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자치통감 1
전국·진시대 편 양장
삼화 2007.09.05.
베스트
동양사/동양문화 top100 51주
가격
28,000
10 25,200
YES포인트?
1,4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시리즈 2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뷰타입 변경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신종 황제가 쓴 서문
자치통감을 올리는 표문
세화 판 1권 옮긴이 머리말
자치통감1<전국·진시대> 개정판에 부쳐
옮긴이 서문

권1 전국(戰國)시대의 개시
진(晉)의 분열과 사마광의 예론
재승덕(才勝德)의 지백(智伯)
예양(豫讓), 위 문후(魏 文侯) 그리고 오기(吳起)
피살과 암살로 점철되는 상황
제후가 된 대부 전화(田和)와 모함 받은 오기
멸망하는 제후국과 기사회생하는 위 혜왕

권2 중원(中原)을 둘러싼 각국의 각축전
진 효공과 6국 대결의 발단 그리고 위앙
보배, 병법의 대가, 그리고 신불해(申不害)
강해지는 진(秦)과 방연의 죽음
상앙·오고대부(五?大夫)·맹자의 정치철학
소진의 합종책(合縱策) 전말
장의의 활약과 맹상군(孟嘗君)의 사람됨

권3 진(秦)의 세력 확장
진(秦)과 제(齊)의 정벌과 맹자의 논리
장의의 연형책과 대활약
무령왕과 선태후, 맹상군과 평원군 그리고 추연

권4 난세의 영웅들
불행한 초의 회왕과 조의 주부, 무도한 진
교만한 제왕들과 반성하는 백성들
조의 인상여와 염파 그리고 연의 낙의
위기 속의 제(齊)를 구한 전단(田單)
진에 땅을 바친 위와 진을 설득한 황헐(黃歇)

권5 강해지는 진(秦)과 망해버린 주(周)
조의 조사(趙奢)와 진의 재상 범휴(范?)
진(秦)에 대응하는 조·초·제
진의 강성화와 이에 대응하는 인물들
조를 구원한 신릉군, 여불위와 진시황

권5 진시황(秦始皇)의 등장
목숨을 부지한 범휴와 순경의 군사론
다툼하는 열국, 노중련과 신릉군
진의 확대와 5국 연합의 실패
춘신군, 여불위, 한비자의 죽음
원수를 갚으려 한 연 태자 단

권6 진시황의 중국통일
차례로 망하는 6국의 어리석은 사람들
시황제의 통일정책
시황제의 죽음과 제거된 몽씨들
폭압정치 속에서 다시 살아난 제후 세력들

권8 진(秦)나라의 멸망
스러져가는 호걸과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
이사를 죽인 진으로 향하는 패공 유방
승리의 기세를 잡은 항우와 유방
진의 장한, 조고, 2세 황제의 최후

전국·진(秦)시대 각국 기년 비교표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司馬光 ,우부, 우수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은 산서성 출신으로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도 하며, 죽은 뒤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진사가 된 뒤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신종이 왕안석을 발탁하여 신법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추밀부사 직을 사퇴하고 지방으로 나갔다. 특히 사마광은 유가에서 혁명적 이론을 포함하고 있는 맹자와 달리 맹자 이전의 공자로 돌아가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사마광은 편년체 역사서『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쓰고 있었는데, 신종은 이 책의 완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84년 마침내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은 산서성 출신으로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도 하며, 죽은 뒤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진사가 된 뒤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신종이 왕안석을 발탁하여 신법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여 추밀부사 직을 사퇴하고 지방으로 나갔다. 특히 사마광은 유가에서 혁명적 이론을 포함하고 있는 맹자와 달리 맹자 이전의 공자로 돌아가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시 사마광은 편년체 역사서『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쓰고 있었는데, 신종은 이 책의 완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84년 마침내 『자치통감』을 완성하고 신종이 이어 등극한 철종 때 중앙에 복귀한다. 재상으로서 왕안석의 신법을 폐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으나 몇 달 안 되어 죽었다.
저술로는 『자치통감』 외에 『속수기문(涑水紀聞)』,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 등이 있다.

사마광의 다른 상품

權重達

중앙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 유학하여 「『자치통감』이 한국과 중국의 학술에 끼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부터 중앙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2006년에 정년퇴임하여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권중달 교수는 역사지식의 대중화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7년부터 『자치통감』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05년 말에 200자 원고지 8만매 분량인 『자치통감』 전294권을 완역하였다. 그리고 2007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권중달 역주 자치통감』 31권과 해설서 『자치통감전』 1권, 전32권을 출간하였다
중앙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 유학하여 「『자치통감』이 한국과 중국의 학술에 끼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부터 중앙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2006년에 정년퇴임하여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권중달 교수는 역사지식의 대중화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7년부터 『자치통감』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05년 말에 200자 원고지 8만매 분량인 『자치통감』 전294권을 완역하였다. 그리고 2007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권중달 역주 자치통감』 31권과 해설서 『자치통감전』 1권, 전32권을 출간하였다. 일반 독자를 위하여 펴낸 『자치통감산책』은 『자치통감』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 6월에 대만의 중화문화총회는 ‘자치통감을 번역하고, 중국역사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서 문화공로상을 수여하였다. 저서로 『중국근대사상사』『자치통감전』,『자치통감산책』,『자치통감사론강의(전2권)『위진남북조시대를 위한 변명』,『황제뽑기』『자치통감 3번 태어나다』외가 있고, 역서로 『역사학연구방법론』, 『중국사의 새로운 이해』, 『문화대혁명 전후의 중국역사인식』,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역서 『가사』 외 공역과 공저가 다수가 있다.

