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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문학ㆍ예술 기행
이덕형
책세상 20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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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풍경 시학

1부

1.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원을 찾아
2. 빛의 앙금
3. 나무와 돌 그리고 물
4. 네바 강 심포니
5. 은박 없는 거울

2부

6. 거리의 풍경, 그 안의 시간
7. 겨울 궁전에서 여름 정원으로
8. 기념비를 세우다
9. 넵스키 대로 - 사이버 스페이스
10. 그림자 소묘 - 가탁의 도시

저자 소개 1

프랑스 미셸 드 몽테뉴 보르도 3대학 슬라브어문과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작품의 시학적 변형」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러시아어문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이콘과 아방가르드』 『다쥐보그의 손자들: 동슬라브-러시아 신화』 『도스토옙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검은 사각형』 등을 썼고,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민중문화』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로부터의 수기 외』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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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78g | 153*224*30mm
ISBN13
9788970133034

책 속으로

텅 빈 광장에서의 무료나 권태와는 달리, 도시의 숨가쁜 리듬을 잠시 느리게 만들 수 있는 이 도시의 정원은 인공와 자연사이의 대구를 실현하는 공간이다. 도시의 인공적인 리듬 속에 잠시 자연의 리듬에 귀를 기울리게 하는 정원과 공원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작용을 이상화하는 심미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람들은 원근법을 알게 되고, 명암과 갚이가 있는 풍경화를 그리더니, 그 풍경 자체를 아예 소유하고자 했다. 이곳은 프랑스식의 기하학적이고 형식적인 정원에서 풍경을 담은 영국식 정원으로 변화를 거쳤다. 정원은 풍경을 닮았고, 풍경은 정원을 닮아갔다. 사람들은 니콜라 푸생이나 클로드 로랭의 풍경을 도심의 공간 내부에 심고자 했다. 정원은 인간과 자연의 이상적 합일을 상정함과 동시에 인가이 자연을 지배하고 길들이고 돌보는 기독교적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볼테르가 <캉디드>에서 사람은 자기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이 정원은 이성과 계몽의 정원이기도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사람들의 얼굴 속에, 내면이 고요에 맞닿은 평화로운 표정 속에 자리잡고 있다.

1710년 러시아 최초로 정원 조경 법령이 제정되었고, 유럽의 전문 조경사들을 초빙하여 식재植裁와 조경에 관한 지식이 보급되었따. 동시에 일반 민중들을 위한 공원도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의 정원은 타브리체스키 정원이나 멘쉬코프 저택의 정원, 셰레메체프 궁전의 정원처럼 17세기 프랑스의 정원 조경을 모방하고 있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조성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연 경관을 균형 잡힌 이성의 산물이자 자연에 대한 인간 이성의 승리로 간주했던 것이다.

정원사들은 정원의 나무와 넝쿨과 잎사귀를 단정하고 각지게 이발했고, 그래서 장원의 외양은 잘 다듬어진 바둑판 같았다. 그러나 1750년대 이후, 바로크 건축에서 고전주의 건축으로 전이되는 시기에는 정원의 족여 방식도 바뀌게 된다. 클로드 로랭과 푸생의 그림에 묘사된 풍경과 같은 자연스러운 정취의 정원이 프랑스 정원의 인위적이고 기하학적인 추상의 선들의 정원을 대신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하학적 선들이 회화적인 풍경 자체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 pp 161~163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회귀하는 연어처럼, 시간 속을 역류하는 기억들이 집을 지어놓은 장소이자 우리가 읽고 보고 들어야 했던 러시아의 작가, 화가, 작곡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던 모더니티의 도시 공간이기도 하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가들의 내면과 그들의 서정적 상상력이 담고 있는 저 먼 곳의 다음성적(多音聲的) 공간의 의미 있는 골격만을 모아 풍경과 기억과 내면에 의지하여 하나의 둥지로 만들고 싶었다.

