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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공감과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경제_강수돌(고려대 교수)
서 론 제1장 경제를 위한 인간인가, 인간을 위한 경제인가 인간은 호모이코노미쿠스인가? / 재정사회학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 사회 총체를 구성하는 세 가지 시스템 / 재정사회학의 르네상스 제2장 ‘잃어버린 10년’의 비극 전환기에 산다는 것 / 파국으로 향하는 핸들 / 민(民)과 재정의 관계 / 대처 정권, 비극의 시작 / 조세개혁으로 인플레 억제 / 생산성 향상과 산출액 저하 / 실업과 도산의 증대 / 재정의 파괴 / 인두세의 도입과 대처의 퇴장 / 신자유주의의 전파 / Y의 비극 / 실업률 증가 / 연금재정의 파탄 제3장 케인스적 복지국가의 위기 기계에 종속된 인간의 노동 / 빈곤의 극복에서 니즈의 다양화로 / 생산성의 저하 / 인간의 추방 / 환경이라는 제약조건 / 협력의 필요성 / 국가의 탄생 / 재정의 탄생 제4장 에폭의 시대는 탈출이 가능한가 세기 전환기마다 등장한 에폭 / 공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전환 / 지식매체가 대인 서비스를 가져온다 / 신자유주의는 타개책이 될 수 있는가 / 인간적 노동으로의 전환 / 스웨덴의 산업구조 전환 제5장 워크페어(workfare) 국가 반테일러주의로 조직을 혁신하다 / 상호협력과 자발적인 창의의 도출 / 지역개발 그룹과 정부의 지원 / 인재 육성이야말로 최고의 지원 / 지식자본의 축적 / 정치·경제·사회의 연관성을 전환시킨다 / 서비스 급부를 지방 정부가 담당한다 / ‘배우는 사회’ 스웨덴 / 취학 전 학교 / 10년간의 의무 교육 / 성인 고등학교 / 교육 서비스는 지식사회의 인프라 제6장 경제의 논리에서 인간의 논리로 구조개혁의 방향-일본과 스웨덴 / 사회 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의 융합 / 학습 서클 운동 / 육아 서비스의 구조 / 마인드 케어도 서비스 /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보장 기금의 역할 / 중앙 정부가 담당하는 미니멈 보장 /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 제7장 인간을 위한 미래 만들기 인간으로서 사는 시간 /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공간 / 인간생활의 현장, 도시의 재탄생 / 친환경 도시를 향하여 / 인간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 미래에 절망하는 일본 / 경제학의 실패 /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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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이코노미쿠스? 호모사피엔스!
재정학(財政學)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문제들이 생겨난 이유가 첫째 주류 경제학이 내세우는 잘못된 인간관, 둘째 허구적 가정에 바탕을 둔 잘못된 경제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의 이기적 합리인=‘경제인(호모이코노미쿠스)’이라는 생각을 비판하는 데서 그 논지가 시작된다. 호모이코노미쿠스의 경제학은 인간의 절대적 본성이 이기심에 있다고 확신하며, 인간의 정서적 측면을 경제학에서 사상(捨象)시켜버렸다. 그들이 생각하는 혹은 원하는 인간상은 삶의 희로애락을 공식에 대입해 산출할 줄 아는 기계적인 유기체다. 하지만 이코노미쿠스적인 모습은 호모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인간’의 한 형태일 뿐 전부는 아니다. 인간의 본체는 현실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지성인이며, 미래를 예상하는 예지인이다. 경제적이 측면은 지성과 예지의 표현일 뿐이다. 생각하다 보니까 경제를 염두에 두게 된 것이지, 경제적이기 위해 생각하는 능력을 발달시킨 것은 아닌 것이다. 한편, 이 책은 다분히 재정사회학적인 접근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으며, 구조개혁적 시장경제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계획되었다. 오늘날 온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신자유주의 경제사상과 그에 바탕한 구조개혁들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최악의 경제 논리다. 이 편협한 논리에 따라 오랜 세월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에 앞장서온 영국, 미국, 일본의 역사는 마치 “핸들을 잘못 꺾은 기차”와도 같다. 그러니 이제 핸들을 돌려야 한다. 방향을 잘못 잡은 기차, 핸들을 돌려라 신자유주의적인 기치를 선명히 내세운 최초의 정권은 1979년 등장한 영국의 대처정권이다. 이는 1981년 미국의 레이건 정권, 1982년 일본의 나카소네 정권으로 이어졌다. 대처리즘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케인스적 복지국가를 맹비난하면서 민영화, 규제완화, 행정개혁에 의한 ‘최소한의 국가’를 주장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었고 노동생산성은 향상되었지만, 조세개혁으로 없는 자들의 세금부담은 더욱 커졌고 부유계층의 몫을 빈곤계층에 떠넘김으로써 그들에겐 실질적인 조세인하 혜택을 선사했다, 세상은 기업파산으로 늘어난 실업자와 무너진 중소기업들의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그들이 자랑하는 결과물은 과감한 기술혁신에 앞장서는 기업이 아니라 100명이 해야 할 일을 50명이 감당하도록 노동자들을 혹사시킨 악덕 경영의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특정한 방향성이 없는 시장에 의해 공동체가 황폐화되고, 그 결과 경제적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를 지탱해줄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범죄의 증가는 물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했다. 게다가 대처를 필두로 레이건과 나카소네는 극단적인 국가주의자였다. 그들은 시장의 확산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고, 시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악’으로 규정했다. ‘경제인’은 ‘폭력적인 정치인’과의 결혼 없이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다. 여러 나라마다 자국의 특성이 있었음에도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서로 경쟁하듯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다. 시장경제의 글로벌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인간은 경제인도 아니며, 경제인으로 태어나지도 않는다. 또 경제인이 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슬픔과 고통을 나누고, 온정과 애정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경제학적 이론의 잔재가 인간생활에 침투하여 모든 인간을 경제인과 비경제인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경제인으로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패배자라는 굴레를 덧씌우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경제인 논리를 글로벌 스탠더드의 필연적인 결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후도 다르고, 풍토도 다르고, 습관도 다른 나라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틀 같은 건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미국이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아메리칸 스탠더드, 즉 미국식 표준일 뿐이다. 