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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양쪽 귀에 세 가닥씩 달려 있는 머리카락을 빼면 완전히 대머리였다. 머리카락이 있다고 자랑할 만큼도 못 되었다. 그 머리카락들도 곧 빠지고 말 것이었다. (…) 어쩌면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갓난아기랑 노인, 둘 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
“할아버지는 왜 머리카락이 없어요?” “이제 곧 죽게 되기 때문이지. 가을과 똑같단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거야.” “그럼 할아버지는 결국 나중에는 겨울이 되는 거예요?” “그렇단다. 아주아주 긴 겨울이 되는 거지.” _44~5쪽 헤르만은 금세 술병을 다 비웠다. 헤르만은 마지막 한 모금을 힘겹게 삼킨 뒤 잠시 기다렸다. 그 사이 오스카르 성에 불이 켜지고, 지붕 위의 바나나가 바람에 날아갔다. 헤르만은 모자를 벗고 두 손으로 머리를 만져봤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카락이 뭉텅 빠진 맨살에 손이 닿자 헤르만은 손을 데기라도 한 듯 움찔하며 손을 거두었다. 바로 여기에 맥주가 더 필요했다. 헤르만은 맥주병을 하나 더 따서는 맥주를 머리에다 들이부은 다음 두피를 꼼꼼히 마사지했다. 그러고 나서 헤르만은 다시 모자를 쓰고 기다렸다. 기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기차는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창문들과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 커튼뿐이었다. _147쪽 헤르만은 망설이다가 거울로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헤르만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서 모자를 벗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거울을 봤다. 눈앞과 양옆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순간 헤르만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자기 모습을 보고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덤불 숲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머리가 벗겨진 부분이 하얀 독버섯처럼 두드러져 보였다. 헤르만은 의자가 뒤집어질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넘어져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헤르만은 바닥을 기어서 복도로 나갔다.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헤르만은 그게 자기 울음소리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_157쪽 “제가 할아버지한테 머리카락이 빠져버린 아이 얘기 해드렸나요? (…) 제가 아는 아이였어요. 우리 반 아이였거든요. 그 아이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졌대요. 그냥 저절로 빠져버렸대요. 할아버지, 듣고 계세요? 네, 좋아요. 그 아이는 자기 머리카락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빠진 머리카락들을 식물 표본집에 숨겨두었대요.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할아버지? 그런데요…… 그 아이는 언젠가 그 머리카락들이 필요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 아이의 부모님은 그 아이한테 진짜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사줄 돈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 아이가 지닌 가장 멋진 머리카락은 바로 곤봉 머리카락이래요. 누가 자기를 괴롭히면 그 곤봉 머리카락으로 때려줄 거래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그렇지만 아주 세게 때릴 필요는 없겠죠? 어쩌면 그냥 곤봉 머리카락을 보여주기만 해도 될 거예요. 그럼 모두들 도망칠 테니까요.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냐고요? 저도 잘 몰라요. 아마도 남은 평생 모자를 쓰고 다녔겠죠. 그리고 별로 나아지지도 않았을 테고요. 말도 안 된다고요? 아니에요, 할아버지. 헛소리가 아니에요.” _240~1쪽 --- 본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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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노르웨이의 오슬로. 크레인 기사인 아빠,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사는 헤르만은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소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헤르만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 탈모증으로 대머리가 되어 평생을 모자를 쓴 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게 된 것. 사춘기를 앞둔 소년에게 낙엽이 떨어지듯 머리가 빠지는 자신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학교에서도 다른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게서 놀림 아니면 동정을 받는다. 헤르만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비록 가난한 형편이지만 최선을 다해 헤르만을 보살피려는 엄마와 아빠의 노력도 헤르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인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헤르만은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시간을 통해, 그리고 이웃에 사는 ‘술병 아저씨’와 ‘다리에 개미가 들어 있는 부인’ 등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상처를 지켜보면서 서서히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좋아하는 친구인 루비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수 있게 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길고도 깊었던 어둠의 시간을 지나온 헤르만은 남은 생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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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느닷없이 던져준 예기치 못한 상실감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소년의 눈으로 익살스러우면서도 슬프게 그려낸 소설
1960년대 노르웨이의 오슬로. 크레인 기사인 아빠와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사는 헤르만은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소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헤르만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 탈모증으로 대머리가 되어 평생을 모자를 쓴 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게 된 것. 사춘기를 앞둔 소년에게 낙엽이 떨어지듯 머리가 빠지는 자신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학교에서도 다른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게서 놀림 아니면 동정을 받는다. 헤르만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비록 가난한 형편이지만 최선을 다해 헤르만을 보살피려는 엄마와 아빠의 노력도 헤르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인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헤르만은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시간을 통해, 그리고 이웃에 사는 ‘술병 아저씨’와 ‘다리에 개미가 들어 있는 부인’ 등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상처를 지켜보면서 서서히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좋아하는 친구인 루비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수 있게 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길고도 깊었던 어둠의 시간을 지나온 헤르만은 남은 생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노르웨이의 국민작가 라르스 소뷔에 크리스텐센의 1988년 작품인 『헤르만』은 바로 유년의 끝에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냉정한 인생과 맞닥뜨린 소년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상실감에 빠지게 된 소년의 눈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성장이라는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헤르만??은 성인문학과 청소년문학 양쪽 모두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성장기를 보낸 1960년대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삼아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가을?겨울?봄으로 나뉘는 계절적 구성으로 그 묘사를 좀더 섬세하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상상력 넘치는 소재와 에피소드들로 잔잔한 이야기에 긴장과 탄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뜻밖의 상실을 안겨준 가혹한 인생 앞에 서 있는 헤르만이라는 고독한 소년의 모습을 따뜻하고 섬세하며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도 동시에 아름답도록 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데 있다. 다소 괴짜 같아 보이고 비딱해 보이기도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헤르만이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스스로 상실감을 극복하며 커나가는 과정은 독자들이 책을 읽는 내내 웃고 울게 만든다. 특히 헤르만과 할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들은 시처럼 아름다울 뿐 아니라 뜻 깊은 메시지들을 담고 있어 이 작품의 뛰어난 문학성을 잘 보여준다. 1988년에 노르웨이 비평가상을 받은 이 소설은 세계 15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1990년에 에릭 구스타프손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