해 저문 거리의 창문에는 인공의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문 밖의 추위가 맹위를 떨칠수록 집 안은 아늑한 섬이 된다. 이 섬에서 보내야 하는 긴 시간, 러시아 작가들은 빛 속에 갇혀 있던 지난 여름의 인상들, 그 파편과 흔적들을 불러모아 겨울밤 내면의 공간에 깊이 가라앉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힘은 긴 겨울과 그 긴 겨울의 책상 위에서 타오르는 램프의 불빛과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간의 섬에서 홀로 견디며 스스로 심연 속에 가라앉는 마음의 앙금, 바로 그와 같은 힘에서 연유하고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가 '나무'와 '원환'의 도시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돌'과 '직선'의 도시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아시아풍의 성스러운 도시'라고 묘사했던 모스크바가 나무와 원환의 이미지 속에서 '어머니-대지'의 모성적인 부드러움을 내포하는 여성적 도시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돌과 직선의 기하학적 이미지 속에서 남성적인 강인함을 보여준다.

이 두 도시의 문화적 차이는 결국 '나무와 돌'의 차이이기도 한데, 모스크바가 아시아적이고, 시골스럽고, 안락하며, 벗과 같은 자연스러움과 가슴의 도시라면상트페테르부르크는 냉담하고, 공식적이고, 추상적이고, 비러시아적인 머리의 도시로 간주된다.

러시아는 언제나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국가의 정체성 문제로 흔들렸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유럽 도시'가 됨으로써 유럽의 변두리에 위치한 아시아의 도시, 모스크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일정한 문화적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 pp 69~70

1843년 프랑스어로 출판된 드 퀴스탱 후작의 러시아 여행기, <차르의 제국 : 영원한 러시아 여행 La Russia en 1839>은 도스토예프스키가 <페테르부르크 연대기>에서 러시아에 대한 그의 비판적 안목에 언짢은 언급을 할 만큼 당대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러시아의 현실 해부서였다. 드 퀴스탱 후작의 여행은 7월 10일부터 시작되는데, 그의 풍경 묘사는 핀란드 만과 네바 강 어귀의 황량함에서부터 시작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가가면서, 쓸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는 그곳의 자연만한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으로 접어들자 평평한 늪지대가 하늘과 육지 사이에 줄쳐진 미세한 선의 파동 속에서 끝나고 있었다. 바로 그 선이 러시아였다. 여기저기 자작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늪의 저지대가 시선이 닿는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풍경이 보일 만큼 날은 밝았지만 텅 비고, 색채도 윤곽도 장엄함도 없는 경치였다. 이 회색의 대지는 창백한 태양과도 조화를 이룬다. 그 태양은 머리 위에서가 아니라, 수평선 근처에서 혹은 거의 그 밑에서부터 비치고 있었다.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으로 인해 벌어진 예각은 이 대지를 창조주의 의붓자식처럼 보이게 했다. 밤이 오히려 투명했고 낮은 우수가 깃든 모호함의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가장 화창한 날에는 푸르스름한 색조를 띠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기 전 진흙의 사막으로 둘러싸인 물의 사막을 건너야 한다. 바다와 연안과 하늘과 같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그것은 거울 같지만, 박箔이 없어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유리처럼, 흐릿하고 희미했다. - 드 퀴스탱, <차르의 제국 : 영원한 러시아 여행>

