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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박기현
역사의아침 200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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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l 귀화 성씨, 역사를 만들다

1부. 한반도를 선택한 사람들
유구 산남왕 온사도 _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망명왕
베트남 망명 왕족 이용상 _화산 이씨
흉노족 왕자 김일제 _경주 김씨
인도 아유타의 공주 허황옥 _김해 허씨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출신 장순룡 _덕수 장씨
이성계의 오른팔, 여진족 이지란 _청해 이씨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_사성 김해 김씨
조선에서 전사한 명나라 장수 가유약 _소주 가씨
조선에 뿌리내린 네덜란드인 박연 _파란 눈의 박씨

2부. 우리나라를 찾은 귀화인의 역사
얼마나 많은 귀화인이 들어왔을까?
상고시대의 귀화인들
삼국시대의 귀화인들
통일신라시대의 귀화인들
고려시대의 귀화인들
조선시대의 귀화인들
DNA로 본 한만족의 실체
미래의 한국인,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에필로그 l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밀고 온 귀화 성씨
참고 자료에 대해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현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겸임교수, 역사작가. 소설가이다. 안동 출신의 역사작가로 우리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집필한 책 중 『조선의 킹메이커』는 역사서 부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LG그룹 홍보팀장, [국제신문] 기자, [도서신문] 초대 편집국장, [월간조선] 객원에디터,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 문화정책 비평서 『이어령 문화주의』를 출간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류성룡의 징비』『조선참모실록』『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KBS HD 역사스페셜』(제5권)『악인들의 리더십과 헤드십』(동양편·서양편) 등의 역사서와
현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겸임교수, 역사작가. 소설가이다. 안동 출신의 역사작가로 우리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집필한 책 중 『조선의 킹메이커』는 역사서 부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LG그룹 홍보팀장, [국제신문] 기자, [도서신문] 초대 편집국장, [월간조선] 객원에디터,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 문화정책 비평서 『이어령 문화주의』를 출간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류성룡의 징비』『조선참모실록』『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KBS HD 역사스페셜』(제5권)『악인들의 리더십과 헤드십』(동양편·서양편) 등의 역사서와 『한국의 잡지출판』『책읽기 소프트』 등의 교양서 10여 권, 『러시안 십자가』『태양의 침몰』『별을 묻던 날』『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 등의 장편소설 및 여러 권의 번역서들이 있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면서 경험하고 깨우친 유대인 이야기를 몇 권의 책으로 펴낸 바 있고 『유대인들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안산에서 작은 교회를 개척해 미자립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겸임교수이자 소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이메일 kikenpost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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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450g | 153*224*20mm
ISBN13
9788995884928

책 속으로

지금부터 약 10년 전 화산 이씨의 종친회 대표들이 선조의 고향 베트남을 찾아갔다. 선조들이 고려 고종 13년(1226)에 망명한 지 770여 년 만이었다. 그들은 베트남이 선조의 땅이니 한번 만나보기라도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그러나 도착하고 나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국의 보통 시민들을 맞이하기 위해 베트남의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했고, 정부는 베트남인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며 깍듯이 왕손 예우를 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은 이 나라의 왕조가 남긴 유일한 왕손이 금의환향했다고 대서특필했다.

"800년 만에 끊겨버린 리씨 왕조의 왕통이 부활했다"가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의 머리기사였다. 지금도 해마다 리왕조 건국기념식(음력 3월 15일)에는 종친회 대표들이 초청된다. 4년 전에는 양국 예술가들이 합작으로 「이용상 오페라」를 하노이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망명객 이용상으로서는 조상에게 진 빚을 800년 만에 갚은 셈이다.

