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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
박지원
돌베개 2007.02.26.
베스트
고전문학 top10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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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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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소설
이야기 좋던 민노인
한양 명물이 된 거지 광문
- 광문의 휠담
양반이 되자 하니
신선을 찾아서
말 거간꾼의 술책
똥을 치며 사는 은자
요절한 천재 시인 우상
범이 선비를 꾸짖다
남산골의 숨은 선비 허생
진정한 열녀란

제2부 산문
[서문]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비슷한 것은 참이 아니다
오직 참을 그릴 뿐
아름답고도 내실 있는 글
참된 문학은 어디에
말똥 경단인가 여의주인가
글 잘 짓는 이는 병법을 안다
글에도 소리와 빛깔이
옛 글을 본받되 새롭게 지어라
까마귀는 검지 않다
잊어야만 성취하리
상말도 알고 보면 고상한 말
멀리 중국에서 벗을 구하는 까닭
두메산골로 들어가는 벗에게
놓쳐버린 고승을 그리며
왜 청나라를 배우고자 하는가
일가 형님의 환갑을 축하하며
「홍범」은 읽기 어렵지 않다
해인사의 모임에서 느낀 것

[발문]
도화동의 꽃 구경
벗이란 제이의 나다
어느 감상가의 말로

[기]
자기를 찾아나선 광인
공을 보아라
이름 좋아하는 이에게 주는 충고
여름밤의 음악회
눈 속의 측백나무 같은 선비
마음을 비우고 완상하라
진솔한 나의 모습
금학동 별장의 조촐한 모임
제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법
머리 기른 중을 찾아서
만년에 휴식하는 즐거움
취해서 운종교를 거닐다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
한밤중에 고북구를 나서며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
코끼리에 관한 명상
대나무에 미친 사람
공작처럼 아름다운 집
연꽃과 대숲이 있는 집
학사루에서 최치원을 그리며

[서간문]
이별을 아쉬워하며
저 살아 있는 새를 보라
사마천의 마음
글은 홀로 쓰는 것
도로 눈을 감고 걸어라
『천자문』이 일긱 싫은 이유
애주가의 반성
고라니나 파리나 마찬가지
삼년상을 마치고
긴긴날 소일하는 비결
참된 벗을 그리며
한 처녀의 의문사에 대한 소견
주린 백성을 구호하는 즐거움
안의 고을로 놀러오시오
지기를 잃은 슬픔
귀양살이하는 벗에게
쓸쓸한 고을살이
수수께끼와 속담의 뜻
오랑캐로 몰린 사연
『열하일기』를 위한 변명

[비문]
참된 이치는 발 밑에 있다
맏누님을 사별하고
고생만 하신 형수님
벗 홍대용의 죽음
위대한 어리석음

[추도문]
죽음의 공교로움
산 자가 더 슬프다
장인 어른의 영전에
술친구를 잃고

[논설]
옥새는 요망스런 물건이다
은나라의 인자 다섯 분
진품을 알아본 사람

제3부 한시
설날 아침에 거울을 대하고
새벽길
몹시 추운 날
산길을 가다가
강변의 노래
작고하신 형님을 그리며
농삿집 풍경
팔운대의 꽃구경
압록강을 돌아보며
계륵 같은 관직
해오라기 한 마리
총석정에서 일출을 보다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
산중에서 동짓날을 맞아
해인사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
인명 및 사항 해설
작품 원제 색인

저자 소개 1

朴趾源, 호 : 연암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박지원의 다른 상품

편역 : 김명호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학의 대가인 고故 우전 신호열雨田 辛鎬烈 선생 문하에서 수학했다. 덕성여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열하일기 연구』 『박지원 문학 연구』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이 있으며, 역서로 『연암집』 전3권(신호열 공역)이 있다. 최근에는 『연암 평전』의 저술에 착수하는 한편,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환재 박규수에 관한 연구서를 준비하고 있다. 우경문화저술상과 두계학술상, 월봉저작상을 수상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542쪽 | 784g | 153*214*35mm
ISBN13
9788971992708

출판사 리뷰

우리 고전 작가 중에서 연암 박지원(1737~1805)만큼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는 연암의 작품들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넘어 21세기인 오늘날까지 강렬한 매력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편협한 사상에 싸여 있던 양반들에게 연암은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통해 시대적 편견에서 벗어나 사물을 늘 새롭게 인식할 것을 촉구하였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사상의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시대에 연암의 문학이 살아 있는 고전으로서 빛을 잃지 않는 비밀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탈근대를 외치고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대에도 연암의 문학은 전혀 낡지 않았다.

