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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를 지나 작은 광장에 막 들어서는 즈음, 반대편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걸어오시는 것을 발견했다. 조르바들의 공식 지정 모자라 부를 만한 마도로스 모자와 작업용 점퍼를 걸친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점점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막 스쳐 지나칠 즈음 할아버지는 화난 표정으로 대뜸, <야수(그리스어로 안녕)!>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중략)
가령 스쿠터를 몰고 지나가며(꽤 빠른 속도였다) 휙 인사를 던지고는 바람처럼 사라진 아저씨도 있었다. 인사를 건네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0.5초만 늦어도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꼴이 될 터이니 정확한 거리 측정은 필수 조건이다. 답례를 하고 싶어도 그 절묘한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고 마는 나는 결국 지중해를 떠나는 그날까지 그리스식 인사법을 익힐 수 없었다. (중략)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감히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은 서먹함이 있지만, 일단 그 단단해 보이는 껍질이 부서지면(의외로 쉽게 부서진다) 그 속에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음을 금세 발견하게 된다. 바로 <정>이다.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정은 껍질째 말랑말랑한 그것보다 나에겐 훨씬 더 살갑게 느껴진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표정 속에 한껏 스며 있는 지중해의 여름 햇살 같은 부드러운 온기, 그런 그리스 사람들, 특히 지중해 섬의 그리스 사람들……. <나의 그리스식 인사> 중 --- pp. 4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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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에 한 달간 머물기로 작정한 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몇 가지 물건을 보내 줄 것을 당부하며 숙소가 정해지는 대로 주소를 알려 주마 했다. 안토니오 할아버지와 이리니 할머니는 영어가 통하지 않아 숙소를 알선해 준 인포메이션 센터의 린다에게 대신 주소를 물었는데 이곳엔 주소가 없다는 황당한 답을 들었다. 보통 어느 마을의 누구 씨 댁 하면 우편물을 받아 볼 수 있다니 나로서는 좀 난감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국내 우편도 아니고 멀리 한국에서 보내는 소포가 아닌가. 더구나 영어를 모르는 두 분 노인이 무사히 소포를 받을지도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린다도 이런 경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우편물이 제대로 도착할지 미지수라고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찾은 방법은 인포메이션 센터 앞으로 소포를 보내는 것이었다. <주소가 없는 마을>
--- pp. 175~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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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섬의 일몰도 이처럼 아름답겠지만 이아에는 한 가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칼데라에 빼곡히 서 있는 하얀 집들이 바로 그것이다.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집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크린을 이루어 노을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신비로운 영상을 선물한다. 칼데라의 끝자락인 풍차가 서 있는 곳이 명당으로 소문이 난 것도 아마 그 모습을 가장 근사하게 지켜볼 수 있는 곳이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으로 치면 가장 시야 확보가 잘되는 귀빈석인 셈이다. <산토리니의 하루>
--- p. 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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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이 푸른 바다와 하얀 칼데라로 유명한 지중해 섬에서의 일상을 그리고 쓴 『나의 지중해식 인사』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책과 바다와 여행을 좋아하는 이강훈만의 독특하고 정직한 그림들과 여느 글쟁이 못지않은 잔잔하면서도 꾸밈없는 그의 글 솜씨가 어우러지면서 독자들은 마치 방금 전에 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지중해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섬들의 서정에 푹 빠져 버릴 것이다. 아니면 당장이라도 만사 제쳐두고 지중해 섬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는 분명 1년간 여행을 했다. 한두 곳도 아니고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매일 꼼꼼히 글을 쓰고 동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라면 분명 여행기여야 한다. 허나 이 책은 여느 여행기와는 다른 뭔가 색다른 점이 있다. 이 책은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진들을 잔뜩 보여 주거나 풍부한 여행 정보를 알려 주진 않는다. 여행서라면 한두 개쯤은 들어 있으리라 기대되는 여행 코스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도착한 날부터 떠나오는 날까지의 일정이나 비용 등의 여행 기록이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 대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만의 특별한 점은 바로 <여행의 즐거움>, <여행의 참맛>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마치 훌쩍 여행을 떠나듯 편안한 그림과 담담한 글, 꾸밈없는 사진을 쫓아가며 그리스와 조르바들과 지중해의 섬과 지중해의 고양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여행을 즐기는 법, 여행을 즐기며 사는 법을 새삼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