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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 아주 먼 곳으로의 발걸음
1장. 항해의 눈 - 긴 철학의 여정에 닻을 올리며 1. 고독하고 험난한 여정의 닻 2. 선상에서 만난 각국의 젊은이들 3. 맨발의 남녀들이 많은 납작한 도시 사이공 4. 허허벌판 같은 바다 위, 다시 낙엽처럼 흔들리며 5. 겉모습의 화려함만으로는 알 수 없는 도시, 싱가포르 6. 새로운 열정을 향하여 2장. 혼돈의 눈 - 이국의 낯선 삶이 내 영혼에 닿을 때 1. 향항에서 - 우울한 밑바닥 풍경들 2. 사이공에서 - 오수에 잠긴 듯 피곤의 표정만이 흐르는 거리 3. 싱가포르에서 - 인종의 비빔밥, 십자로의 자유항 4. 콜롬보에서 -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거리 5. 봄베이에서 - 인구 4백만의 인도 서문 6. 포오트사이드에서 - 동서양의 지름길 수에즈 7. 우울한 알제리아 소식 - 초라한 보들레르의 무덤엔 국화꽃만이 8. 「라제파의 교량」을 읽고 - 금년도 노벨문학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 9. 배고픈 시인과 서로 뜯는 작가들 10. 프랑스의 문학상 - 신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다수 11. 아코디언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12. 토론으로 지새는 밤 - 대화의 도시 파리에서 13. 강의실의 백발노인들 14. 몽마르트의 젊은 현장 15. 사치스러운 절망 - 서양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 16. ‘우정의 달’ - 잃어버린 대화를 다시 찾아서 17. 노작가들의 활발한 활동 3장. 진리의 눈 - 인간이여 삶이여 생명이여 1. 질문 -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것이므로…’-핀다로스 2. 돼지 - 내게 죽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 3. 인간 - 사색하는 불쌍한 동물 4장. 시상의 눈 1 - 유럽을 사색하며 1. 라인강의 명상 2.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1 3.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2 4. 로마의 폐허 5. 기차 안에서 멀리 본 사트트리 대성당 6. 자연화 7. 프랑스 남부 시골을 지나면서 8. 비엔나의 스테판 성당 광장 9. 스케치북 10. 류벡크 항구에서 5장. 문명의 눈 - 그리스 터키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1. 그리스 문명의 유혹 2. 이스탄불 - 역사의 그랜드 바자 3. 성소피아 성당과 술탄 마호메트 모스크의 감동 4. 이탄불의 야경 - 미나레의 미학 5.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 - 동서의 교류, 문명의 교량 6. 이오니아 해안 - 서양철학의 요람 7. 에페소스 - 예술작품과 같은 대리석 폐허 8. 파묵칼레의 히에라 폴리스 - 돌의 공동묘지 9. 마케도니아 - 알렉산더 대왕의 출생지 10. 메테오라 - 기암절벽 위의 수도원들 11. 델피 - 신탁과 종교 12.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 이성의 대웅전 13. 페로포네스 반도 - 더 오래된 5천 년 전 문명 14. 크레타 섬 - 그리스 문명의 원산지 15. 문명의 고고학 -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6장. 시상의 눈 2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 러시아 2. 캄보디아 3. 베트남 4. 프랑스 |
PARK, EEE-MOON,朴異汶, 본명:박인희(朴仁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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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라우 군이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평소에는 명랑하기만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던 그가 무심코 묻는 이 말은 평소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깔려 있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정말 나는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버리고 외롭게 떠나왔던가? 솔직히 나는 잘 알 수 없다. 잠재적 어떤 꿈에 끌려가는 것인지. 나는 정말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나는 프랑스로 가는 해상, 여객선 갑판에 서서 눈 위로는 끝없이 퍼진 하늘과 눈 아래로는 끝없이 넓은 바다를 번갈아 권태로이 보면서 대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던지고 있다.
