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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꾸불꾸불가기 1.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일상사 2. 동원된 자발성 3. 욕망과 소비 4. 극한적 일상과 일상적 일상 5. 제도화된 일상 에필로그 |
林志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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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불꾸불 가는’ 대중의 일상
독일에서 일상사/역사인류학 연구를 주도하는 알프 뤼트케는 역사 행위 주체인 대중의 일상을 ‘꾸불꾸불 가기’라고 표현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대중을 그저 단선적인 방식 즉 저항 또는 수용이라는 두 가지 중 한 입장으로만 분석해왔다. 그러나 대중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왔다갔다했다”. 같은 집단(회사, 관료 조직, 군대)의 구성원들조차 다양성과 차이를 나타내며, 각 개인의 태도와 삶의 방식은 존재 조건이나 입지에 상관없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모습을 보인다. 문제가 되는 상황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일상사적 접근은 이처럼 사람들의 행동이나 행위 방식이 다양하며 모순과 차이를 담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이러한 일상사적 연구를 근거로 뤼트케는 대중에게는 한편으로는 충성과 통합,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 두기와 저항이라는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는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즉 일상이라는 영역을 재구성해보면, 사람들은 세상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지배의 매력, 그리고 부수적으로는 그들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행동에 대한 열망에 공명하며 그 열망으로 강화되는 꾸불꾸불 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역사, 페러다임 전환과 문제 피터 램버트Peter Lambert(웨일스 대학 사학과 교수)는 나치즘, 특히 제3제국의 사회사 연구에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적용한 주요 흐름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제3제국 역사가 처음 닻을 내린 곳이 신좌파의 네오-마르크스주의라고 말한다. 이후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와 신좌파가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오히려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그 와중에 연구자들은 저항에 대한 연구에서 나치즘 자체나 나치 전권에 대한 대중의 협력을 탐구하는 것으로 연구의 초점을 바꾸었다. 이러한 경향 가운데 첫 번째가 독재체제하의 ‘평범한’ 독일인과 그들의 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바뀌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범한 독일병사들의 잔인한 행동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전쟁 범죄를 설명할 길이 없으며, 이는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한 평범한 경찰들의 역할에 관심을 촉발시켰다. 또 다른 경향은 제3제국의 일상을 감시한 게슈타포와 그 활동에 대한 새로운 역사서술이다. 이는 제3제국 내의 감시나 테러가 미친 범위와 성공뿐만 아니라 대중의 자발적 고발을 설명해줄 수 있는 연구다. 최근 들어 저항과 반대의 역사를 복원하고 테러 활동에 대한 나치당 자체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도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램버트는, 평범한 독일인들과 나치 테러의 관계는 대중독재에서 ‘위로부터의’ 권력 행사가 지니는 의미를 반감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이것은 심지어 ‘아래로부터의’ 관점이 지니고 있는 해석적 가치의 한계점을 생각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공동체, 그리고 자기권능화 미하엘 빌트Michael Wildt(함부르크 사회문제연구소 연구원 겸 하노버 대학 객원 교수)는 나치 사상의 정수를 민족이라 말하며, 나치는 정치적으로 국가와 사회를 민족공동체라는 새로운 정치질서로 변화시켜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민족공동체를 종교나 젠더, 인종과 상관없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추상적 집합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로 보았다. 이에 비춰 빌트는 민족공동체란 동일성과 힘, 주권의 실제적 경험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하나의 약속이라고 정의한다. 모든 이질적 요소를 분리시켜 그 속에서 고유한 동질성을 확립함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정치적 주권자가 되었던 메타 근대적 정치질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전사들의 무자비한 공동체, 기존 질서를 모두 파괴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무자비한 수단으로 생활 공간을 얻어낸 냉혹한 전사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족공동체란 포용적이거나 평등 또는 복지로 정의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폭력성과 거세를 근거로 한 개념이었다. 따라서 폭력적인 반유대주의적 공격이야말로 민족공동체를 확인시키고 실행시켰으며, 이는 인종주의적 공동체, 그리고 ‘민족의 동지’와 ‘민족에 낯선 자’ 사이의 배타적 위계질서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폭력 행위를 주도한 악한들은 자신들이 정치의 장을 정의하고 지배할 수 있으며, 모든 가담자, 특히 유대인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자들에게 새롭게 창조된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폭력은 지역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질서를 파괴시켰으며, 심지어는 폭력을 단순히 바라만 보고 있던 자들마저 이러한 기존 질서를 침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폭력 행위를 주도한 악한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람들 또한 절대적으로 우세한 힘이 그들에게 넘어갔음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폭력 행위가 실행되었던 바로 그 순간, 나치의 목표였던 인종주의적 위계질서 즉 자기권능화self-empowerment로서의 민족공동체를 창조하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일상사, 그리고 동원된 자발성 제1부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일상사에서 피터 램버트(<아래로부터의 역사, 나치즘과 제3제국>)는 나치즘 특히 제3제국의 사회사 연구에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적용한 주요 흐름을 정리했고, 미하엘 빌트("자기권능화로서의 민족공동체")는 나치의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나치의 인종주의적 위계질서 즉 자기권능화로서의 민족공동체를 창조하는 과정을 살핀다. 