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1 천일의 앤
12 신이 내려준 선물 Part 3 대체 아내를 몇이나 둘 거야? 13 그녀가 싫어! 14 가시 없는 장미 15 가벼운, 너무 가벼운 16 그 누가 마음에 차랴! 17 첼시 하늘 아래서 참고도서 가계도 |
Alison Weir
|
제인(시모어)은 왕비 앞에서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었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불타는 야망이 숨어 있었다. 앤의 눈길이 위험스럽게 빛날 때면 곧바로 납작 자세를 낮추었다 ... (왕과 제인의) 연애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탓에 가신들은 새 애인의 호감을 얻으려 호들갑을 떨었다. 왕비는 텅 빈 처소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냈다. 역사는 이렇듯 반복되는 법이다.
--- p.381~382 |
|
왕은 왕국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 따윈 접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왕비의 간통은 후계자 승계를 위험에 빠뜨릴 뿐 아니라 왕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왕의 높디높은 자존심은 자신을 속이거나 바보로 만든 아내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p.581 |
|
왕은 특유의 매력과 대중을 감화시키는 능력을 이용해서 백성들의 호의를 이끌어냈다. 파괴된 수도원의 폐허 위에 새로운 국교회를 세우고 교회 안의 부패를 뿌리 뽑았다. 이것은 잉글랜드 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가톨릭 신자로서 이단자에게 박해를 가했지만 잉글랜드가 종교개혁을 통해 신교 국가로 재탄생할 거란 선견지명을 가졌다... 그는 사후에 왕국의 왕이자 황제이자 교황으로, 백성들의 아버지이자 보모로서 추앙받았다.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만인에게 사랑받는 왕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 p.691 |
|
국내 최초로 발간되는 ‘천년의 스캔들’: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헨리 8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미 영미권의 소설과 영화를 통하여 수없이 반복되었다. 특히 영국의 국교가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뀌게 된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사랑 이야기는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지난 천년간 최고의 스캔들”로 꼽혔을 정도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미국 드라마 <튜더스>가 국내 케이블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며 헨리 8세의 거침없는 연애와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영국 궁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헨리 8세와 여인들』은 국내에서 처음 발간되는 헨리 8세와 여섯 왕비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다. 저자 앨리슨 위어는 집필을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직접 수집한 사료들을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하였다. 완고하고 헌신적인 가톨릭 신도 아라곤의 카탈리나, 자존심 강하고 야망이 큰 ‘천일의 앤’ 앤 불린, 유일하게 아들을 낳았던 외유내강의 여인 제인 시모어, 왕에게 버림받았지만 실속은 챙긴 클레브스의 안네, 무분별한 사생활로 죽음에 내몰린 캐서린 하워드, 헨리 8세의 마지막을 지켰던 캐서린 파.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어: 영국의 시오노 나나미, 앨리슨 위어 편지기록, 외교문서, 연대기 등의 연구를 통한 1차 자료의 철저한 고증은 여섯 왕비들에 얽힌 에피소드에 신빙성과 사실감을 부여한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연애소설을 읽듯 편안하게 읽히는데, 이는 ‘대중적인 역사’쓰기를 지향하는 저자의 역사관 덕택이다. 유려한 문체, 흥미진진한 사건 구성, 인물에 대한 입체적 분석은 앨리슨 위어의 역사서를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는 기존의 평면적인 역사책과 구별 짓는 주요한 특징이다. 오늘날의 진보적 여성들과 ‘깬 남성들’ 눈에는 헨리 8세의 아내들이 엄격한 구속에 얽매인 사람들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세뇌 받으며 자라난 튜더왕조 여성들에게 구속은 당연한 것이었다. 왕비조차 여염집 여인들처럼 남편 뜻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했다. 헨리 8세의 아내 중 제인 시모어는 ‘복종하고 섬기기’를, 캐서린 하워드는 ‘남편 뜻이 가장 먼저다’를 삶의 모토로 삶았다. 앤 불린과 캐서린 파는 지적 수준이 높고 왕과의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에 걸핏하면 왕과 충돌했다. 앨리슨 위어는 여섯 왕비를 서술하면서 그들을 착한 왕비, 나쁜 왕비와 같은 이분법으로 단순히 분류하지 않았다. 먼저 저자는 왕비를 비롯한 튜더 왕조의 여성들이 왜 정략결혼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성이 왜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는지, 여성이 지켜야할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당대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각적 분석과 사료의 토대 위에서 왕비들의 다층적 면모를 끄집어낸다. 헨리 8세에게 아들을 선사하고 생을 마감한 제인 시모어는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왕을 사로잡았다. 