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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서관
I 파라오의 무덤 II 신성한 도서관 III 금지된 도시 IV 도망자 V 보편 도서관 VI <나는 모든 책을 넬레우스에게 남긴다> VII 현자들의 연회 VIII 뮤즈의 새장에서 IX 경쟁 도서관 X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등장하나, 유실된다 XI 두 번째 방문자 XII 전쟁 XIII 세 번째 방문자 XIV 도서관 XV 화재 XVI 바야흐로 도서관을 불태울 즈음 요하네스 필로포노스와 암르 이븐 알아스가 나눈 대화 주석 출전 1 기번 2 암르의 대화 3 현대화된 아리스테아스 4 겔리우스 5 세비야의 이시도루스 6 리비우스 7 추측 8 헤카타이오스 9 찾을 수 없는 도서관 10 람세스의 <소마> 11 카데스 12 스트라본과 넬레우스의 이야기 13 대중적인 도서관 14 화형식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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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독립된 건물이었을까? 그리고 왕궁 안에 있었을까?
첫째,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출전들에 따르면 화재의 원인이 아주 확실하며, 화재가 항구 〈안에서〉 시작되어 항구 〈주변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도서관은 항구 〈근처에〉 위치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스트라본과 트제트제스의 명확한 지적에 반하여). 둘째, 무세이온은 그러므로 계속 조용히 번성했고, 일련의 문학적 자료적 원전(스트라본의 글을 위시해)이 그 사실을 입증하는 것처럼, 결코 도중에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세이온과 〈별개인〉 도서관(화재에 휩싸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 p 138~144, 7 추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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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48/47) 카이사르가 적의 배에 불을 질렀을 때, 불길은 도시의 여러 지역에도 번졌고, 조선소와 곡물 창고 및 대도서관을 파괴했다. 세네카도(그는 리비우스를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이 자료를 언급했다면, 디오 카시우스, 겔리우스,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의심할 수가 없다. 『내란기』를 쓴 카이사르도, 『알렉산드리아 전투』을 썼던 그의 협력자도 그 괴로운 사건을 묵인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니면 오로시우스나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와 같은 후대의 작가들이 무세이온의 도서관을 세라피움의 도서관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항구 근처에 있지 않았던 무세이온(왕궁에 속하긴 하지만)의 위치를, 화재를 언급한 논문과는 반대로 논의하는 것도 잘못이다. 카이사르가 도서관의 책을 로마로 옮기려 했기 때문에 도서관의 장서 일부가 그때 항구 근처의 창고에 있었다는 이론(파르타이가 제안한)처럼 근거가 없는 이론 때문에 그러한 논의의 실마리를 끌어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세이온의 도서관이 아니라 항구 근처나 도시의 다른 지역에 있었던 책 창고에 난 화재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원전에 대한 폭력이다. 훌륭한 전통은 가능성 있는 사건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전통으로 수용하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우리는 그것을 좋은 전통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다. --- p 140~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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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두루마리는 4만 개였을까? 70만 개였을까?
오로시우스가 항구 근처의 창고에 우연히 보관되어 있었던 두루마리(즉 카이사르가 선박에 불을 질렀을 때 소실된 책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면, 어떤 책에는 두루마리의 개수가 〈4만〉 개라고 되어 있고, 어떤 책에는 〈40만〉 개라고 되어 있다고 필라레테스는 말했다. 그것은 아울루스 겔리우스가 『아테네 야화Noctes Atticae』의 한 장(章)에서 고대의 도서관에 대해 언급한 부분과 동일하다. 어떤 필사본에는 7만 개라고 되어 있고 또 다른 필사본에는 70만 개라고 되어 있다. --- p 96, XVI 바야흐로 도서관을 불태울 즈음 요하네스 필로포노스와 암르 이븐 알아스가 나눈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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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사라진 도서관』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고전 시대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인 루치아노 칸포라가 326편의 고대 문헌과 현대 기록 속에서 찾아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한 연구서이다.
칸포라는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는데, 앞부분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긴장감을 주면서 시작한다. 헤카타이오스가 람세스의 무덤을 방문한 에피소드를 처음 언급하는데, 이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형태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따로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람세스 무덤의 신성한 도서관처럼 건물도, 그 자체로 넓은 방도 아니라 회랑을 따라 배치된 책장들이었다는 것이다. 카이사르 전투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책이 소실되었다는 언급은 나오지만, 건물이 파괴되었다는 보고가 없기 때문이다. 앞부분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되지 못한 원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라델포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가져간 넬레우스에게 책들을 달라고 하지만, 넬레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아닌 다른 작품들을 그에게 준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필사되지 못하고 구덩이에 파묻히는 신세가 되며, 구덩이에서 나왔어도 좀이 슬어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필사가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도서관이 파괴되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살아남게 되었다. 후반부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출전을 언급하고 있다. 전반부도 수많은 책을 바탕으로 기술되었지만, 후반부에서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둘러싼 모호한 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문헌학을 바탕으로, 당대의 수많은 서책들과 필사가들 및 학자들의 모순적인 문장들을 인용하고 있다. 고대 도서관의 역사는 자주 화재로 끝이 났음을 지적하면서 화재야말로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도서관과 책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것이어서, 마지막까지, 현재까지 남은 책은 대도시에 있었던 것들이 아니라 외진 장소, 예를 들어 수도원에 있었던 것이나 산재해 있던 개인의 필사본이었다고 설명한다. 영혼을 치료하는 장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소테르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기원전 308~246)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 세계의 책을 수집하면서 건립되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을 모아 알렉산드리아를 <학문과 지식의 보고>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그리하여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의 중심지가 되며, 수집한 책은 70만 권에 이르게 된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궁전과 떨어진 도시 남쪽의 세라피스 신전에 세라피움이라는 부속 도서관을 건립하게 된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 가지 원인 때문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첫째는 카이사르와 아킬라스의 전쟁 와중에 일어난 화재 때문에 왕궁의 도서관에 있던 두루마리들이 소실되었다(그러나 저자는 루카누스의 『내란기』를 인용하면서 내전 와중에 도서관에 있던 두루마리들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지 않았으리란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둘째는 서기 389년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루스에게 이교도들의 사원을 모두 파괴하라고 명한다. 불행히도 세라피스 사원 내부의 도서관이 테오필루스의 공격으로 파괴된 것이다. 마지막 일격은 이슬람 군대의 대장 암르가 술탄의 명을 받아 도서관의 채을 모두 불에 태우면서 일어난다. 암르가 도서관의 책들을 4천여 개의 목욕탕의 연료로 썼을 때, 그 기간이 대략 6개월이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