구름이 일다간 어느덧 개이고, 어두운 이 대양 위에 한낱 낙엽처럼 흔들리는 흰 빛 배를 둘러싸고 자욱한 안개가 낀다. 다만 선창에서 비치는 불빛이 배 주위의 물결 위에서 춤추듯 뛸 뿐. 이런 바다의, 아무도 없는 갑판 위에서, 다만 물결이 부딪치는 소리와 귀에 울리는 거센 바람소리와 은은한 배기관의 발동 소리에 싸여 있으면 단번에 물속에 뛰어 들어 영원히 무(無)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순간적으로 느껴진다. 삶의 고민, 정치적 파동, 무슨 역사, 무슨 주의---몇 천 년 동안 사람들이 떠들어오고 있는 소동, 절망, 희망 따위의 언어, 그리고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바다는, 이 넓고 깊고 신비스러운 남양대해가 그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칠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배에 실려 물 위에 떠간다. 콜롬보, 봄베이, 영국 혹은 프랑스 혹은 독일 등으로 향하는 이들도 각자 나름대로 무엇인가 뜻있는 목적을 달성하곤 하겠지. 그러나 이 대양의 무의 가르침 속에 그들의 목적이 있는 것일까? 사람이나, 배나 바다는 그저 흔들리고 움직일 뿐이다. 영원히 그냥 떠돌 뿐이다. 사멸할 때까지, 무로 돌아갈 때까지. ---1장 항해의 눈: 긴 철학의 여정에 닻을 올리며 프랑스의 젊은 작가 M씨를 알게 되었다. 유행가 가사 같은 점이 없지 않지만 재미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끄 프레베르를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그는 이미 육십이 넘어 지금은 시골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간단히 소개한 시인들의 이름을 들면서 어떻게들 지내느냐고 물었다. 시인들은 물론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품만을 가지고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가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다 한다. 상당히 이름난 P. 엠마뉴엘만 해도 지금 한 문화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사르트르 같은 사람은 어떤가요?” 하고 나는 물었다. 그가 상당한 부자가 되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지요. 그런 예외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조금 이름이 나면 저널리즘의 농락에 상품화되기 쉽습니다. 로브 그리예 같은 작가도 그렇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마리엔바드의 작년>이란 영화가 상영되어 한참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작품의 대화는 로브 그리예가 쓴 것이라 한다. 역시 어딘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이러한 작가나 시인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니까 같은 자리에서 만나지 말라고 알려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서로 접촉을 하지 않고 몇몇 동료들끼리만 어울리며 서로가 멸시하고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만나면 거북하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금 ‘역시 어디나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르본느 대학 강좌라고 다 재미있고 훌륭하진 않다. 그 방법에 있어 비판할 여지가 많다. 좁은 나의 소견에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강의에도 백발노인, 백발 할머니들이 기를 쓰고 와서 열심히 노트하느라고 야단이다. 시험을 치지 않는다 치고 그저 교양으로 듣는다 치더라도 내일 모레 죽을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알려고 하는지 의심스럽다. 이제와 어떤 시인을 깊이 이해하고 어떤 작가를 깊이 감상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 하겠는가? 나는 속으로 되풀이한다.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그러나 나는 한편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그들 앞에 머리가 숙여진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이곳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오십 가량 된 사람이면 대개 숨이 가빠 보인다. 땀을 많이 흘리고 허덕거리는 수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허덕거리는 칠팔십 가량 돼 보이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국립도서관 같은 곳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자리를 얻어가지고 종일토록 책을 눈에 바싹대고 열심히 베끼고 외고 읽으며 공부하고 연구한다. 오십이 돼서 손자를 보고 아직도 멀쩡한 건강체인데도 곰방대나 물고 사랑방으로 몰려다니며 술잔이나 놓고 ‘에헴’ 하진 않는다. 그들은 생활에 진지하고 인생을 힘껏 사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속에서 젊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2장 혼돈의 눈: 이국의 낯선 삶이 내 영혼에 닿을 때 라인강 위 산 뒤에 해는 다시 저물고 지금 들리는 것은 강물에 녹는 함박눈의 자욱한 고요뿐 아무도 대답하는 이 없다 누구도 밝혀 주지 않는다 천년이 넘은 한 도시의 대성당 큰 종소리가 울린다 나는 외국인 나는 지나가는 사람 나는 낯선 행인 함박눈 맞으며 혼자 걷는다 짐배들이 떠가는 라인강 강변 나도 지나가는 바람 나도 스쳐가는 그림자 ---4장 시상의 눈 1: 유럽을 사색하며 수도원들은 도저히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듯한 높은 바위기둥, 그 접근이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바위 꼭대기나 그러한 바위의 벽에 매달리듯 붙어 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먼저 바위를 쇠망치로 파서 하나하나씩 계단을 만들어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다음 단계에서는 처음에 올라간 수도승이 내린 밧줄을 타고 올라 갔다 한다. 