--- pp.32~33

"저는 태양 왕조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 제가 본국에 있을 때부터 부왕과 모후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우리 내외가 어젯밤 꿈에 하늘의 상제를 보는데 상제께서 가라국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 보낸 왕으로서 신성한 분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올라가셨다. 너는 이 자리에서 부모와 작별하고 가락국으로 떠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신선이 사는 곳에 있는 실과를 찾고,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린다는 반도 복숭아를 찾아 이렇게 감히 용안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수로대왕도 화답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러워 공주가 이렇게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그러기에 신하들이 왕비를 맞이하자는 청을 해도 물리쳤는데 이제 현숙한 그대가 왔으니 이 몸에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두 사람은 그날 결혼해서 함께 두 밤과 하루 낮을 보낸 후 수레를 타고 궁으로 돌아가고, 왕비 허황옥을 따라온 뱃사공 15명과 배는 왕후의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 pp.67~68

1653년 6월 14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선박 스페르웨르 호가 인도네시아 자바를 출발하여 7월 16일에 대만을 거쳐 7월 30일에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이 배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해류와 태풍에 휘말려 표류하다가 8월 15일 새벽 1시경 제주도 남쪽(가파도, 산방산 앞 용머리 해안, 강정 해안, 화순 해수욕장 등 여러 곳이 추정되는데 제주도는 용머리 해안에 하멜 기념관을 세웠다)에 난파해 왔다. 암초에 세 번 부딪히고 배는 가라앉기 시작하여 불과 15분 만에 수많은 선원들이 수장됐다. 이들은 이곳에서 3일간 머물면서 어민의 신고를 받고 찾아온 대정 현감 권극중에게 발견돼 구출되었다.
대정현의 군인들이 출동하여 100여 명이나 이들을 포위했으며 이어서 1천여 명이 이들을 에워쌌다. 이들은 8월 21일에 말을 타거나 들것에 실려 대정현으로 이동했다. 제주목사는 이들을 제주목으로 이동시킨 후 억류하고 6명이 교대로 제주 읍성 밖을 출입하도록 했다. 전체 선원 가운데 26명이 익사했고 생존자는 36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하멜도 있었다.

입고 있던 옷은 흑, 적, 백의 세 가지 색깔이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아 필답을 시도하니 십자 셋을 그리고 나머지는 여섯을 세고 거듭해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 후 눈을 감고 쓰러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가슴을 두드린 것은 생존자를 뜻하는 것이고 눈을 감고 쓰러진 것은 사망자를 의미하는 것임을 생존자 수를 세어보고 알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해 그저 동쪽을 가리키니 이들이 '야빵[JAPAN]'이라 하고, 서쪽을 가리키니 '타방[大邦, 중국]', 북쪽을 가리키니 '꼬라이[한국]'라고 했다.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자 제주목사는 조정에 서양말을 할 수 있는 통역사를 구해달라고 요청했고, 그해 10월 29일에 이미 귀화한 박연이 제주도로 내려왔다.

--- pp.142~143

한반도는 중국이나 북방 지역에 전쟁이나 대홍수, 가뭄 등의 재해가 있을 때마다 해당 지역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몇 가지 큰 사건들로 인해 한반도에 많은 귀화인들이 몰려왔는데, 중국의 혼란기였던 위진남북조시대, 당나라가 몰락할 때, 발해가 멸망할 때, 중국 송나라가 멸망할 때, 그리고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에 대규모 귀화가 발생했다. 당시에 넘어온 귀화인이 얼마나 많았는지 본토 반도 안에 살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달라지고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현재 국내에 있는 성씨를 조사한 결과 약 46퍼센트가 귀화 성씨라고 판단되는데, 인구 수로 보면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에서 거의 절반까지 달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차이는 몇몇 성씨들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쨌든 기원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귀화 성씨로 짐작되는 몇몇 성씨를 합하면 귀화인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다.

