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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민지 근대, 제주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1. ‘제국-일본’의 지식인 2. 식민지 조선인의 ‘제주’ 인식 3. 제주, 제국, 근대 2 싸우거나 망하거나-해방기와 한국전쟁기의 ‘제주’ 표상 1. 청년 영웅의 등장과 ‘항거(抗拒)’의 증명 2. ‘제주’, ‘절멸’의 땅으로 3 발견되는 ‘지역’과 창조되는 전통-개발독재시대의 제주 1. 전사(前史)-말의 복원과 강요된 침묵 2. 개발의 파토스와 지역의 ‘발견’ 3. 내부의 눈으로 ‘제주’를 발견하다 ㄱ. ‘소리’의 발견-‘협죽도’ ‘스피커’라는 낯선 배치 ㄴ. ‘제주 여성’을 발견하는 두 가지 시선-‘해녀’와 ‘질병’ 4 국민국가와 이어도 전설 1. 이어도라는 ‘보편’ 2. 유동하는 말에서 기록의 서사로 3. 생산/재생산의 동력들 5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1. ‘4 · 3’을 말하다 2. 심방이 된 작가-현기영 3. 사죄하는 자-현길언 4. 작가, 기록하다-오성찬 6 대통령의 사과, 그 이후 1. 권력의 문법과 대통령의 사과 2. 희생의 수사학과 은폐된 책임 3. ‘추상(抽象)’의 가면 뒤에 숨은 국가 7 ‘제주’라는 내부 식민지 1. 제주로, 제주로, 제주 이주 열풍 2. 제주, 한국적 근대의 극한 3. 제주는 대한민국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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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제국의 근대’와 ‘경성의 근대’라는 두 개의 외부를 통해 근대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제주의 표상은 단일하지 않았다. 제국이 상상한 ‘제주’와 조선이 상상한 ‘제주’가 서로 달랐다. 제주는 조선의 일부이기도 했지만 일본이라는 제국의 연장이기도 했다. --- pp.15-16
‘제주적인 것’을 단일한 것으로 규정하려 할 때 거기에는 다양한 가능성의 지점들을 해석의 편의를 위해 폭력적으로 획일화하려는 욕망이 개입될 수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기라는 시공간 속에서 제주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수많은 역사적 변수와의 상관 속에서 인식되어 왔다. 때로는 외세에 저항한 항쟁의 경험지로서, 제주 4?3을 겪으면서는 ‘절멸’을 통해서라도 반공국가 수립의 역사적 과제를 성취해야 하는 곳으로, 그리고 한국전쟁기에는 육군 제1훈련소로 상징되는 반공의 최후 보루라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심상으로 덧칠되었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에 수많은 덧칠이 더해지면서 ‘제주’라는 지역성이 구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 p.67 1960년대는 제주 4?3진상규명운동에 대한 찰나의 열정이 오랜 침묵 속에 갇혀버린 채 그 서막을 열었다. 쿠데타 세력이 집권한 이후 제주지역사회는 침묵을 강요받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것은 “제주개발”이라는 파토스였다. 침묵은 보이지 않는 ‘환상’의 자리로 물러앉았지만 “제주개발”은 “실재”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 p.109 가벼운 사례 하나를 생각해보자. 한국방송의 장수 프로그램 중에서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지역 방송총국을 연결하며 지역의 현장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때 프로그램 속의 지역은 먹거리 생산기지로서의 지역(철마다 바꿔가며 산지의 먹거리를 소개하는 꼭지들을 보라. 군침을 흘리며 방송하는 리포터와 진행자들에게 지역은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한 풍요의 상징일 뿐이다)이며 훈훈한 인정과 인심이 넘쳐나는 곳이다. 시골로 명명되는 ‘지역’은 정치성이 거세된 채 오로지 도시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다양한 먹거리가 생산되는 곳으로만 소비된다. 시골은 도시라는 체제를 위협하지 않을 때에만 소비된다. 이처럼 미디어에 의해 재현된 ‘생생함’이란 지역의 현재적 일상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 ‘선택’된 것일 뿐이다. 매일같이 미디어는 지역을 ‘발견’하며 지역을 ‘소비’한다. --- pp.269-270 니시타니 오사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국민공동체의 나사를 풀어버리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인식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의 ‘제주 붐’이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 또 다른 차별과 착취의 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가 아니라는 선언이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를 토벌할 수도 있다는 역사적 경험은 ‘우리-제주’가 ‘우리-국가’가 아니었다라는 현재적 자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 pp.278-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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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한국의 근대를 보는 이유
한국에서 제주라는 섬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천혜의 자연을 지닌 아름다운 섬, 힐링과 치유의 섬, 제주. 2000년대 이후 제주는 자본주의적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중국인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제주는 마치 기회의 땅처럼 인식되고 있다. 제주 부동산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지만 미디어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제주를 소개한다. 한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외부인들에게 제주는 한 달을 살면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다. 그들은 한 달‘만’ 살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일생을 산다. 일회적인 만남이 미디어에서 멋있게 포장되는 동안에 제주사람들은 국내 최저 수준의 저임금을 일상에서 감내해야만 한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요동친다. 웬만한 지역은 연세 1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월세로 치자면 월 80만에서 100만 원 수준이다. 이 정도 금액은 제주지역 노동자의 평균임금 수준의 절반 수준이다. 사람은 늘어나고 부동산 가치는 높아지는데 정작 제주사람들은 가난해지고 있다. 