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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
1. 불우한 가정 2. 상업미술가로의 도약 3. 전통을 넘어서 4. 죽음 II. Klimt의 연인 1. Emilie Floge 2. Alma Mahler-Werfel 3. Marie Zimmermann(Mizzi Zimmermann) III. Catalogue Paint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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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
체코의 가난한 동판 및 금세공 기술자였던 에른스트 클림트(Ernst Klimt)는 궁핍함을 면하기 위해 유럽의 심장이었던 빈에 정착하게 된다. 빈의 외곽지역에서 클림트는 태어난다. 그러나 클림트는 집안의 궁핍함을 해결해야하는 운명을 가지게 된다.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위대한 재능은 그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러나 클림트는 왕실 아카데미에서 교육 받는 엘리트 화가가 아니라 청소년 때부터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상업 화가를 선택 할수밖에 없었다. 빈 공예 미술학교의 페르디난트 라우프베르거(Ferdinand Laufberger) 선생은 클림트의 재능을 높이 샀고 클림트는 곧 빈에서 가장 촉망받는 화가로 빛을 발하기 시작 했다. 빈 공예 미술 학교의 작품 수업에 있어서 상업적인 기교만을 배웠던 클림트는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게 되면서 전통적인 왕실 아카데미즘 교육을 받았으나 근대 미술로의 도약을 꿈꾸는 위대한 선배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빈 미술계는 폐쇄적인 사회였고 파격적인 근대 미술의 수용을 거부 했으므로 클림트는 새로운 조직체를 만들기로 결심 한다. 클림트는 빈 분리파의 리더로써 빈의 근대미술을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918년 1월 11일 뇌졸중과 심장발작으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었다. 병상에 누워 고통을 견디던 그는 유럽을 휩쓸고 간 스페인 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2월 6일 사망하였다. II. Klimt의 연인 클림트는 천재적인 화가였다. 여성들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남성에게 흥미를 가지게 된다. 더군다나 클림트는 빈의 상류층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던 화가였으며 빈 사교계의 유명인사 중 한명 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뜰리에에는 항상 3-4명의 여성 모델들이 클림트의 작품활동을 위해 상주하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클림트 주변에는 여성들이 모여들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그중 에밀리 플뢰게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흠모 하였으나 사랑하진 못했던 사이 에밀리 플뢰게. 클림트는 클림트의 여성편력은 마리 침머만을 통해서 더욱 잘 알 수 있다. 오로지 클림트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모델 마리 침머만은 아름다운 외모와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클림트의 자식들을 낳아주었던 그녀는 클림트가 보내주는 편지와 동봉한 생활비를 가지고 힘겹게 살아야만 했던 불행한 여성 이었다. 클림트는 그녀의 집 앞을 자주 지나갔지만 아주 가끔만 마차를 멈추고 집에 들러서 자식을 보고 가곤 했다고 한다. 마리 침머만은 허름한 집에서 클림트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여인 이었다. 가장 당당했으며 독립적이었던 에밀리 플뢰게, 당당했으나 클림트를 그리워했던 알마 마리아 베르펠 그리고 오로지 클림트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았던 마리 침머만. 그러나 클림트가 쫓았던 이상적인 여인은 에밀리 플뢰게 였다. 외모만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그녀였으나 작품 III. Catalogue 클림트 시리즈를 시작으로 미디어 아르떼는 최상의 인쇄 시스템을 구축 하였다.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네덜란드의 Vanson 잉크를 사용하였고 독일의 MAN Roland 오프셋 인쇄기계를 가지고 모든 인쇄물에 250선의 정밀 인쇄를 시작 하였다. 앞으로도 세계에 내놓아도 가치를 인정받는 브릴리아 시리즈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