--- pp.152~153

출판사 리뷰

역사 속 우리 땅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다!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를 찾은 귀화인들의 기록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단군 이래 한 핏줄을 이어받은 단일 민족이라 배우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우리 민족은 반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2005년, 외국인과의 국제결혼은 4만 3천 건 이상으로 전체 결혼 건수의 13.6%, 곧 7명 가운데 1명 정도이고, 농촌 지역은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또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자녀가 2만 5천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8천 명이 초ㆍ중ㆍ고교에 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근래에 들어 일어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주변의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민족이 들어와 자연스레 동화되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대륙의 혼란을 피해, 또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이유 때문에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 몽골, 여진, 거란 등에서 실로 많은 민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 굳게 믿으며, 피부색과 나라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과 취재를 바탕으로 엮어낸 다양한 귀화 성씨 이야기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전해지던 귀화인, 귀화 성씨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모으고 그 후손들을 취재하여 집필한 책이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 출신인 그들이 새 문물을 들여와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가 다양하게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외국 사정에 밝아 외교 사절로 기용되거나 외교문서 작성, 통역, 외국어 교육 등의 일을 했으며, 일부는 왕의 측근에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와 조선의 건국 초기에는 정권 창출에 적극 기여하기도 했고 무장으로서의 역할도 맡았다. 조선 중기와 후반에도 끊임없이 많은 이들이 귀화해 왔는데, 출신지는 모두 다르지만 우리 땅에 잘 정착해 당당히 역사의 한 축을 구성했다. 귀화인들은 한반도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역사를 일구어나간 것이다. 이처럼 낯선 땅에서 한국인이 되어 살아온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우리의 역사를 만든 대단한 인간 승리자들이다.

전쟁과 재난을 피해, 우리나라를 흠모해 한반도를 선택한 이들의 기록

오키나와의 옛 왕국인 유구국의 산남왕 온사도는 15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배를 이용해 조선으로 들어왔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태조가 의복과 식량을 내주고 조정에 불러 조회에 참석시키는 등 배려했으나, 그는 미처 조선에 적응하기도 전에 이승을 하직했다. 망명은 성공했으나 정착에는 성공하지 못한 비운의 망명객이 된 셈이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은 베트남의 첫 독립국가인 리씨 왕조의 왕족으로, 베트남에서 고려로 귀화해 식읍을 하사받고 후손도 퍼뜨려 화산 이씨의 세보를 한반도에 정착시켰다. 10년 전 그 후손들이 베트남을 방문하자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하며 "800년 만에 끊겨버린 리씨 왕조의 왕통이 부활했다"며 깍듯이 왕손 예우를 했다.

함경도 북청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이지란은 '쿠란투란티무르'라는 이름의 여진족으로,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고, 조선 개국에 앞장선 일등공신이다. 또, 평소 조선의 문물을 흠모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의 고위 장수 '사야가'는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전수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잇따라 공을 세워 벼슬에 올랐고, 김씨 성을 사성받고 이름을 충선이라 했다.

소주 가씨의 시조인 가유약은 명나라 조정의 고위 관료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들, 손자와 함께 조선원군 전투 지휘관으로 참전해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했고, 이 외에 배를 타고 가야로 들어와 수로대왕과 결혼해 자손을 퍼뜨린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원나라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 충렬왕의 측근이 된 위구르 출신의 장순룡 등도 있다.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으로는 일본으로 가던 중 음료수를 구하려다 제주도에 표착해 우리나라로 오게 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있다. 그는 포로가 된 왜인들을 감시, 통솔하는 한편 명나라에서 들어온 대포의 제조, 조작법을 지도했다.

열린사회, 다문화사회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책!

현재 전 세계적으로 1년에 1억 명 이상의 인구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전체 인구의 1.1%를 차지한다. 또 21개 이상 나라의 여성들이 국제결혼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다. 이처럼 국제결혼의 급증과 그에 따른 새로운 성씨의 출현은 더 빠른 속도의 변화를 예고한다. 하지만 그들을 맞는 우리의 시선은 과연 어떠한가?

사실 귀화인을 포함하여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심하다. 저 멀리 외국에 있는 교포들은 '해외동포'라는 말로 감싸면서,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인데도 외국인들은 언제나 이방인 취급을 한다.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옛 선조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동화책을 썼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그들과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어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접하고, 낯선 이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선 선조들의 자세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열린사회, 다문화사회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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