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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강 한신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 제2강 한신의 불운했던 전반생 제3강 한신의 공적과 과실 제4강 한신의 성공과 실패 제5강 유방의 도약 제6강 유방의 승리 제7강 유방의 성공 비결 제8강 유방의 맞수 항우 제9강 건국의 일등공신 소하 제10강 자기를 잘 알았던 2등 조참 제11강 제왕의 스승 장량 제12강 변화무쌍한 처세의 달인 진평 제13강 지혜로우면서도 잔혹했던 여인 여치 제14강 억울하게 죽은 조조(상) 제15강 억울하게 죽은 조조(하) 제16강 원앙과 선비 제17강 두영과 외척 삼국지 강의를 마치며 역자 후기 |
yi zhongtian,易中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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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판’을 쏙 빼닮은 『초한지』 영웅들의 파란만장 인물기!
과거 역사는 종종 현대 정치판과 비유된다. 그중에서 『초한지』 인물들은 어느 모로 보나 현대 정치와 판에 박은 듯 닮아 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처세술이 주는 교훈은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하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정치권은 합종연횡을 통한 ‘새판짜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얼마 후면 승자는 회심의 미소를, 패자는 고배의 쓴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여기서 승자의 미소를 짓고 싶다면 이중톈 교수가 말하는 『초한지』 인물들의 면면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 유방과 항우, 그리고 한신 일개 평민 출신인 유방과 귀족이자 천하제일의 장사였던 항우의 싸움은 세간의 예상과 달리 유방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항우의 위세에 눌려 외진 한중(漢中) 땅으로 쫓겨난 유방은 몰래 힘을 키워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손에 넣었다. 유방의 승리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유방은 자신의 승리를 이렇게 자평했다. “나는 진중에서 백전백승의 전략을 세우는 것은 장량만 못하고,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군량을 공급하는 것은 소하만 못하며, 군대를 이끌고 적을 물리치는 것은 한신만 못하다. 그러나 이 세 명의 인재를 모두 내 휘하에 두었으니, 이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얻은 이유이다.” 유방의 승리 비결은 바로 인재 활용술에 있다. 유방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전혀 숨기지 않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과감하게 기용하여 객관적인 열세를 우세로 반전시켰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신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한신은 캐스팅보드 역할은 물론 유방·항우와 삼각 구도를 이룰 수 있을 만큼 세력이 막강했다. 한신이 만약 유방의 편을 들면 유방이, 항우의 편을 들면 항우가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사 괴통의 말처럼,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다면 삼국 정립의 형세를 이루며 천하의 패권을 다툴 수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반란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클 때, 자신을 알아준 유방의 은혜를 저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도와 유방이 천하를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토사구팽’되어 세력이 미약할 때 반란을 도모했다가 결국 유방의 아내인 여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자신의 능력을 적확히 꿰뚫어보지 못한 한신의 실패는 왠지 씁쓸한 여운만 남긴다. 2. 물러날 때를 알았던 ‘장량’ Vs 처세의 달인 ‘진평’ 장량이 없었다면 유방은 절대 천하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의 목숨을 살렸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유방에게 한중으로 들어가 힘을 키우라고 당부했으며, 한신과 팽월에게 더 많은 땅을 내려 반란을 잠재우도록 했고 항우와의 최후의 결전에서 ‘사면초가’ 계책을 내 항우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처럼 제왕의 스승이자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인 장량은 하지만 온갖 부귀영화와 권력을 마다하고 조용히 정치권에서 물러났다. 장량이야말로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았던 현명한 사람이었다. 다른 공신들이 권좌를 탐하다가 결국 유방의 손에 죽은 반면, 그는 정치판의 생리를 꿰뚫어보고 뒤로 물러나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진평은 장량과 함께 유방의 씽크탱크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항우가 최고 참모인 범증을 쫓아내도록 계책을 내 초한 전쟁 승리의 결정적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형수와 사통한 전력을 가졌고 출세를 위해 여러 주군을 섬겼으며 관직에 오른 후에는 뇌물을 챙기기 바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지만 그는 끝내 한나라 재상에 오르는 처세술을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보전이 유일한 고려 대상이고 이익이 유일한 척도이며 성공이 유일한 원칙이었다. 그에게 시비선악의 기준과 도덕적 평가, 일관된 원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현실적인 생존 법칙을 완벽히 따랐기 때문에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었으며,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정치 투쟁에서 항상 오뚝이처럼 살아남았다. 3. 개국의 일등공신 ‘소하’ Vs 영원한 2등 ‘조참’ 한나라 개국 후 유방은 후방에서 군량을 보급한 소하를 일등공신으로 꼽았다. 그러자 이에 불복하는 공신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때 유방은 ‘사냥꾼과 사냥개’의 비유를 들어, 사냥개가 사냥감을 잘 쫓을 수 있도록 뒤에서 조종한 소하의 공이야말로 단연 으뜸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유방이 항우와의 전쟁에서 패할 때마다 아무 불평없이 보급 물자를 대주었고, 진나라 함양궁을 함락해 모두 주색에 빠져 있을 때도 조용히 진나라의 문서들을 챙겨 훗날 유방이 천하를 재패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들의 눈에 띄는 화려한 공로를 세우고 싶어한다. 하지만 소하는 남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포지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공로를 유방에게 인정받아 한나라 초대 승상 자리에 올랐다. 조참은 유방과 한신을 따라 숱한 전투에 참가하여 크고 작은 부상을 수십 군데나 입을 정도로 고군분투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하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며 그를 적극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일등공신의 명예를 소하에게 양보했다. 또 훗날 재상에 오른 후에도 도가이념을 본받아 ‘무위(無爲)’ 정치를 실시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잘 알고 영원히 2인자 자리를 지킨 대표적 인물이다. ‘옛 것이 훌륭하면 이를 따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신념 아래, 소하가 닦아놓은 제도를 개혁하기보다 이를 따르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변혁보다 안정을 꾀한 처세술은 그에게 현명한 재상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