창조력과 구상력, 그리고 공감의 능력에 기초한 지식사회 건설 시장만능주의, 경쟁주의, 그리고 케인스식 복지국가주의의 신화에서 빠져나오기를 강권하며,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의 대안은 더 이상 편협한 호모이코노미쿠스적 모형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적 인간이 가진 창조력과 구상력, 그리고 공감의 능력에 기초하여 ‘지식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되는 과정은 에폭(epoch, 신기원, 신시대)의 시대다. 이 시대를 초월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논할 수 없다. 20세기는 중화학공업의 전성기였다. 이제 중화학공업은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몰락하고 있다. 지식사회로의 전환만이 에폭의 시대를 이겨내는 유일한 길이다. 공업사회가 시장원리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의 확장에 진력했다면 지식사회는 협력원리에 의존하는 사회 시스템의 확장을 추구하는 시대다.” 에폭은 크게 두 가지 결말로 나뉜다. 첫째는 신생, 새 시대의 시작이고 둘째는 파국, 쉽게 말해 한 시대를 구축해왔던 문명의 종결이다. 인류에게는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살펴봐야 할 책임이 있다. 그 후에 미래를 디자인하고, 핸들의 방향을 정하고, 힘껏 액셀을 밟아야 한다. 인간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사회자본, 스웨덴 저자는 사회자본(사회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사회 시스템)의 역할을 강조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스웨덴에서 찾고 있다(물론 저자가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대신해 스웨덴 스탠더드를 도입할 목적으로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다). “지식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교육이나 연구개발처럼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공공 서비스와 더불어 인간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사회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기업활동은 물론 정치활동과 공공활동에서도 사회자본이 결정적이다. 사회자본이란 결국 구성원 간 신뢰, 공동체적 가치, 연대의식, 시민정신이다. 이러한 사회자본에 기초해 스웨덴은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시장사회가 아니라, ‘인간적 지식사회’를 구축하는 데 앞장선다(스웨덴은 고부가가치인 지식집약형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개혁했다. 그러자 조세부담률을 인상하더라도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저자가 상세히 보고하고 있는 것처럼, 스웨덴에서는 ‘워크페어(workfair)’를 통해 복지체제를 재구축하고 ‘지역개발 그룹’이나 ‘비영리 조직’과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 활동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며 ‘학습사회’ 구축을 위한 교육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생산현장에서는 반테일러주의적 조직혁신을 통해 노동의 인간화를 달성하며 정보기술을 강화하고, 생활현장에서는 육아나 노인에 대한 복지 서비스를 전면화한다. 이 모든 구조개혁은 ‘인간의 생활은 인간다워야 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이런 식으로 스웨덴은 경제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 정치 시스템을 인간적 지식사회의 창출이라는 방향 아래 적절히 통합했다. 아름다운 시절을 꿈꾸는 인간적 경제학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한때 자동차 공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했고,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이할 경험도 있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성찰해온 인간의 노동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였다. 따라서 노동의 결과도 가장 인간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경제학이다. 경제는 인간을 지향해야 하며,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인간에게 행복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자 부단히 애쓰는 것, 그것이 역사다. 역사는 인간의 눈물과 땀과 희망으로 쓰여지는 거대한 책이다. 경제는 그 거대한 페이지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 이것이 우리들의 결론이다. 인간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다. 각 개인이 혼자만의 미래를 꿈꾸는 것보다 여럿이서 함께 잘살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가 다 함께 지혜를 짜내 미래를 구상한다면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시절이 될 것이다.” 물론 저자의 재정사회학적 접근 방식이나 그가 내세우는 대안의 구체적 모습들은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강수돌 교수(고려대)가 추천의 글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는 충분하다. “저자는 결국 우리의 인간적 공감의 능력과 지혜를 회복하고 연대감에 기초하여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재구축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 외치는 현실 앞에, 아무런 대안 없이 절망감과 불안감에 온몸을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많은 시사점과 함께 희망의 싹을 던져주고 있다. 경제나 경영, 정치나 사회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연구자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의 대안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지식인들이 꼭 읽고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아가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을 이끌고 있는 현실 정치가나 실무 경제인들도 이 책을 읽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보다 밝은 미래 사회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것이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