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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보다도 자연이 나를 더 반겨주오
늪의 신비 / 바다로 열린 녹대綠帶 / 관북의 평야는 황소 가슴 같소 / 인물보다도 자연이 나를 더 반겨주오 / 처녀해변의 결혼 로맨스를 많이많이 가져야 할 것 두 처녀상 / 이등변삼각형의 경우 / 에돔의 포도송이 / 동해의 여인麗人 /이성간의 우정 / 사랑의 판도 신비가 있었다 생활이 빛났다 야과찬野果讚 / 유경식보柳京食譜 /만습기晩習記 / 금년은 무방도 / 청포도의 사상 / 12월과 나 / 계절의 낙서 인생은 또 다른 항구에서 항구로 흘러간다 영서嶺西의 기억 / 주을의 지협 / 6월에야 봄이 오는 북경성의 춘정 / 호텔 부근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수선화 / 들 / 화초1 / 화초2 / 단상의 가을 / 생활과 화단 / 낙엽을 태우면서 그대를 생각지 않고 자연을 그리워한 적은 없소 발발이 / 쇄사鎖事 / 괴로운 길 / 사랑하는 까닭에 / 수상록 달고 아름다운 누렁둥이 살구의 맛 고요한‘동’의 밤 / 그때 그 항구의 밤 / 낙랑다방기 / 고도기古陶器 / 애완 눈물은 슬픔을 맑게 하고 깊게 한다 한식일 / 애상 / 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 부록-고향은 빛나리라! 생활의 산어 / 수려한 산천을 가진 경성 포폄 |
李孝石,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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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대하고 긴요한 점은 그곳에서는 나는 다른 해수욕장에서와 같이 귀찮은 해수욕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음이다. 몸에 실 한 바람 걸치지 않고 유유하고 자유롭게 모래 위를 거닐었다 바닷물에 잠겼다 하면서 긴 날을 결코 무료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료하지 않음은 나의 결혼에서 왔던 것이다. 나는 원시적 자태로 처녀해변에서 날마다 결혼한 것이다. 태양과 바다와. (28쪽)
서글픈 생각을 부둥켜안고 돌아오노라면 풀밭에 매인 산양이 애잔하게 우는 것이다. 제법 뿔을 세우고 새침하게 흰 수염을 드리우고 독판 점잖은 척은 하나 마음은 슬픈 것이다.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영원한 이방의 나그네같이 일상 서마서마하고 마음 여리게 운다. 집에 돌아오면 나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싶은 때가 있다. 산양을 본받아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감상이 별안간 뼈 속에 찾아드는 것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벌레소리니 가을벌레는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줄달아 운다. 눈물 되나 짜내자는 심사일까. 나는 감상에 정신을 못 차리리만치 어리지는 않으나 감상을 비웃을 수 있으리만큼 용감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울 것 없는 생활의 한 영원한 제목일 법하니까. (79쪽) 어찌 사치한 스포츠가 아니랴. 100원을 얻으려면 원고지 200매를 채워야 하고, 원고지 200매를 채우려면 피나는 노력의 한 달을 허비해야 한다. 즉 스키는 한 달 노력의 값인 것이다. 확실히 비싼 대상代償이다. 한 달 노력에 드는 육체와 정신력의 소모를 한겨울 동안의 스키의 단련이 설령 회복시켜 준다고 치더라도 비싼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여름의 수영은 수영복 한 벌만을 가지고 강에 나가면 그만이요 운동장에서의 축구는 신은 신발 그대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다고 해두고 그 숫자가 결코 스키에 대한 나의 흥을 덜어주지는 못하며 도리어 더욱 불지를 뿐이다. 사치 여부를 묻지 않고 나는 스키를 시작할 것이다. 좀 있으면 신품이 온다니까 눈 오는 날 아침 즉시로 나는 점원에게 한 벌을 날라오도록 분부할 것이다. 눈 오는 날이 내게는 전에 없이 유달리 기다려진다. (88쪽) 수백금의 고물과 한 마리의 얻어온 고양이와―두 가지가 다 사랑하는 것일 때 눈앞에서 그 하나를 멸하게 된다면 물론 나는 고물을 버릴 것이다. 고양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도기를 아낌없이 없애버릴 것이다. 사실 고양이를 잃어버리느니보다는 만약 그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도기를 깨뜨려버렸더면 한다. 고양이를 잃었음은 이 가을의 큰 슬픔이다. (201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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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산문 읽기의 즐거움 】
‘근대’라는 시대는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지금보다 덜 발달된 문명과 지금보다 덜 속악한 시대로부터 받는 신선함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다른 시대를 체험하면서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동질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근대 산문 읽기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이태준, 정지용, 이광수, 김기림, 이상 등의 자랑할 만한 문장가가 있다. 그리고 이효석이 있다. 