그렇게 올라간 수도승들은 그물이 달린 밧줄을 내려 건축재료와 생활기구를 밑에서부터 끌어올려서 수도원을 조금씩 지어가면서 수도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수도원에의 이런 방식의 접근이 1923년까지 계속되었다 하니 수도원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난스러운 금욕적 생활이었는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수도승들은 일단 수도원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기도, 독서, 성화 그리기, 수공예품이나 일상적 잡일을 하면서 살다가 죽어서도 그곳에 남아야 한다고 하니, 초월의 세계에 가고자 하는 영혼의 수행이라고는 하지만, 그 수행이 얼마나 가혹한 외로움과 고행을 의미하는 것인가.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에 와서 수행하다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을 그 많은 수도승들, 또 모두가 물질적 풍요를 즐기고 육체적 향락을 추구하며, 속세의 행복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첨단 기술문명의 오늘날에도 아직도 이곳을 찾아와 수도승으로서 저 험악한 바위 꼭대기에서의 고행을 스스로 선택한 그리스정교의 수도승들은 이 세상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니 인생을 어떻게 보았기에 그것을 모두 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마침 갑자기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서 깊은 골짜기 저쪽에 있는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는 분명했을 숭고한 세계, 초월의 영역, 참된 삶에 대한 꿈,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순수한 희구에 비추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 삶의 속됨이 새삼 의식되고 부끄러워진다. ---5장 문명의 눈: 그리스 터키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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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서랍 속에서 찾아낸 한 철학자의 생생한 절규,
그리고 노년의 안식으로 이어지는 지적 순례. 서랍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미농지와 원고 뭉치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서른한 살의 젊은 철학자 박이문은 이대 전임강사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다시 파리 유학의 길에 오른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님을 두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그는 다시 저 낯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지적 여행을 결심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그에게는 오로지 진리를 향한 갈망과 세상을 향한 절규만이 있을 뿐이다. 바로 그때 한 달간 여행하던 배 위에서 미농지에 적은 일기가 47년 만에 서랍 속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이성과 철학의 중심지, 파리에서의 외침 세상을 향한 그의 이런 절규는 다시 ‘진리’에 대한 절규로 이어진다. 그는 앙드레 지드가 창간한 순수 문예지에 ‘돼지 목소리를 듣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진리를 향한 절규를 토해낸다. 행복을 경멸하고 그의 탄생을 굴욕이라고 얘기한다. 세상에 저항하고 운명에 저항한다. 그에게 인간은 혐오스러운 족속이고 가련한 생명이며 사색하는 불쌍한 동물이다. 그는 분단국인 우리의 운명을 저주하고 미국을 저주하고 공산주의를 저주한다. 그에게 죽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굴욕이다. 이 원고는 당시 프랑스에서 만났던 장 그르니에에게 주었던 원고다. 『섬』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한국에서 온 철학자 박이문의 원고를 훌륭하고 감동적이라고 칭찬한 뒤에 사르트르에 대한 비판 부문만 빼고 자신이 운영하던 잡지에 게재한다. 이 원고 역시 30년이 지나서 다시 재발굴되었다. 당시에 불어로 써졌던 원고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이번 책에 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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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세부 내용