권중달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9월 0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86쪽 | 75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2490016

책 속으로

“이 책에 실린 밝은 군왕과 훌륭한 신하들은 정치하는 도리를 절실하게 연마한 것이니, 토의하고 의논한 자세하고 치밀한 말들과 덕을 베풀고 형벌을 주는 좋은 제도, 하늘과 사람이 서로 더불어 하는 관계, 아름답거나 혹은 허물이 되는 증거의 근원, 권위와 복이 되며 번성하고 쇠락하게 되는 근본, 규모(規模)를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하여 나타나는 효과, 훌륭한 장수의 방책과 지략, 법조문을 잘 따르는 관리가 만든 조목조목의 가르침, 사악함과 올바름으로 결단을 내린 것, 잘 다스리고 소홀한 것의 요점을 파악하고, 문장에서 근원이 있고 기품이 두터운 체제, 잠언(箴言)이나 간언(諫言)의 깊고 절실한 의미 등까지 매우 잘 갖추어놓았다.”(신종 황제가 쓴 『자치통감』서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진(秦), 중국천하를 최초로 통일하다
이번 출간된 전국(戰國)·진(秦)시대 편은 자치통감의 원문 권1부터 권8까지 8권 분량으로 2000년 세화출판사에서 출간하였던 것을 이번에 완전 개고(改稿)하여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이번에 나온‘전국(戰國)·진(秦)시대’편은 200여 년간 지속된 춘추시대를 이은 전국(戰國)시대와 진(秦)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제후들의 세력 확대로 흔들리던 주(周) 왕조가 기원전 770년 북방 야만족인 견융족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게 되어 수도를 호경(縞京)에서 낙양(洛陽)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 이전시대를 서주(西周)시대라고 하고, 그 이후를 동주(東周)시대라고 부른다. 역사에서 이 동주시대를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라고 부르는데, 춘추(春秋)란 공자(孔子)의 저서《춘추(春秋)》에서 유래하였고, 전국(戰國)시대의 명칭도 같은 노(魯)나라 시대의 사실을 적은《전국책(戰國策)》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국시대의 시작은 춘추시대의 강국 중 하나였던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뉜 기원전 403년경으로 본다. 춘추시대에는 주 왕실의 형식적인 권위가 남아 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각 나라의 패자(覇者)들이 서로 왕이라고 칭하며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목표로 치열한 전쟁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하던 수많은 나라들은 결국 7개의 강대국 밑으로 흡수 합병되는데, 이를‘전국7웅’이라고 부른다. 전국7웅은 진(秦)·연(燕)·초(楚)·제(齊)·한(韓)·위(魏)·조(趙)이다.
기원전 359년 당시 가장 강력했던 진(秦)의 효공(孝公)이 상앙(商?)을 등용하여 제1차 변법을 실시하는데, 진나라의 경제발전과 군사 확장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효공은 개혁의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기원전 350년부터 제2차 변법을 시행하였는데, 봉건 영주의 토지 소유제를 폐지하는 등 제1차 때 보다 더 강력했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말 진나라의 재상이 되고자 하였으나 진왕이 거들떠보지도 않자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있던 소진(蘇秦)이 그 유명한 합종책(合從策)을 성립한다.
“진 밑에서 소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연 등 6국을 설득시켜 종적(縱的)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동맹을 맺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위나라 장의(張儀)가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을 섬겨야 한다고 역시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게 된다. 이른바 연횡책(連衡策)을 성사시켜 합종책에 맞선다.

결국 진은 6국의 합종을 타파한 뒤 차례로 멸망시켰고, 기원전 260년 장평(長平) 싸움에서 조를 이겨 조의 세력을 약화시킨 뒤 연합한 초·조·한·위의 마지막 저항도 물리치고, 기원전 221년 중국 전역을 통일한다.
그러나 황제란 말을 처음 사용한 진시황(秦始皇)은 유가학파의 고대 숭배사상에 대응하면서 그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을 일으킨다.
유생이 진 제국의 철저한 군현제 강행을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함으로써 불행한 사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적인 학문으로 정치를 비판하는 일체의 행동을 본원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진기 이외의 사서는 모두 불태우고,《시》《서》 백가어를 수장한 자는 30일 이내에 모두 관에 신고하여 불태우되 이를 어긴 자는 처벌을 받았다. 또 기원전 212년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을 구하는데 실패한 방사(方士)들이 달아나자, 시황제는 함양(咸陽)에 있는 유생을 체포하여 결국 460여 명이 구덩이에 파묻는다. 말 그대로 분서갱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마지막 순행 도중 사망하자 수행한 이사와 조고(趙高)는 유언을 위조하여 황자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였으나, 기원전 209년 이후 시작된 반란으로 진 제국은 급속히 와해되고 결국 망한다.

리뷰/한줄평3

리뷰

9.0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