그리고 케빈 맥더모트Kevin McDermott (아래로부터의 스탈린주의?)는 대대적 테러의 사회적 전제조건과 스탈린 당시 테러에 대한 대중의 대응을 사학사적 맥락에서 새롭게 접근한다. 제2부 동원된 자발성에서는 마오쩌둥의 “대중에 의한 독재”를 일정 부분 비판하고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몰두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핀 미하엘 쇤할스Michael Schoenhals(<이단재판 떠넘기기>), 스타하노프 일꾼들이 자신들의 강연, 수기, 회고록 등을 통해 어떻게 스탈린 체제와 사회주의 건설 프로그램에 대한 일체감을 일상 곳곳에서 구축해나갔으며 어떻게 대중 속에서 체제에 대한 동의와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모델이 될 수 있었는가를 연구한 이종훈(<스타하노프 일꾼들의 술회 속에 나타난 일상>), 나치 정권에 의해 말살된 유년 시절의 상징이자 독재체제가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권형진(<히틀러 유겐트의 ‘일상’ 읽기>)를 통해 권력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으나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고단한 길을 간 대중의 일상을 고찰한다. 욕망과 소비 제3부 욕망과 소비에서는, 국가에 의해 정의되고 국가 목표에 정향된 집단적 주체성을 통해 시민들을 사회화하려는 것은 “욕망의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 즉 개인적인 호불호를 사적 쾌락에서 떼어내 공적인 기획으로 되돌리는 것임을 살핀 찰스 암스트롱Charles K. Armstrong(북한과 욕망의 교육), 40년간 존속했던 동독에서의 소비생활을 통해 다양한 이유에서 체제에 화합하고 동참했던 대중의 혼란과 충성에 대해 고찰한 하랄트 데네Harald Dehne(소비하거나 몰락하거나), 평범한 독일인들이 경험한 나치 독재, 그리고 나치 독재하에서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일별한 나인호(꿈으로 본 나치 민족공동체의 일상)을 통해 독재의 헤게모니 공세와 대중의 관계를 통해 종래의 전체주의적 편향성을 극복하려 했다. 전체주의론은 대중을 단지 사회성을 상실한 수동적 개인으로 파악하며 대중이 테러와 강압에 의해 위로부터 조작된 채 동원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대중은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견지한 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라는 데서 출발한다. 더욱이 동의와 강제가 가지는 내적 연관성을 중시하면서 독재에 대한 대중의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특히 "꿈으로 본 나치 민족공동체의 일상"은 나치 정권에 적극적 공감을 표시하거나 정권 덕택에 이익과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비주류의 보통 사람들, 즉 ‘잠재적 반대자들’의 꿈을 다루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이들 역시 나치 독재의 헤게모니 공세에 대해 강제적 순응에서부터 적극적 동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보였음을 드러내준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근대국가의 헤게모니 공세 안에는 대중을 도덕적 재앙 및 집단적 병적 쾌감 상태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극한적 일상과 일상적 일상, 그리고 제도화된 일상 제4부 극한적 일상과 일상적 일상에는, 아우슈비츠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의 수감자들의 삶과 행동, 그리고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살핌으로써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책임과 기억의 문제를 되묻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치 수용소의 참담한 과거와 온전하게 대면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김용우(프리모 레비의 회색지대와 수용소의 일상), 1995년 출간된 지 1년 만에 15만 부 이상 판매된 클렘페러의 일기를 통해 혹독한 탄압을 거치면서도 독일인이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독일 사회에 동화되고자 했던 유대인들의 자기 정체성을 고찰한 이진일(“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증언할 것이다”), 소비에트식 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권력과 상징적 엘리트의 관계를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보여주는 크쉬시토프 잘레프스키Krzysztof M. Zalewski(소비에트 체제 국가에서의 지식인의 일상생활)이 담겨 있다. 제5부 제도화된 일상에서는, 인민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 걸친 소비에트 체제의 가치 확립이 체제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데 필수적 과정이었음을 지적한 박원용(‘소비에트 인간형’ 창조), 국민의 일상에 파고든 축구를 스페인 프랑코 체제는 어떻게 다뤘으며 이것이 체제 유지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모색한 황보영조(프랑코 체제와 축구), 비시 정부 치하에서 임시 수도에 거주한 주민의 일상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비시 체제에 협조하고 저항했는지,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암묵적 지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했는지 아니면 독일 지배가 지속되리라 생각해 독일에 적극적이었는지, 그리고 임시 수도였던 비시는 오늘날의 프랑스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핀 이학수(임시 수도 비시와 비시의 주민들, 1940~1944)를 통해 권력은 위로부터의 폭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문화적 수단을 통해 대중의 동의를 확보해나가는 협상의 과정임을 확인한다. 일상의 비순응적 저항, 체제의 작동 원리로서의 합의와 공존하다 일상이라는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일상사적 역사서술이 아직도 광범위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일상사의 근본적인 한계에서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에필로그>에서 밝히듯 “일상사가 불러오는 이해의 무한정한 파편화에도 불구하고 구체를 넘어선 추상적 차원의 새로운 통찰의 미덕조차 부정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뿌리 깊은 특권에 대한 비판이다. 이성 중심의 이분법적 패러다임에서는 오늘의 저항 지점이 내일의 억압 지점으로 바뀔 수 있다. 그것은 다시 좋은 헤게모니를 가진 우리가 나쁜 헤게모니를 대체하여 민중을 계몽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식의 변혁 전략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 책은 정치적 올바름에 따른 규범적 이해가 아니라 대중독재 체제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꾸불꾸불한’ 일상, 모순되고 복합적인 삶이라는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이해야말로 강고한 것처럼 보이는 대중독재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고 출구를 찾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