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을펴내며
율곡학의 선구 율곡학과 정암도학 오종일(전주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화담기학 최영찬(전북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퇴계학 홍원식(계명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고봉성리학 이동희(계명대학교 교수) 율곡성리학과 우계성리학 황의동(충남대학교 교수) 율곡학의 계승 율곡예학과 사계예학 한기범(한남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우암성리학 리기용(연세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반계실학 안재순(강원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명재실학 최정묵(충남대학교 강사) 율곡학과 호락논쟁 이상익(영산대학교 교수) 율곡학과 이학異學 율곡학과 육왕학 김길락(충남대학교 교수)/ 율곡의 불교관 이희재(광주대학교 교수) 율곡과 도가 이종성(충남대학교 교수)/ 율곡의 역학관 남명진(충남대학교 교수) |
|
철학자와 경세가적 세계관―율곡학의 독자성
기호학파의 종장인 율곡 이이(1536~1584)는 조선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유학자와 경세가로서의 삶을 병행한,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조선 중기 이후의 조선성리학은 퇴계 이황과 함께 이이의 영향하에 놓여 있었다. 이이의 성리학은 주자성리학을 계승하여 보다 심화하고 보완하면서도, 기발리승일도氣發理乘一途설과 같이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성리학적 이론만을 탐구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나라와 민생을 걱정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강렬한 개혁의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임금에게 성학聖學을 권면하고, 개혁을 설득하고, 왕도를 제시하였다. 율곡학은 또한 김장생으로 대표되는 조선예학의 집성과 조선 후기 전통 유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실학을 형성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로써 보건대 율곡학은 단순히 유학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한다고 할 것이다. 다른 학문과의 조화―율곡학의 개방성 율곡학의 이러한 포괄성은 바로 그의 개방적 학풍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이는 어린시절에 불교에 귀의한 적이 있었고,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이단으로 여기던 상황에서 『노자』를 자신의 방식대로 배열하여 구결과 해설을 붙인 『순언』을 저술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정통 성리학자라고 할 수 있는 이이는 당시의 성리학자들, 특히 이황과 달리 불교, 도가, 양명학, 서경덕의 기학氣學 등에 대하여 무조건 비판하지 않고, 성리학적 입장에서 개방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는 성리학에 기반을 두지 않은 다른 학문과의 조화를 통해 17세기 조선조 유학의 다기화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이 이후의 율곡학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성리학의 이론적 탐구에 몰두하고 율곡학설의 계승에 주력한 노론 세력과, 윤증을 중심으로 더욱 개방적인 입장에서 양명학을 수용하거나 마음공부에 주력하거나 무실務實과 실심實心, 실천의 학풍을 강조한 소론 세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