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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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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가치상실의 시대, 신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천착한다!
현대는 점점 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힘든 시대처럼 보인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신의 자리는 점점 작아져간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대의 특징을 옛 신은 가버리고 새로운 신은 아직 오지 않은 ‘이중 결핍의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하이데거는, 현대의 심각성이 신의 부재, 즉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모든 면에서 신이 나타날 자리가 사라졌다는 점, 쉽게 이야기해서 현대가 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에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의 논의에 따르면,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는 존재를 전체로서 그리고 동시에 최고의 존재자로부터 파악하고자 했던 일련의 시도로서, 존재-신-론의 역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현대를 극단적인 존재망각의 시대로 보고, 그 극복을 주장했던 것이다. 어쨌든 서양철학사에서 신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테마로 자리매김되어 왔고, 그 핵심적인 단초가 바로 안셀무스에 의해 이루어진 신존재증명이다. 신존재증명에 대한 안셀무스의 고찰은 단순한 중세신학에 대한 문헌학적 회귀와 고찰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종교적 허무주의와 무관심이 팽배한 이 시대에 신과 신앙의 문제를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셀무스의 주저인 『모놀로기온』과 『프로슬로기온』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믿음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 안셀무스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개발한 학문적 방법과 목표를 통해 수세기 동안 중세철학과 신학을 규정함으로써 ‘스콜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저명한 철학자요 신학자이다. 또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결해 주는 중세철학의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믿음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위해서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신앙진리들을 심도 있게 고찰함으로써 스콜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결실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모놀로기온』과 『프로슬로기온』이다. 특히 그의 저서 『프로슬로기온』의 본래 제목,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은 전체 스콜라철학과 신학을 이끄는 좌우명이 되었다. 『프로슬로기온』에 나오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분석을 통한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격렬한 반대와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경험의 가치를 중시했던 가우닐로 수사,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와 같은 이는 이런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고,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는 물론 데카르트ㆍ스피노자ㆍ라이프니츠ㆍ헤겔 등의 여러 근대 철학자들은 안셀무스의 증명 방식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철학적 신론을 위한 토대로 삼았다. 이 존재론적 증명은 그에 대한 입장 표명에 따라 관련 철학자들의 사상적 경향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서구에서는 이 증명의 성격과 성공 여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활발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중세철학 연구에 중요한 초석 역자 박승찬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한 중세 언어철학의 신학적 수용: 유비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중세철학 전문가로서, 국내에서 중세 철학 전반을 아우르는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하고 있는 소장 철학자이다. 역자는 이번 번역에서 라틴어 원문을 철저하게 분석?검토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안셀무스에 대한 국내 연구가 아직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점을 고려해 번역서의 뒷부분에 이제까지의 연구 동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자세한 해제를 첨부했다. 특히 해제 후반부에 실린 두 논문, ㆍ『프로슬로기온의 증명이 신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철학적인 것인가>와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은 철학적으로 과연 성공했는가>는 신존재증명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담고 있는 연구결과로서 상당히 주목할만하다. 통상적인 해제와 각주의 양을 훨씬 넘는 역자의 상세한 안내는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며, 국내 중세철학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균열된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한다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을 통해 ‘중세=암흑시대’라는 편견에 대한 다른 많은 저서들의 비판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은 이 번역서에 함께 소개된 수사 가우닐로와의 토론과 함께 중세 토론 문화의 높은 수준을 체험하도록 이끌어 주고, 이성의 한계와 사명에 대해 반성해 볼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즉 한편으로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안셀무스의 저작에서 인간 이성만을 절대화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 근대 이후의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잠재적인 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앙에 대한 강한 확신을 토대로 『모놀로기온』에서 일체의 직접적인 성서 인용마저 피했던 안셀무스의 자세는 인간 이성의 비판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수호하려는 일부 종교의 편협한 자세에 경종을 울려줄 것이다. ‘균열된 이성과 신앙 사이의 관계’를 돌이켜 보아야 할 지금의 시기에 이 책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 가능성’을 진지하게 반성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