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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전환기에서 다시 발견하는 ‘책문화’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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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 Hyung-taek,林熒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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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 20년이요, 편지를 받지 못한 지 어언 6년이니, 생리 15년에 사별이 6년이구려. …… 애오라지 바라기를 다시 만나는 날 각기 겪었던 괴로움을 밤새워 나누며 일희일비하며 오직 죽는 날까지 서로 잊지 말쟀더니, 이제 그만이구려, 이제 그만이구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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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자의 30여 년 학문생활의 결산
학문에 평생을 건 학자의 존재 조건은 무엇일까.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 집요한 끈기와 목표의식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는 학자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문화유산 중에서 그 양과 내용이 가장 풍부한 서책의 유산이 외면당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매장된 책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가 소개하는 고전은 대부분 당연히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 그것을 번역해 출판하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작업은 대상이 되는 책의 선정과 번역 그 자체도 주목을 받았지만 책에 붙인,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가 담긴 해제는 전공자들 사이에 치밀한 논고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해제는 단순히 책 앞뒤에 고명처럼 얹힌 ‘옮긴이의 말’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도 저자와 시대의 뿌리까지 내려가 책의 근본을 캐는 노작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을 찾아서』는 이런 지은이가 30여 년 동안 치열하게 몰두해온 자신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멀게는 고려 말의 『목은집』부터 가까이는 20세기의 「해방 전후」까지 40종의 책이 소개되었으며, 각각의 저작을 둘러싼 인물과 시대적·사상적 배경까지 충실하게 다루어져 그야말로 ‘고전을 통해 보는 역사’라 할 수 있다. 특히 홍명희의 『임꺽정』, 이태준의 「해방 전후」 등 우리에게 친숙한 20세기 문학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고전’이 반드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만들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내야 할 대상임을 말해준다. 이 책은 한길사에서 새로 기획한 ‘이상의 도서관’(※별첨 자료 참고) 시리즈 제1권으로 출간된다. ‘이상의 도서관’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을 높이고 인문적 풍토를 조성하며 나아가 문화적 지평을 넓힘으로써 출판의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교양도서 시리즈다. 그 출발이 ‘고전’에서 시작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 참된 교양을 쌓아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고전을 찾아서』는 낡고 오래된 책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잊혀져가던 우리의 ‘고전’을 다시 오늘 우리 앞으로 불러낸 한 학자의 지난 30여 년 치열한 연구의 ‘결산표’인 동시에 서구 지향의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한문학계가 기울여온 노력의 ‘결산표’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가 몰랐던 이름, 기억해야 할 책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애달프게 토해낸 이 울음의 주인공은, 낙하생 이학규.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일대의 재사’로 불렸으나 오늘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금대 이가환의 외조카인 그는 신유박해 때 천주교도로 몰려 억울하게 유배되었으며, 24년이나 유배생활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은이는 그의 불운한 일생을 추적하고 국내외의 각처에 흩어진 유고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울분과 고뇌 속에서 써내려간 이학규의 유고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어 있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뒤늦게 공간된 『낙하생전집』을 가리켜 ‘다행한 일’이라고 안도한다. 또 ‘역사시의 최대 성과’라 할 만한 이복휴의 『해동악부』를 발견하고 베일에 싸인 그 저자를 궁금해 하며 족보를 뒤지고 종가를 찾아가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이복휴의 문집인 『한남집』까지 발견해서 인물과 사상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야담계 단편집인 『동패낙송』의 저자 노명흠을 밝혀내는 과정은 별도의 논문으로 작성해서 밝혀야 할 만큼 복잡하다. 이뿐이 아니다. 개항 직전의 귀중한 문헌 『지수염필』을 읽고 본문 속에서 단서를 잡아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이름과 생몰연대·저작연대까지 추리해내며,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진명집』을 통해 저자 권헌의 미학적 논의를 발굴한다. 주자학을 공격하고 인간 본성에서 ‘욕망’을 제일로 꼽은 ‘경이로운 학자’ 심대윤이 사장된 데 대해서는 “학문하는 우리로서 먼저 반성을 요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라고 탄식한다. 지은이는 개인뿐 아니라 가문의 유산에도 주목한다. 나주 임씨 집안의 문집을 엮은 『회진세고』, 원주 이씨 집안의 문집을 엮은 『원주세고』를 이야기하면서 가문적 전통의 해체와 함께 각 집안에서 간직하던 서책들이 흩어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인쇄기술이 발달한 지금 더 늦기 전에 가문에서 전해오는 문헌을 묶어서 간행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비록 시대는 달라졌지만 선조의 훌륭한 사적을 아는 것이 자아의 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은이의 말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다시 발견하는 우리의 빛나는 고전 『열하일기』.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지은이는 많은 논자들이 『열하일기』에서 실학과 북학의 측면만 주목할 뿐 박지원이 진정으로 펼친 세계인식의 대주제를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열하일기』를 그저 민족의 고전으로 기념할 뿐 ‘세계의 고전’으로 인식하지 못해왔다고 한다. 지은이는 『돈 키호테』를 예로 들어 박지원이 돈 키호테와 마찬가지로 붓 한 자루 들고 세계를 향해 돌진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돈 키호테는 회고적 환영을 좇아 시대 역행의 싸움을 벌인 반면 박지원은 진보적 의식으로 시대 선행의 싸움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서구의 근대소설이 세계인식을 언어형상으로 표출한 데서 비롯되었으니, 세계인식의 논리와 형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열하일기』를 ‘세계의 고전’ 자리에 놓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조선시대 성행한 여타의 목민서들을 비교하며 『목민심서』가 어째서 한국 사회과학의 불후의 고전으로 남았는지 찬찬히 짚어간다. 미완으로 남은 홍명희의 『임꺽정』에 대해서는 그 결말을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예상하면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민족문학의 위대한 성과라 예찬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태준의 단편소설들 역시 순문학과 프로문학의 경계를 뛰어넘어 현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보편성을 구현하였다고 평한다. ‘우리 고전을 찾아서’라는 제목부터가 잊혀진 유산의 재발굴은 물론, 잘 알려진 고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이야기다. 우리는 귀중히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유산의 상당수를 잃어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갖고 있는 보물의 가치마저 깨닫지 못하는데, 그래서야 과거를 양분으로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근대 이후 서구에 예속된 채 ‘『열하일기』에 비견할 『미국기행』 한 편 낳지 못한’ 우리의 지성을 비판하는 지은이의 목소리가 따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