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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마장터 가는 길/ 문명을 비켜선 은밀한 산중 마을
홍천 살둔에서 문암골까지/ 거룩한 모성 서대 염불암 가는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너와집 한 채 양양 남대천에서/ 숭고한 연어의 길 양양 면옥치와 법수치/ 천연한 물길, 산길 평창 발왕재 60리/ 첩첩산중 봉산리 넘으면 구절리 정선/ 순진한 시골 영월 서강을 따라서/ 청정한 풍경 속의 섶다리, 나무다리 삼척 무건리 가는 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모롱이길 삼척 신리에서 황조리까지/ 하늘과 맞닿은 마을 울릉 북면의 가을/ 원시의 숲에 잠기다 울진 왕피천을 따라서/ 자연 그대로의 생태 천국 속으로 영주 부석에서 의풍까지/ 사라지는 옛길을 따라 달성 양지한덤 가는 길/ 외딴 두메 마을의 초가 한 채 경주 양동마을에서 독락당으로/ 오랜 옛날로의 시간 여행 창녕 우포에서 교동까지/ 생명의 늪과 죽음의 언덕 남해 해안을 따라서/ 봄이 상륙한 바닷가 무주 부처마을, 미륵마을/ 때 묻지 않은 시골의 시간 변산반도를 따라서/ 바람의 에움길 담양 봉서리 대숲에서 명옥헌으로/ 대숲과 정원의 행복한 어울림 화순 운주사에서 가수리까지/ 거지탑은 왜 거지탑인가 여자만을 따라서/ 옹골찬 생계의 텃밭에서 진도 해안을 따라서/ 길 끝에서 만나는 비릿한 풍경 청풍에서 솟대거리까지/ 호반을 따라가는 70리 에움길 월악산 봄숲/ 봄바람에 새순 냄새가 난다 제천 불구실에서 덕곡리까지/ 강마을, 두메 마을의 오래된 풍경 영동 돌고개에서 불당골까지/ 곶감 타래 내걸린 산중의 가을 청양 이화리에서 장곡사까지/ 고개 넘어 길의 신을 만나다 제주 무신궁에서 화천사까지/ 당신상을 아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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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인이 말하는 길의 미학
길은 음미하는 것이다. 그의 길에 대한 미학은 감각적이다. 길이 단순히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수단에 불과한 일반 여행자들은 길이 아닌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한 소비일 뿐이지만 저자에게서 길은, 특히 은밀한 풍경 속으로 안내하는 굽이굽이 숨겨진 길은 그의 마음을 빼앗아간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는 길 위에서 세월이 흘리고 간 수많은 추억과 사연들을 수집하며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그 길과 그 길에서 만나는 적막, 적막을 적시는 계곡, 하늘에 잠긴 나무, 자연의 평화 속을 여행한다. 길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는 것이다. 풍경은 걸음을 멈추는 자에게 반응하며, 다가서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는다. 멈춰 설 때마다 다른 이야기, 다른 감동을 안겨 준다. 갈 때마다 다른 것이 길이고 여행이다. 같은 길 위에 있어도 오늘 그 길에 서 있는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르기에 길에서 찾는 것도 길에서 얻는 것도 다르다. 이것이 그가 오늘도 은밀한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자, 길이 주는 위로와 평안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사진의 힘과 인화된 기억 똑같은 인생이 없듯이 똑같은 풍경도 없기에 문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은 사진으로 쓴다. 여행이 꼭 증거를 남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인화된 기억’이 더 수명이 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사진 찍기는 은밀하게 계속된다. 그가 담은 사진은 연출과 기교가 없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들이다. 사계절 다른 숲의 표정, 번상한 가계를 이룬 나무들, 노골적으로 벌레를 유혹하는 꽃, 숲의 일가를 이룬 새와 벌레들, 한줄기 바람처럼 흘러가는 길, 계절을 읽을 수 있는 논밭의 풍경, 자연으로 들어가 있는 절집, 욕심 없는 농부의 소박한 초가집, 주인을 잃은 채 허물어져가는 빈 흙집, 물소리를 벗 삼아 강줄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 외로운 나무다리, 수만리의 바닷길을 헤치고 모천으로 회귀한 숭고한 연어 떼, 12마리 강아지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앞 못 보는 할아버지, 자연에서 나는 소출을 가지고 넉넉히 세월을 살찌우고 있는 노 부부 등이다. 그의 사진과 사진보다 더 생생한 문장 사이를 거니노라면 숨겨진 역마살을 핑계로 자연의 향기와 사람 사는 냄새에 취해 소박한 여행 가방을 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행가가 될 수 없는 여행자의 숙명 여행은 볼거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동화를 경험하는 과정이고 자연스러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의 인생과 여행과 시는 한 뿌리이고 여행이 계속될수록 내 인생과 시도 깊어질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하고, 고향처럼 너그럽고, 낡은 흑백사진처럼 그윽한 우리네 인생사를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아름다운 길의 끝에 정복자처럼 길을 내고 자연을 거슬러 인간의 잣대로 자연을 가공하고 마는 사람들의 욕심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 있다. 정복자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비포장 길의 불규칙한 굴곡과 느낌처럼 한 번씩 덜컹거리는 자신을 확인하고 밋밋한 일상을 튕겨내고 싶어 달려온 10년간의 풍찬노숙으로 인해 시인은 곤하고 더러 망가졌지만 아직 어딘가에 만나지 못한 행복한 풍경이 존재하는 한, 아직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은밀한 풍경이 존재하는 한 시인의 인생과 여행과 시는 계속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