이미 유명한 「낙엽을 태우면서」를 통해 우리는 낙엽과 원두커피를 사랑했던 한 작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명성에 가려 산문의 풍부한 매력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산문선집 『사랑하는 까닭에』는 근대 산문 읽기의 맛을 선사하는 동시에 이효석의 아름다운 문장미를 소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 시대를 초월한 자유인의 산문정신 】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이효석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연구가 최근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식민지 시대를 살았으나 독자적인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한 이효석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이효석이라는 작가와 그 소설세계를 말할 때 향토성, 도시성, 엑조티시즘, 에로티시즘 등의 다양한 어휘가 동원되는 것은 그가 그만큼 용적이 큰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효석 산문집 『사랑하는 까닭에』는 그러한 용적이 한 권에 압축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산과 바다와 화초를 사랑하고, 여러 여성과의 로맨스를 꿈꾸고, 스키와 재즈와 원두커피를 탐미한 자연인의 다면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이러한 세계는 단순한 낭만적 감상의 소치가 아니다. 서문에서 방민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이효석과 같이 마음이 사치스러운 상태가 되었을 때만 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느리고 한가하게 흐르는 것 같은 문장 속의 사유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넘어 산 인간의 모습, 충만한 자아를 가진 미래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긴장된 의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산문은 단순한 자연 예찬 수준에서 해석될 수 없는 고차원적인 국면을 형성한다. 그는 이성적이지만은 않은, 결코 이성적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를추구하고자 했다. 그의 산문에 나타난 생활, 자연, 낯선 곳을 향한 여행은 결코 한만한 기분의 소산이 아니었다.” 【 신비가 있었다 생활이 빛났다 】 취미를 중심으로 한 이효석의 생활을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됫박으로 코피를 쏟아가며 글을 쓰면서도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운다. 사치스럽거나 말거나 스키 장비를 구입할 돈을 세어보고 원고지를 얼마나 채워야 하는지 따져본다. 또 그는 원두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10리 길을 걸어 다방에 간다. 학생들의 눈을 피해 한구석에 앉아 베토벤을 듣거나, 아예 찻집 주인들과 어울려 밤새 위스키를 기울인다. 어떤 날은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다가 연애편지를 쓰고, 어떤 날은 색상을 안배하여 화초를 심고 가꾼다.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날에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뒤늦게 담배를 배우고 나서는 성인의 문학이 쓴 담배맛과 같다고 되뇐다. 그는 ‘생활 없는 이상’을 경계하여 생활을 위해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낙엽을 태우면서」)고 하였지만, 한편 ‘환상 없는 생활’을 경계하여 “환상이 위대할수록에 생활도 위대할 것이니 그것이 없으면서도 찹찹하게 살아가는 꼴이란 용감한 것이 아니요 추접하고 측은한 것”(「청포도의 사상」)이라고 하였다. 이효석은 항상 새로운 삶을 원했고, 실천하는 생활로써 그것을 취했다. 이러한 생활관은 오늘날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생활’의 의미를 점검케 한다. 돈과 시간에 얽매여 사는 “추접하고 측은한” 삶이 아닌 충만한 삶을 생각하고 시작할 계기를 마련한다. 【 인생은 또 다른 항구에서 항구로 흘러간다 】 36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타계한 이효석은 늘 병약한 몸을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나 한곳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요양삼아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다녔다. 그는 내의바람에 잠방이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에 간다. 귀찮은 수영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수영을 하거나 희멀건 피부를 햇볕에 그을리며 태양과 결혼한 신부가 되는 상상을 한다. 북쪽의 온천에 가서는 여관의 두 여급과 삼각관계의 로맨스를 즐기기도 한다. 그는 또 답답하여 더 북쪽으로 간다. 하얼빈의 도심에 우거진 수목들의 우람한 모습에서 야성을 느끼고 야생 ‘돌배’를 맛보며 이국의 정취에 취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충만했던 그의 체험들은 관습이나 사회적 윤리를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발언이다. 물론 사랑에 관해서도 이성이 아닌 본능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처럼 자유분방한 사유는, 특히 「관북의 평야는 황소 가슴 같소」「이등변삼각형의 경우」「에돔의 포도송이」「청포도의 사상」「사랑하는 까닭에」「한식일」「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괴로운 길」 등에서 더욱 빛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