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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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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孝石,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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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젠가 동물원에 갔을 때 핸드백의 거울로 우리 안의 원숭이를 희롱해 본 적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제 꼴을 보고 짐승은 놀라고 흥분해서 한바탕 날뛰다가 나중에는 화를 내고 소리를 치고 독살을 피우며 우리 밖 사람에게로 달려드는 시늉을 하였다. 확실히 제 꼴과 사람의 모양과의 차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때에 느낀 놀랍고 부끄럽고 괴이한 감정에서 온 것이라고 보배는 판단하였다. 같은 감정을 사람도 처음으로 거울을 보았을 때에 느꼈을 것이며 참으로 번민과 사랑과 모든 정서는 거기서 생기는 자기의 얼굴의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성찬」 중에서 밀창을 열고 의자에 앉아 맑은 바람을 맞을수록 정신이 들면서 마음은 괴로워만 갔다. 뜰 앞 향나무를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 앉은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향나무를 대할 때마다 돌아간 선친의 의용에 접하고 그 목소리를 듣는 듯한 것이었으나 이날 그가 눈을 새삼스럽게 뜨고 놀란 것은 독한 약사발의 세례를 받았던 나무가 눈을 돌린 그 며칠 동안에 무섭게도 시들어 버렸음이다. 처음에는 한 부분이 탔을 뿐으로 그래도 소생할 희망이 있거니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덧 나무 전체가 시들었을 뿐이 아니라 탄 자리는 점점 헤져서 나무의 반 이상이 누렇게 말랐던 것이다. 운명의 날은 벌써 시각을 다투고 있었다. 세운은 모르는 결에 시선을 돌려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가슴이 아파지며 그 자리에 쓰러져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 「막」 중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물을 때, ‘외롭고, 적적하고, 얄궂은 것.’ 7년 동안에 얻은 결론이 이것이었다. 여러 해 동안 적어 온 사랑의 일기가 홀로 애태우고 슬퍼한 피투성이의 기록이었다. 준보는 언제나 하늘 위에 있는 별이다. 만질 수 없고 딸 수 없고 영원히 자기의 것이 아닌 하늘 위 별이다. --- 「가을과 산양」 중에서 집안에는 그 열매 냄새와 함께 잘 익은 오곡 냄새가 후끈후끈 풍기고 두 사람의 아내는 부를 대로 부른 배에 진종일 머루를 먹었다. 반년 동안 신공한 덕이라고는 해도 배를 두드리며 지낼 한가한 겨울이 온 것을 생각할 때 재도는 몸을 흐붓히 적셔 주는 행복감에 마음이 개나른해짐을 느꼈다. 이 가장 행복스러울 때 불행도 왔다. 그 불행이 오려고 그때까지의 행복이 준비되어 있었던지도 모른다. 어이없는 커다란 불행이 재도에게는 그렇게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안온하던 마음이 뒤집힐 듯 번져지면서 한 몸의 불운을 통곡하고 싶었다. --- 「산협」 중에서 “자네두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생각이 왜 그리두 범용하구 옹색한가. 사랑엔 인물 차별과 지경이 없다는 걸 실물로 교육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인간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보지 못하나? 한 사람의 인물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일반이라는 것, 사랑은 자유롭다는 것, 행복은 주위 사람들의 시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의 의지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 이 많은 교훈을 난 말없이 다만 한 번의 행동으로써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네. 학생들은 흔연히 이 교육을 받을 것이요, 그 인간적인 영향과 효과두 백 권의 수신서를 읽는 것보다 나으리. 자네들의 상식 이상으로 이것은 참으로 건전한 생각이라는 걸 알아 두게. 그리구 자네 내일부터 문학 그만두게나. 문학은 인간 되자구 하는 것이지 심심파적으로 숭상하는 건 아니니까.” --- 「풀잎」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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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흐르고, 정서로 남는 산문
서정의 빛으로 완성된 이효석 문학의 정수 『이효석 전집 2』는 이효석 문학이 가장 깊이 있게 무르익은 시기의 대표작들을 통해, 그의 서정적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193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들에는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현실과 상상, 전통과 근대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새로운 감각의 지형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인간의 내면은 결코 단선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자연은 단지 배경이 아닌 감정의 매개로 기능한다. 이효석은 단순히 ‘향토 작가’로 국한될 수 없다. 그의 작품에는 모던보이로서의 감각, 근대 문명에 대한 시선, 성 본능과 심리의 개방성, 문학 형식에 대한 실험정신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미학의 일부였다. 메밀꽃 필 무렵의 그늘에 가려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단지 한 장르에 갇힌 작가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이번 전집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사랑과 상실, 회한과 그리움을 중심에 둔 단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가을과 산양」, 「소복과 청자」, 「엉겅퀴의 장」, 「풀잎」 등은 감정의 미묘한 결을 따르는 서사로,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자연과의 교차 속에서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그의 문장은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된다. 산문이지만 시처럼 흐르고, 사건보다 정서가 중심이 되는 그의 소설은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경지를 보여준다. 『이효석 전집 2』는 단지 이효석의 후기 단편 모음이 아니라, 한국문학이 산문을 통해 도달할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감정의 고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시대를 초월한 언어의 감각, 정서의 깊이,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응시. 이효석의 문장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이 전집은 그 증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