21세기에 다시 읽는 연암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연암은 출신 성분과 더불어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어 입신출세할 수도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또한 그는 좁은 국토에서 벗어나 천하의 대세를 살피고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청나라를 다녀온 뒤, 북학 사상을 집대성한 거작 『열하일기』를 남겼다. 당시 양반 사회의 보수적인 시류에 맞서 자신의 문학적ㆍ사상적 진보성을 견지하고자 했던 연암은 자기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한 양심적인 작가요, 사상가라 할 수 있다.

창강 김택영은 중국의 당송 팔가에 비견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문가의 한 사람으로 연암을 꼽은 바 있다. 하지만 연암은 고문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표현과 조선 고유의 속어ㆍ속담 등을 구사하여 참신하고 사실적이면서 민족문학적 개성이 뚜렷한 산문들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양반전」 「호질」 「허생전」 「열녀 함양 박씨전」 등의 한문소설로 인해 그는 조선 후기 소설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법고창신’을 핵심으로 하는 연암의 문학론은 당대 조선의 현실을 참되게 그릴 것을 주장한 점에서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의 선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옛날을 기준으로 지금을 본다면 지금은 참으로 비속하다. 하지만 옛사람도 자신을 보면서, 반드시 스스로를 옛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터이다. 당시에 그 시를 살펴보던 사람 역시 일개 ‘지금 사람’이었을 뿐이다. …… 지금 무관은 조선 사람이다. 조선은 산천이며 기후가 중국 지역과 다르고, 그 언어나 풍속도 한나라, 당나라 시대와 다르다. 그런데도 글 짓는 법을 중국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나라, 당나라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그 글 짓는 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내용이 실로 비루해지고, 그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따름이다.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시민사회와 국민국가 수립이 시급한 과제였던 시대에 연암의 문학과 사상이 무엇보다 먼저 ‘근대지향적인’ 유산으로서 주목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오로지 그와 같은 시각에서만 연암을 바라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는 지금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체제가 완성되면서 세계가 급속히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국가ㆍ민족ㆍ문명ㆍ계층ㆍ지역ㆍ성별 등 기존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과 인간다운 삶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에 직면하여 어떻게 주체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시대의 ‘화두’라고한다면, 시대착오적인 고루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발상을 전환하여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가르친 연암의 작품들은 그에 응답하는 살아 있는 고전이 될 것이다.

연암 박지원 문학의 정수
연암의 작품을 국역한 선집은 지금까지 여러 종이 간행되었다. 그중 1960년 북한에서 나온 홍기문의 『박지원 작품선집』은 시기적으로 앞서면서도 높은 번역 수준을 성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후에 나온 어떤 선집도 질적ㆍ양적으로 그 수준을 완전히 넘어섰다고는 보기 어려울 듯하다. 남한에서 나온 작품 선집들도 홍기문의 선집을 바탕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라 분량이나 수록 작품의 면모에서 홍기문의 것을 능가하는 것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홍기문의 책을 포함한 종래의 선집들은 모두 연암의 시문완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로 인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연암 연구가 상당한 정도로 축적된 오늘날의 안목에서 보면, 작품 선정과 해석 등에서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이 책은 질적인 면과 양적인 면에서 모두 홍기문의 책을 뛰어넘는다. 김명호 교수가 우전 신호열 선생과 함께 번역한 『연암집』을 저본으로 하여 연암 박지원의 대표작 100편을 엄선한 것이 바로 이 책인데, 앞선 『연암집』이 학술적인 전문 번역을 추구했다면, 이 책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보다 문학적이고 대중적인 번역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연암집』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연암의 대표작으로 널리 읽히는 『열하일기』의 작품 6편을 추가하여, 연암 박지원의 대표적 문학 선집으로 손색이 없도록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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