(...) 여름날 아침이면 가로수가 도열한 '대학 강변도로' 제방이나, 제바강 건너편 '영국 강변도로' 제방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호텔 건너편의 '페트로그라드 강변도로' 제방에서 네바 강물에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자주 눈에 띈다. 연 평균 50~150일 정도나 얼음에 뒤덮이는 제바 강의 여름은 낚시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들은 주로 꼬치고기, 쏨뱅이, 농어, 잉어, 황어, 붕장어, 칠성장어들을 낚는다. 물고기들은 네바 강과 라도가 호수 사이의 물길을 왕복하며 살아간다. 운이 좋은 날이면 물사이 센 강 상류의 산란 장소를 찾아 역류하는 연어를 낚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도 물고기보다는 네바의 도저한 흐름 속에 숨겨져 있는 시간과 시간의 비밀을 낚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겨울이면, 이 네바의 심청의 기운도 하얀 눈과 얼음에 뒤덮인다. 아마도 물고기들은 겨우내 얼음 밑을 차가운 물살과 헤엄치다가 해빙의 봄이 되어야 겨우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브롯스키는 소비에트 시절의 이곳 사람들을 얼음 밑의 겨울 물고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네바 강의 겨울 물고기처럼 소비에트의 불안한 태양 밑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빛 없이도 헤엄을 칠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빛은 이제 정교를 상징하는 빛과 같은 것이 아니라, 태양에 가탁하는 지상의 신인 소비에트의 권력에 대한 것이다.

--- p. 88~91

출판사 리뷰

교양 인문서

심오한 꿈의 나라, 슬라브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 한편으로 투박하지만 광활한 자연을 통해 삶의 환희를 배울 수 있는 나라.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는 러시아는 지금껏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그래서 러시아는 고골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꿈을 꾸고 있는 몽상가들의 나라,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가난의 삶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편 미국을 겨냥해 가장 강력한 사상적·정치적 힘을 과시하는 나라로 받아들여져왔다. 그만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여전히 자세히 들여다보기에는 먼 나라였다.

과거의 러시아와 현재의 러시아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저자는 러시아가 가장 화려했던 당시 세워져 역사의 부침을 거쳐 현재 러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로 각인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어려 있는 '러시아의 영혼'의 뿌리를 찾아간다. 역사 문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 문학적 서정성과 현상의 이면을 관찰하는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과 미문은 이 책을 여행의 단상이 녹아 있는 단순한 기행서가 아닌 깊이 있는 인문 에세이로 상승시킨다. 특히 푸슈킨, 트레지니, 바흐친, 칸딘스키, 말레코프, 에이젠슈테인, 차이코프스키, 레닌 등 문학, 건축, 미술, 영화, 발레, 음악, 정치에 걸쳐 구소련의 역사적 인물들과 버만, 보드리야르 등 서구의 예술인 학자들까지도 쉴 새 없이 끌어들이며 그들의 내면세계를 투사하여 동화의 감정과 동시에 그들 특유의 지적 아우라도 체험하게 한다.

과거의 빛과 현재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상징주의자 블로크Aleksandr Blok는 빛 속에서 혁명과 도시의 몽상이 불러일으키는 환영과 절망적인 섬망을 보았다. 텅 비었지만 가득 차 있고, 가득 차 있는 듯하지만 비어 있음을 표현해야 했던 러시아 회화의 거장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이 빛 속에서 허망함의 극치를 보았다. 그런가 하면 도스토예프스키의《백야》에서 몽상가인 '나'는 빛의 불면에 다름 아닌 '백야'에서 신비스러운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의사 지바고》에서 표현하는 작별도 바로 이러한 빛과의 이별이 가져다주는 근원적인 절망감이다. 이처럼 러시아 삶에서 빛이 가진 다양한 속성을 탐구하고, 새롭게 해석하려는 저자는 빛이야말로 러시아 문학을 있게 한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빛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현재 러시아의 현실과 맞물려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 제정러시아의 수도로서의 화려함과 아시아풍의 성스러운 도시가 갖는 빛의 이미지 뒤에 빈곤과 궁핍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의 영혼'을 더럽히는 서구 지향의 모더니티 문화를 우려했던 때부터 혁명 후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 노비 루스키Novyi Russkii(신흥 졸부)가 등장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가 안고 있는 이중성이다. 이렇게 이상으로서의 '빛'과 현실로서의 '그림자'는 이 도시가 안고 있는 분열과 모순, 괴리감과 삶의 양면성의 부조화로도 읽힌다.

