오공자상난(與五公子相難)」, 「초목서(草木書)」 등이 있으나 여기에는 그것들을 수록하지 않고[不采=不擇] 특히 그의 글 중에서 공경(公卿)들 사이에서 이름난 것만 실었다.
---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제57」 중에서 동중서(董仲舒)는 광천(廣川) 사람이다. 젊어서 『춘추(春秋)』를 배워 익혀서[治] 효경제(孝景帝) 때 박사가 되었다. 그는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휘장[帷]을 내리고서 강론하고 암송했는데, 이 때문에 제자들은 학업에 참여한 순서에 따라 번갈아 배웠으나 어떤 제자는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대개 자기 집의 채소밭을 3년 동안 돌보지 않기도 했으니,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이와 같았다. 벼슬길에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일, 몸가짐과 행동거지[容止] 등에서는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배우는 선비[學士]들은 모두 그를 스승으로 삼아 높였다. --- 「유림열전(儒林列傳) 제61」 중에서 계차와 원헌은 일생 쑥대로 엮은 집에서 거친 베옷과 나물밥을 먹으며 살면서도 불만이 없었고, 그들이 죽은 지 400여 년이 지났건만 제자들은 그들의 뜻을 이어받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지금 유협은 그 행위가 비록 정의에 부합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말에 믿음이 있고 행동은 과감하며 한번 승낙한 일은 반드시 성의를 다해 실천하여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닥친 위급함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생사와 존망을 돌아보지 않았고 자기 능력을 뽐내지 않았으며 그 다움을 자랑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으니, 대개 실로 이런 점은 높이 칭찬할 만하다. [유협열전(游俠列傳) 제64」 중에서 부자들이 다퉈 사치를 일삼을 때 임씨는 오히려 몸을 낮추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농사와 목축[田畜]에 힘썼다. 농사짓고 목축하는 사람들은 다퉈 값싼 금과 옥을 차지하려 했지만, 임씨는 비싸도 좋은 금과 옥을 샀다. 그 부가 몇 대를 이어갔는데, 임공(任公)의 집안에서는 약속하기를 내 땅과 내 가축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도 입지도 않겠으며 공사(公事)가 끝나기 전에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마을의 모범[率=法]이 되었고, 그래서 부자가 되자 주상(主上)도 그를 존중했다. --- 「화식열전(貨殖列傳) 제69」 중에서 삼대(三代) 위로는 추정하고 진나라와 한나라는 상세하게 기록했으되 위로는 헌원(軒轅)부터 아래로는 지금까지 「본기」를 12편 저술했는데, 모두 조례를 나눠 기록했다. 아울러 시대를 같이하는 것도 있고 달리하는 것도 있어서 연대가 분명치 않은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표」를 10편 지었다. 예악의 덜고 더함[損益], 율력의 개정, 병권(兵權), 산천, 귀신, 하늘과 인간의 관계, 각종 사물의 발전과 변화를 살피기 위해 「서」를 8편 지었다. 28수의 별자리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바큇살 30개가 바퀴통 1개를 향해 끊임없이 돌고 도니, 제왕의 팔다리 같은 신하들을 이에 비유해 충신으로서 도리를 행하며 군주를 받드는 모습을 「세가」 30편에 담았다. 의로움을 떠받치고[扶義] 재능이 뛰어나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세상에 공명을 세운 사람에 대해 「열전」을 70편 썼다. ---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제70」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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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들이 탐독한,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통찰
공자를 계승하여 ‘군군신신(君君臣臣)’에 초점을 맞춘 역사 읽기 『사기』는 핵심적인 면에서 공자 사상과 맞닿아 있다. 즉, 군군신신(君君臣臣)의 원리를 밝히는 데 서술의 원칙을 두었다. 그 구성을 보면, ‘본기’는 황제, ‘세가’는 제후, ‘열전’은 신하의 기록이다. 여기서 제후는 신하인 동시에 임금이다. 이렇듯 사마천이 파악한 역사는 나라의 기록이며 군신(君臣)의 기록이다. 군신 간의 의견 충돌과 의견 합치 등을 빚어내는 인간 내면을 조명한다. 그래서 사기는 2000년이라는 시간 거리를 뛰어넘어 지금도 펄떡펄떡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사리(事理)와 사세(事勢), 정(正)과 중(中), 예(禮)와 명(命)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히며, 공자의 현실주의적 제왕학을 계승한다. 사리(事理)는 상도(常道)와 정(正)과 예(禮)로, 사세(事勢)는 권도(權道)와 중(中)과 명(命)으로 흐른다. 사마천은 역사 서술을 통해 임금이란 기본적으로 권도를 발휘하는 자리이고, 신하는 상도를 따르는 자리임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공자 사상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열전(列傳)」: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 인간 의지와 욕망의 생생한 기록 「열전(列傳)」은 총 70권으로 구성된 인물 전기다. 왕이나 제후가 아닌 중요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담았다. 백이·숙제 같은 은둔자부터 자객, 장사꾼, 익살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인간의 의지와 욕망에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적 완성도가 매우 높아 ‘인간학의 보고’라 불리며, 『사기』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사마천이 가장 공을 들인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열전」에서는 굴원과 가생, 염파와 인상여 등 성격이 비슷하거나 라이벌인 인물들을 한 권에 묶어 서술하기도 했으며, 자객열전, 화식열전, 유협열전과 같이 특정 개인이 아니라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집단으로 다루기도 했다. 「열전(列傳)」은 권61-권130이다.『이한우의 사기 (10)』은 「열전(列傳)」 네 번째 책으로 권117-권130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