연세 1천만 원(월세로 치자면 100만 원 정도다)을 넘는 주택이 늘어나고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주택 빈곤층의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어떤 이는 제주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발견’의 주체는 누구이고 의미는 무엇인가. 이 글의 시작은 이러한 질문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영토성과 주권성이 ‘제주’를 어떻게 ‘발견’하였는지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부터 개발독재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욕망이 ‘제주’를 어떠한 방식으로 호명하였고 이러한 호명에 제주의 내부는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통시적인 접근이 가질 수 있는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각을 유지한 것은 ‘지금-여기’의 자리에서 ‘제주’가 지니고 있는 ‘제주적인 것’이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다. 이 글은 ‘제주는 대한민국의 영토인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자명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제주’ 표상이 실은 시대의 욕망에 의해 ‘발견’되고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질문의 방식이 달라지면 답도 달라진다. 제주는 식민지 시기 ‘제국-일본’과 ‘경성’이라는 이중의 외부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중의 외부성은 ‘제주’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타자성’을 근대의 시각 앞에서 폭력적으로 ‘호명’하였다. 식민지 시기 ‘제국’은 ‘제주’를 조선 본토와 차별화된 지역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제주’와 ‘일본’을 동일시하였다. 또한 조선 본토의 지식인 엘리트들은 ‘제주’를 조선 본토가 상실한 전근대적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제주’와 ‘한라산’을 분리하여 상상함으로써 ‘미개’와 ‘신성’이라는 모순된 시각으로 ‘제주’를 ‘상상’하였다. 식민지 시기 제주를 찾았던 조선인 지식인 엘리트들의 기행문은 이러한 ‘상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민족적 신성의 공간으로서의 한라산과 신성의 잉여로서 남겨진 제주를 서로 다른 표상으로 상상하고 끊임없이 재명명하였다. 이러한 시선들은 피식민자인 조선인 지식인 엘리트가 제국의 식민지성을 내면화하고 식민지 내부를 상상적으로 재구획하였음을 보여준다. ‘제국’의 식민지적 시선과 피식민자인 조선 본토의 지식인이 지닌 내면화된 식민지적 시선이라는 이중의 굴절은 ‘제주’를 식민지 안의 식민지, 즉 내부식민지로 위치 짓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이중의 굴절 속에서 제주인은 조선 본토와 ‘일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였다. 이는 제주인이 민족적 경계를 월경하는 존재로서 ‘제국-일본’의 내부에 ‘제주적인 것’을 창조하는 경계적 상상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카이노’로 대표되는 ‘제국’ 안의 조선, 정확히 말하자면 ‘제국’안의 또 다른 ‘제주’의 존재는 제주와 일본의 심리적 거리가 민족주의적 시선만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다양한 균열들을 배태하는 동력이 되었다. 즉 식민지 시기 제주인은 민족이라는 강고한 중심에서 벗어나, 유동하는 존재로서 ‘조선’과 ‘제국’이라는 두 개의 외부를 횡단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제주 4·3은 ‘반공국가’라는 단일한 선택지만이 강요되었던 해방된 조선의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고자 하였던 자생적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자생적 운동은 ‘절멸’과 ‘반공’이라는 국가주의적 기획에 의해 실패로 귀결되었다. 반공국가라는 강고한 중심은 오랫동안 ‘제주’의 표상을 국가가 승인하는 한에서만 인정하였다. 1960년대 이후 제주의 내부에서는 ‘제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제주의 특수성을 타자화함으로써 그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역설적 상황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관광제주’과 ‘탐라왕국’이라는 두 개의 상징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제주’의 정체를 규정하는 중요한 질료로서 작용하였다. 즉 개발과 전통의 보존이라는 과제 앞에서 지역의 지식인들은 지리적 변방이 중앙에 의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을 하나의 기회로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들은 국민국가의 일원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과 ‘제주의 고유성’을 승인받고자 하는 이중의 욕망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태도들은 국가주의적 기획의 내면화와 국가주의에 대한 대항이라는 역설적 상황으로 표면화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어도 담론’과 ‘제주 4·3’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지리적 영토의 확장이라는 움직임 속에서 ‘이어도’가 자명한 실재로서 인식되었다고 한다면 제주 4·3은 국가의 공식 기억에 대항하여 민중의 기억을 전승하고 증언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제주 4·3에 대한 인식은 국가주의에 의해 포섭될 수 없는 로컬리티의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제주’의 지역성의 발견 양식과 내부 식민지로서의 ‘제주’를 살펴보고자 하였던 것은 ‘제주’가 일국적 차원의 단일화된 표상을 내파(內破)할 수 있는 상상의 원천으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국민국가적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제주’와 ‘이카이노’로 설명할 때 두 지역은 국민국가를 월경하는 새로운 상상력의 장으로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 ‘제주’, ‘오키나와’, ‘대만’이라는 동아시아의 국민국가의 경계들의 문제를 비교, 고찰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글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다소 생경해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 4·3 발표문을 수록한 것은 제주 4·3을 대하는 국가주의적 언술의 특성을 살피기 위해서다. 제주의 ‘타자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배제되어 가는가를 살피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 권력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제주 4·3의 문제, 그 풀리지 않는 정명(正名)의 가능성이 이러한 성찰을 통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