또한 이 이중성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다양한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북부의 베니스', '제2의 암스테르담', '흰 뼈들 위에 세운 도시', '북방의 팔미라', '북구의 파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 만큼 이 도시는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이 도시를 건설하던 당시 물기 스민 연약한 지반을 다지는 데 동원된 병사들과 러시아 각지에서 징용된 한 해 4만여 명의 민초들은 화강암과 대리석을 가까이는 지금의 발트 해와 핀란드, 멀게는 중앙아시아에서 실어 와야 했다. 그들은 네바 강의 건너편, 앞으로 건설될 도시의 지층에 백골로 눕게 될, 그래서 '하얀 뼈들의 도시'로 불리게 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름 없는 증인들이 된다.

예화를 통해 본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

러시아 문화 속에서 흥미롭게 발견되는 것은 바로 동상의 역사이다. 러시아정교회는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간의 조각상이나 입체적인 기념물을 이교도의 우상이라 하여 금지했기 때문에 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실제 같은 인간의 조각상은 마치 피그말리온의 꿈이 실현된 것과 같은 인상을 동시대인들에게 심어주었다.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의 이미지는 이 도시의 창세기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상징적 기념물이 되었다. 또한 스탈린이나 레닌 같은 혁명가들의 동상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푸슈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창세기 신화를 대표하는 서사시 <청동 기마상>을 집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츰 동상이 주는 생경함이 사라지면서 처음에는 열정과 흥분으로 바라보던 동상에 그네들만의 해석을 가미해 재미있는 일화가 생겨나고 있다.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기차를 타고 온 레닌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레닌 동상을 가리켜 사람들은 그가 왜 한 팔을 앞으로 뻗고 있는지 말한다. "헤이, 택시!" 택시를 잡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가 왜 오른손을 11시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도 있다. "술집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야." 보드카를 파는 주류 상점이 보통 11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술집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상징의 약효를 다해버린 레닌 동상에 붙여진 웃지 못할 예화들이다. 또 맥도날드의 M과 지하철Metro의 약자 M을 구분하지 못해 맥도날드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했던 사람들을 통해 이곳 사람들이 자본주의 문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예화들은 러시아 역사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북방전쟁(1700 1721) 초기에 스웨덴에서 되찾은 핀란드 만과 네바 강의 어귀에서 표트르 대제의 "이곳에 도시를 세우겠노라"라는 한마디로 시작한 이 도시의 시원을 얘기한다. 그리고 네바 강의 범람 등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이 도시가 수용한 '돌의 문화'의 역사를 말해준다. 또한 네바 강에서 바라본 스핑크스와 해전 기념 원주, 루살카, 러시아 혁명의 신호탄인 아브로라호를 차례로 설명한다. 특히 대포 한 방으로 러시아를 혁명으로 이끈 영화 <10월>의 주인공 아브로라호 뒤에 숨어 있는 역사적 상황과 함께 설명한다.

2부에서는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서 거리로 사람 사이를 걷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현재와 미래 사이의 유동성을 다룬다. 거리의 소음을 내일을 위한 심장의 박동으로, 혁명의 신호로 받아들였던 시인 마야코프스키를 만나고 항상 거리의 '왼쪽'으로만 걸어야 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의 사상을 엿본다. 이 도시의 심장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순환하는 대중들의 공간' 넵스키 대로에서는 새롭게 들어온 자본에 유입되어가는 러시아 혁명 이후의 현재의 모습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빈민가 센나야 광장을 중심축으로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코쿠쉬킨 다리, 보즈네센스키 다리 등 실제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의 무대가 되었던 문학 속 지명들을 차례차례 거닐면서 작품 속 세계로 동화되기도 한다.

이렇듯 거리를 거닐면서 저자는 자신만의 '풍경의 시학'을 찾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골목골목, 거리거리를 한 편의 시, 하나의 시어, 음절에 대입함으로써 거리의 풍경을 내면에서 읽는 방법 나아가 풍경 속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풍경에서 내면을 만나듯 가장 먼 곳으로, 가장 깊은 곳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사람들은 궁극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 내면과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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