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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Ⅰ. 빈 분리파 1. 빈 분리파 결성 분열 Ver Sacrum: 성스러운 봄 Ⅱ. 클림트 작품의 조형적 특징 1. 클림트의 상징주의 상징주의 클림트의 상징주의 여성에 대한 상징 나르시시즘(Narcissism) 팜므 파탈 이미지 2. 클림트의 표현과 장식성 클림트와 아르누보 일본 영향 장식성 3. 에로티시즘과 팜므 파탈 이미지 에로티시즘 팜므 파탈 이미지 Ⅲ. BEETHOVEN FRIEZE 1. Beethoven Frieze 신전의 예술 제14회 전시회 장식주의와 상징주의로서의 기나긴 여정 그리고 복원 2. The Stoclet Frieze for the dining room Ⅳ. LANDSCAP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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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아름다움과 상징주의의 환상성 그리고 클림트가 만들어내는 키치적인 풍자를 모두 담은 미디어 아르떼의 클림트 시리즈.
필자는 2년간 빈에 3차례 방문하여 클림트에 대한 1차적 자료들을 수집 하였으며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두 권의 작은 화집을 만들기로 계획 하였다. 이번에 2편인 VER SACRUM 을 여러분들에게 선 보인다. 1편에는 클림트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 하였고 그가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하는데 기반이 되었던 상업미술 작품들을 소개 하였다. 2편에서는 자신만의 작가주의와 창작성을 가미시킨 클림트의 예술적 작품을 시대별로 정리 하였다. 특히 클림트의 명작 <키스>에 대한 좀더 명확하고 새로운 해석을 해보았다. VER SACRUM 본문 소개 I. 빈 분리파 1. 빈 분리파 결성 분열 Ver Sacrum : 성스러운 봄 오스트리아 미술계를 독점했던 미술가연맹(Kustlerhausgenossenschaft)의 회원이기도 했던 클림트. 미술가연맹은 클림트를 후원하여 그가 더욱 빠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기운을 무조건 차단만 하는 미술가연맹의 보수성에 반발하여 40명의 동료 미술가들과 함께 빈 분리파를 만들었다. 이 역동적이고 활기찬 새로운 근대미술의 조직은 오스트리아 근대미술의 핵심을 이루는 저명인사들로 성장하는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만큼 오스트리아 근대미술 속에는 클림트와 빈 분리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업미술가와 순수미술가의 공존에는 한계가 있었다. 클림트는 빈 분리파를 떠난다. 1908년 클림트와 그를 따르는 18명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단체인 Kunstschau (쿤스트샤우:예술전시회)를 동해 첫 전시회를 갖는다. 화가로서 절정기에 달 했던 클림트는 쿤스트샤우의 첫 전시회에서 명작 II. 클림트 작품의 조형적 특징 1. 클림트의 상징주의 상징주의 클림트의 상징주의 여성에 대한 상징 나르시시즘 팜므파탈 이미지 2. 클림트의 표현과 장식성 클림트와 아르누보 일본 영향 장식성 3. 에로티시즘과 팜므 파탈 이미지 에로티시즘 팜므 파탈 이미지 클림트는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역사주의 화풍으로 기초를 다진 화가이다. 또한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아는 상업미술가 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전통을 파괴할 것 만 같았던 급진적인 화가가 아니었다. 클림트는 끝없는 호기심속에 새로운 것 들을 받아들인 화가였다. 전환기의 대표적 상징주의 화가로 칭해지던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장점들을 수용한다. 즉 신화에 대한 심층적인 상징을 보여준 호들러와 인간의 관계를 본질적인 정신적 관계로 보았던 뭉크의 특징을 클림트 식으로 수용, 변화시킨 것이다. 2장에서는 클림트의 작품에 대한 저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상징주의, 에로티시즘 그리고 남성을 해치는 요부의 이미지와 장식주의등 클림트의 예술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재료들이 무엇이었지 작품을 통해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III. BEETHOVEN FRIEZE 1. Beethoven Frieze 신전의 예술 제14회 전시회 장식주의와 상징주의로서의(Beethoven Frieze) 1901년 여름-베토벤 전시 카탈로그에 에른스트 스토어(Ernst Stohr)가 쓴 머리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져 있다. [분리파는 일상적인 전시습관에서 벗어나는 전시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결정한다. 물론 분리파는 이미 자신들의 작업이나 외국화가동료들의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추구해 왔고 본보기가 될 만한 전시들을 창조해 왔던 터지만 이번에 더 멀리 나가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분리파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기념비적 근대예술을 공개하는 최고의 방법을 찾고 싶어 했으며 또한 그런 작업의 과정 자체를 강조하고 싶었다. 오스트리아에 있어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종종 인류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겪고 힘들어하는 예술천재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류에게 자유를 주는 구세주로서의 예술가를 표현 하는 것이 14회 분리파 전시회의 목적 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클림트의 영웅주의와도 연관 되어져 있다. 베토벤을 통해서 클림트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영웅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 서적에는 전시회 이후 벌어진 클림트 작품들의 파괴될 위기를 어떻게 넘겼고 누구에 의해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서 보존 및 복원이 되어서 현재까지도 살아 숨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최초로 실었다. 2. The Stoclet Frieze for the dining room 전시회가 예술적 성취감을 나타내는 것 이라면 벨기에 스토클렛 대저택의 벽화작품은 클림트 상업미술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저택 인테리어의 모든 것을 책임 졌던 요제프 호프만의 야심에 의해 스토클렛 저택은 총체예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다. 벽화와 식당 실내장식을 맡았던 클림트 자신의 말을 빌자면‘아마도 나의 장식발전의 궁극적 단계를 보여줄’ 장식 작품을 만들게 된다. 클림트는 식당의 실내장식을 치장하는데 무제한의 예산을 배당 받자 에나멜, 다양한 금속, 색유리, 산호, 자개, 준보석 등 고가의 재료로 모자이크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클림트의 스토클렛 벽화는 자연주의와 양식화 사이에 자리하며 동시에 순수미술과 공예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7년 이라는 오랜 기간 공사를 한 스토클렛 저택은 빈 분리파 정신이 실현된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Ⅳ. Landscapes 클림트는 많은 풍경화를 그린 풍경화가 이기도 하다. 클림트는 그의 생애 중 약 54점의 풍경화를 남겼다. 1897년 휴가차 빈을 떠난 여름동안 첫 번째 풍경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