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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황제가 쓴 서문
자치통감을 올리는 표문 세화 판 1권 옮긴이 머리말 자치통감1<전국·진시대> 개정판에 부쳐 옮긴이 서문 권1 전국(戰國)시대의 개시 진(晉)의 분열과 사마광의 예론 재승덕(才勝德)의 지백(智伯) 예양(豫讓), 위 문후(魏 文侯) 그리고 오기(吳起) 피살과 암살로 점철되는 상황 제후가 된 대부 전화(田和)와 모함 받은 오기 멸망하는 제후국과 기사회생하는 위 혜왕 권2 중원(中原)을 둘러싼 각국의 각축전 진 효공과 6국 대결의 발단 그리고 위앙 보배, 병법의 대가, 그리고 신불해(申不害) 강해지는 진(秦)과 방연의 죽음 상앙·오고대부(五?大夫)·맹자의 정치철학 소진의 합종책(合縱策) 전말 장의의 활약과 맹상군(孟嘗君)의 사람됨 권3 진(秦)의 세력 확장 진(秦)과 제(齊)의 정벌과 맹자의 논리 장의의 연형책과 대활약 무령왕과 선태후, 맹상군과 평원군 그리고 추연 권4 난세의 영웅들 불행한 초의 회왕과 조의 주부, 무도한 진 교만한 제왕들과 반성하는 백성들 조의 인상여와 염파 그리고 연의 낙의 위기 속의 제(齊)를 구한 전단(田單) 진에 땅을 바친 위와 진을 설득한 황헐(黃歇) 권5 강해지는 진(秦)과 망해버린 주(周) 조의 조사(趙奢)와 진의 재상 범휴(范?) 진(秦)에 대응하는 조·초·제 진의 강성화와 이에 대응하는 인물들 조를 구원한 신릉군, 여불위와 진시황 권5 진시황(秦始皇)의 등장 목숨을 부지한 범휴와 순경의 군사론 다툼하는 열국, 노중련과 신릉군 진의 확대와 5국 연합의 실패 춘신군, 여불위, 한비자의 죽음 원수를 갚으려 한 연 태자 단 권6 진시황의 중국통일 차례로 망하는 6국의 어리석은 사람들 시황제의 통일정책 시황제의 죽음과 제거된 몽씨들 폭압정치 속에서 다시 살아난 제후 세력들 권8 진(秦)나라의 멸망 스러져가는 호걸과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 이사를 죽인 진으로 향하는 패공 유방 승리의 기세를 잡은 항우와 유방 진의 장한, 조고, 2세 황제의 최후 전국·진(秦)시대 각국 기년 비교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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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밝은 군왕과 훌륭한 신하들은 정치하는 도리를 절실하게 연마한 것이니, 토의하고 의논한 자세하고 치밀한 말들과 덕을 베풀고 형벌을 주는 좋은 제도, 하늘과 사람이 서로 더불어 하는 관계, 아름답거나 혹은 허물이 되는 증거의 근원, 권위와 복이 되며 번성하고 쇠락하게 되는 근본, 규모(規模)를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하여 나타나는 효과, 훌륭한 장수의 방책과 지략, 법조문을 잘 따르는 관리가 만든 조목조목의 가르침, 사악함과 올바름으로 결단을 내린 것, 잘 다스리고 소홀한 것의 요점을 파악하고, 문장에서 근원이 있고 기품이 두터운 체제, 잠언(箴言)이나 간언(諫言)의 깊고 절실한 의미 등까지 매우 잘 갖추어놓았다.”(신종 황제가 쓴 『자치통감』서문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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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중국천하를 최초로 통일하다
이번 출간된 전국(戰國)·진(秦)시대 편은 자치통감의 원문 권1부터 권8까지 8권 분량으로 2000년 세화출판사에서 출간하였던 것을 이번에 완전 개고(改稿)하여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이번에 나온‘전국(戰國)·진(秦)시대’편은 200여 년간 지속된 춘추시대를 이은 전국(戰國)시대와 진(秦)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제후들의 세력 확대로 흔들리던 주(周) 왕조가 기원전 770년 북방 야만족인 견융족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게 되어 수도를 호경(縞京)에서 낙양(洛陽)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 이전시대를 서주(西周)시대라고 하고, 그 이후를 동주(東周)시대라고 부른다. 역사에서 이 동주시대를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라고 부르는데, 춘추(春秋)란 공자(孔子)의 저서《춘추(春秋)》에서 유래하였고, 전국(戰國)시대의 명칭도 같은 노(魯)나라 시대의 사실을 적은《전국책(戰國策)》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국시대의 시작은 춘추시대의 강국 중 하나였던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뉜 기원전 403년경으로 본다. 춘추시대에는 주 왕실의 형식적인 권위가 남아 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각 나라의 패자(覇者)들이 서로 왕이라고 칭하며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목표로 치열한 전쟁을 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하던 수많은 나라들은 결국 7개의 강대국 밑으로 흡수 합병되는데, 이를‘전국7웅’이라고 부른다. 전국7웅은 진(秦)·연(燕)·초(楚)·제(齊)·한(韓)·위(魏)·조(趙)이다. 기원전 359년 당시 가장 강력했던 진(秦)의 효공(孝公)이 상앙(商?)을 등용하여 제1차 변법을 실시하는데, 진나라의 경제발전과 군사 확장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효공은 개혁의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기원전 350년부터 제2차 변법을 시행하였는데, 봉건 영주의 토지 소유제를 폐지하는 등 제1차 때 보다 더 강력했다. 한편 기원전 4세기 말 진나라의 재상이 되고자 하였으나 진왕이 거들떠보지도 않자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있던 소진(蘇秦)이 그 유명한 합종책(合從策)을 성립한다. “진 밑에서 소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연 등 6국을 설득시켜 종적(縱的)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동맹을 맺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위나라 장의(張儀)가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을 섬겨야 한다고 역시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게 된다. 이른바 연횡책(連衡策)을 성사시켜 합종책에 맞선다. 결국 진은 6국의 합종을 타파한 뒤 차례로 멸망시켰고, 기원전 260년 장평(長平) 싸움에서 조를 이겨 조의 세력을 약화시킨 뒤 연합한 초·조·한·위의 마지막 저항도 물리치고, 기원전 221년 중국 전역을 통일한다. 그러나 황제란 말을 처음 사용한 진시황(秦始皇)은 유가학파의 고대 숭배사상에 대응하면서 그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을 일으킨다. 유생이 진 제국의 철저한 군현제 강행을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함으로써 불행한 사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적인 학문으로 정치를 비판하는 일체의 행동을 본원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진기 이외의 사서는 모두 불태우고,《시》《서》 백가어를 수장한 자는 30일 이내에 모두 관에 신고하여 불태우되 이를 어긴 자는 처벌을 받았다. 또 기원전 212년 불로장생약(不老長生藥)을 구하는데 실패한 방사(方士)들이 달아나자, 시황제는 함양(咸陽)에 있는 유생을 체포하여 결국 460여 명이 구덩이에 파묻는다. 말 그대로 분서갱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마지막 순행 도중 사망하자 수행한 이사와 조고(趙高)는 유언을 위조하여 황자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였으나, 기원전 209년 이후 시작된 반란으로 진 제국은 급속히 와해되고 결국 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