제인은 흔히 성녀나 이상적인 왕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그녀가 왕비를 목표로 철저한 계산 하에 헨리 8세에게 접근했다고 본다. 야심가인 오빠 에드워드가 그녀를 부추긴 것은 사실이지만 왕의 부인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그녀의 욕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헨리 8세는 후계자를 생산하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고분고분한 부인을 원했는데, 그의 여인들은 때로는 앤 불린처럼 격정적으로 다투면서, 때로는 제인처럼 부드럽지만 실리를 챙기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나갔다. 왕비들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나 사랑에 속고 우는 순진한 사랑지상주의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적과의 동침: 16세기의 유럽 열강들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은 형의 미망인인 ‘아라곤의 카탈리나’였다. 선왕 헨리 7세는 프랑스와 신성 로마제국를 견제하기 위해 에스파냐의 공주 카탈리나를 큰아들 아서와 결혼시켰다. 그는 아서가 급사한 후 에스파냐와의 왕 페르디난드와 결혼 지참금 문제로 4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그녀와 아서의 동생, 헨리 8세의 결혼을 승낙한다. 왕실 자제들이 사랑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공주나 왕자와 결혼하는 것은 그 당시 당연한 관습이었다. 중매로 맺어진 결혼에서 아내는 남편이 충실하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결혼은 거래일 뿐, 쾌락과는 별개였다. 왕족과 귀족들은 더 나은 부와 권력, 또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 배우자와의 이혼을 감행하기도 했다. 앤 불린, 제인 시모어 이후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가 된 ‘클레브스의 안네’. 독일의 공주였던 안네는 클레브스 지방을 영지로 하는 윌리엄 공의 누이였지만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다. 헨리 8세는 북부 독일 지방의 지지를 얻기 위해, 또한 윌리엄 공이 프랑스 왕과 절친하다는 이유로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추한 암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못 생긴 안네의 얼굴을 본 왕은 한 번도 그녀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안네와의 결혼은 무효화되었고 안네는 현명하게도 왕과 남매관계를 맺어 정당하고 안전하게 부와 권력을 누렸다. 종교, 권력의 동반자 또는 피해자 영국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꾼 이후 헨리 8세의 집권기는 물론 그의 딸들인 메리와 엘리자베스가 통치하던 시기까지, 구교와 신교는 서로 번갈아가며 권력을 쥐고 반대파 종교인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왕과 더불어 절대 권력을 구가하던 추기경 울시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식을 둔 지극히 세속적인 사제였다. 또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가톨릭 본래의 명분을 잊고 극소수의, 특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제의 신분을 남용했다. 그는 헨리 8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지만 신교를 옹호했던 앤 불린과의 세 겨루기에서 패한 후 비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던 토마스 모어 역시 종교와 권력의 틈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모어는 헨리 8세의 두터운 신임을 업고 대법관에 취임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왕의 이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자 왕은 결국 그를 져버렸다. 모어는 반역죄로 몰려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신교도의 편에 섰던 토마스 크롬웰은 앤 불린을 간통죄로 몰아 처형할 때 앞장섰다. 교황청과 연계된 수도원을 해산하고 국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首長)’으로 규정한 ‘수장령’을 선포하는 등, 그는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끊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인을 향한 사랑이 이내 시들어버리듯 신하를 향한 국왕의 신뢰도 오래가지 못했다. 크롬웰이 추천한 ‘클레브스의 안네’와 헨리 8세의 혼인이 6개월 만에 무효화되면서 두 사람 사이는 벌어지게 된다. 여기에 정적의 이간질이 더해져 크롬웰은 자신이 내몰았던 앤 불린과 마찬가지로 몰락하게 된다. 신교와 구교의 갈등은 헨리 8세 이후 가톨릭으로 국교를 바꾼 메리 여왕, 다시 성공회로 국교를 바꾼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고 종교와 권력이 결탁한 지루한 싸움은 무수한 생명만을 희생한 채 일단락되었다. 외국 미디어의 평 “심도 깊은 연구조사와 흥미진진한 내용. 그동안 헨리 8세의 다소 난잡한 결혼생활은 가십거리로 즐겨 이야기되어 왔으나 이처럼 심도 있게 다루어지긴 처음이다…. 소설적 흥미에 학문적 지식을 결합시킨 걸출한 작품이다.” - <디트로이트 뉴스> “잉글랜드에서 가장 위대한 왕의 아내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개성도 다양했다. 이 매혹적인 책에서는 이들의 감추어진 실체가 낱낱이 드러난다…. 앨리슨 위어에게는 역사적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비범한 재주가 있다.” -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