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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입시 공화국’의 종말을 생각하며_4 1장 인재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01. 감옥에서 인간을 기르다_15 02.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을 기르는 교육_32 03. 공교육 체벌과 사교육 체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_47 04. 바칼로레아, 아비투어 그리고 한국의 논술_60 2장 왜 그들은 명문고에 집착하는가 05.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불평등_85 06. 명문고 부활에 얽힌 숨은 뜻_95 07. 이것이 진정한 고교 등급제이다_104 3장 본말이 뒤바뀐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08.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한국 교육_119 09. 초?중?고등학교는 대학의 식민지인가_131 10. 사교육은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_145 11. 전도된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_159 4장 세계적인 명문 대학의 탄생은 불가능한가 12. 국제 경쟁력을 외치는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_187 13. 교육과 시험이 잠재적 표절자를 키운다_205 14. 아주 낯선 대학 수업 풍경_215 5장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 15. 왜 한국의 엘리트는 허약한가_227 16.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로막는 교육_254 17. 정답 없는 문제가 인재를 키운다_263 맺음말 ‘인재’를 기르려면 ‘인재 이데올로기’를 버려라_288 주_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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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라고 하는 한국의 기이한 풍습에 대한 충격 보고서
“모든 항공기의 운항과 이착륙이 금지된다. 자동차, 버스 등 운송 수단의 경적이 금지된다. 군의 포격 등 사격 훈련도 금지된다. 공무원 등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춰진다. 경찰차, 구급차, 관공서 차량 등이 수송 작전에 투입된다. 지하철과 버스의 운행 횟수를 늘린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입시만을 위해 준비한 것이 단판 승부로 결정되는 날, 한국에서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다. 1등 대학부터 꼴등 대학까지, 인기 학과에서 비인기 학과까지 서열이 매겨진 한국 사회에서 수험생들은 더 상위의 대학과 학과를 가기 위해 1등부터 꼴등까지 일렬로 줄을 세우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는 물론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가히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입시! 과연 이 입시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한국 교육은 앞으로도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입시에 목숨 거는 과열된 교육열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21세기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지식정보와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입시와 교육 철학이 그러한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입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국의 교육과 인재관에 던지는 본질적인 회의이자 도전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은이는 지금의 입시로는 “NO”라고 한다. 인재와 입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가정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채 감시와 처벌 속에서 길러지는 우리의 아이들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살당한 채 인재가 아니라 그저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로 양산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교육은, 좀더 정확히 말해 오직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은 인적 자원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나라에서 인재를 죽이고 나라를 망치는 ‘원흉’이다. 교육이 인재를 기르고 국제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주장은 한갓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열화된 대학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엘리트들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자연히 허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엘리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남을 위한 일말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학생, 세계 최저 수준의 대학이 어떻게 공존하는가 한국의 초?중?고등학생들의 학력은 국제학업성취도비교(PISA), 국제수학과학능력평가(TIMSS)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에서 그 전례가 없는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즉 세계 최상위권의 인재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서울대는 한마디로 우수한 인재들의 집합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일 뿐 국제적인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일까? 세계적인 대학자는 없고, 희대의 논문 조작이 있을 뿐이다. 지은이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에서 그 문제점을 찾는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고등학교 수업은 시간 때우기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경쟁은 끝난다. 가능한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공부를 시작하고 제대로 경쟁해야 할 대학에서는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 공교육이 부실한 건 당연하다 공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으로 몰리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무엇이 부실한 것인가? 지은이는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경쟁 학생보다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아서 한 단계라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에 입학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상황에서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학교 수업은 남보다 앞서는 것이 교육 목표인 상황에서 내용이 견실해도 불충분하고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줄 세우기에 방해가 되는 학교 교육은 내용과 방식을 아무리 개선해도 부실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화가 계속 유지된다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비난은 더 거세지고 많은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0.01점 차이까지 구분하는 논술,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학교 교육은 토론식이나 논술식이 아닌 주입식 교육과 ‘찍기’의 객관식 시험이 중심을 이룬다. 학교나 교사 모두 논술식 교육을 진행할 준비와 능력도 부족하지만, 채점에 대한 시비 때문에 정답이 명백하게 있는 단답형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논술을 위한 사교육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공교육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사교육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사는 논술에 있어서 ‘아마추어’이고 학원 강사는 ‘프로’이다. 팽창하는 사교육은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성적,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논술, 통합 교과형 논술 시험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들이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워 기존의 대학 서열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그래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의 자율성이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느니, 아니면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느니, 그리고 이는 국제적 경향이니 하는 것은 그저 변명이요 허위의식이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대학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국가, 국민, 사회 등 거창한 이름으로 감추고 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객관식 시험에서는 “정답이 1개인 특성을 감안해 어느 모로 보나 정답인 답항을 골라야” 한다. 복수 정답을 인정하라는 소송의 법원 판결이다. 정답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창조적인 인식과 자율적인 사고가 가능할까?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선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문제가 출제된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과정 자체 즉, 논증 방식과 절차 그리고 사유의 참신성과 독창성 등이 답일 것이다. 허약한 엘리트들이 찾은 정답들 진정한 경쟁을 해야 할 대학에서는 경쟁하지 않는 엘리트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허약한 엘리트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던 것처럼 정답 찾기에 여념이 없다. 정답을 찾으면 나머지는 모두 오답이다. ‘조국 근대화’, ‘세계화’, ‘BK21’, ‘천재론’, ‘지식정보 사회’, ‘FTA’ 이것들은 허약한 엘리트들이 찾은 정답들이다. 한때 정답이었다가 다른 정답이 제시되면 오답이 되고 만다. ‘세계화’가 정답이던 시절 모든 것을 세계화에서 찾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 이유도 ‘세계화’였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세계화’였다. 그러나 그 정답의 결과는 외환 위기였다. 이후 새롭게 찾은 정답은 ‘지식정보 사회’이다. 구호만 난무하고 수단에 불과한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을 까는 것이 전부였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허약한 엘리트들은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허약한 엘리트가 지배하는 허약한 사회의 스산한 자화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