이 책의 제1장 ‘항해의 눈’은 바로 그가 프랑스로 향하는 여객선 캄보쥬 호에서 쓴 미농지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항해를 하는 동안 ‘무엇을 하기 위해 이토록 고독하고 험난한 길을 택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리고 고국에 두고 온 어머니와 어린 조카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 선상에서 만난 각국의 젊은이들 속에서 분단된 조국의 자식으로서 느껴야 하는 비애, 하염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위에서의 갈증과 고독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제2장 ‘혼돈의 눈’은 그가 파리에서 가난한 유학생활을 하면서 경향신문 통신으로 보낸 글들을 묶은 것이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경향신문에 게재된 이 글들은 현재 마이크로필사본으로 국내 몇몇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 책에 수록된 글들은 그 자료 찾아 복원한 것들이다. 그는 파리에서 하나의 객이요 이방인이다. 파리에는 육중한 석조건물과 흙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보도, 하다못해 공원의 나무까지도 미끈하게 단발을 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건물의 밀림 속에서 인간에 대한 후퇴의 종속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 지하철 속에서 아코디언 소리나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면 흐뭇해진다. 눈이 먼 악사, 다리가 없는 악사 앞에 던져진 잔돈 앞에서 그들의 그늘도 느끼지만 더불어 흐뭇함도 느낀다. 사무적인 일에 빠져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그의 눈에는 오히려 더 처량해 보인다. ‘명백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파리의 밤은 토론의 밤이다. 하루저녁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토론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정치, 경제, 문화, 학술은 물론이고 괴상한 문제를 가지고도 으레 논쟁이 벌어진다. ‘대학의 강의보다 이름 없는 토론이 더 유익한’ 도시 파리에서 그는 소르본느의 강의실보다 토론회의 광고를 뒤적거리는 일에 더 바쁘고 즐겁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백발의 노인들이 아침부터 도서관 앞에 줄을 서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강의를 듣는다. 그는 그 백발노인들의 열정 앞에서 한편 부끄러워지고 한편 감복한다. 이런 파리의 소소한 풍경들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배경으로 재미있게 잘 녹아난다. 제3장 ‘진리의 눈’은 앙드레 지드가 창간한 프랑스 문학 월간지 「누벨 르뷰 프랑세즈」1976년 6월호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이 ‘지적 여정의 노상에서’라는 제목으로 1997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불어 논문집에 재수록되었는데 그것을 김주경 박사가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아무 것도 아닌 삶, 그 덧없는 과정에서 인간은 무엇 때문에 행복해지려고 애를 쓰는가.’ 이 글은 거기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에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를 깨운 것, 그를 밝혀준 것은 다름 아닌 서구였다. 그가 처음으로 찾아간 프랑스, 그곳에서의 직접적인 접촉에 그는 감탄하게 된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그는 질서와 정확성과 정신의 명료함에 완전히 매료된다.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서양의 욕구, 이것은 그에게 하나의 계시이고 매혹이고 빛이다. 그에게 죽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굴욕이다. 그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잔인성과 어리석음을 보았고 권력의 불의를 보았으며 운명의 잔혹함을 보았다. 그는 이런 전쟁, 죽음, 잔혹함, 폭력 등에 분노한다. 그는 한국을 짓밟은 ‘돼지’들의 부당한 부조리가 어서 끝나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정원을 가꾸자고 말한다. 제4장 ‘시상의 눈 1’은 그가 1985년부터 1986년까지 독일 마인스 대학 초빙교수로 있을 때 유럽을 기행하며 쓴 시들을 묶은 것이다. 유럽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라인강을 바라보며 그 위에 수많은 기사들이 흘렸던 피의 의미와, 죽이고 죽은 시체들의 의미를, 폐허된 성들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그 속에 지나가는 바람, 지나가는 행인, 지나가는 그림자로서 그의 존재를 성찰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가스에 익은 살들과, 찢어진 얼굴들, 수많은 유태인들을 태운 연기가 타올랐던 하늘을 바라보며 인간됨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세계를 정복하고 영원을 믿었던 로마의 폐허 앞에서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사유한다. 제5장 ‘문명의 눈’은 2002년 그리스와 터키를 기행하며 쓴 글들이다. 그리스를 빼놓고는 철학은 물론 서양문학과 서양문명을 언급할 수 없다. 그는 그리스와 터키의 수많은 신전과 조각과 그림들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도시 전체가 문명의 귀중한 박물관이다. 이스탄불의 첨탑과 미나레의 미학 속에서 그는 하늘을 향한 초월의 세계를 보고 영혼의 기도를 듣는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기암절벽 위에 붙어 있는 메테오라의 수도원, 그곳에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어서도 거기 남아야 한다. 그는 그 수도원을 바라보며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곳에서 수행하다 세상을 떠난 그 많은 수도승들의 숭고한 삶을 떠올리며 자신의 속된 삶을 부끄러워한다. 제6장 ‘시상의 눈 2’는 그가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러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프랑스 등을 여행하며 쓴 시들이다. 시베리아의 샤먼촌에서 그 부족들이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전통적 의식을 집행하는 걸 구경하며 한 부족, 한 민족의 고독하고 아픈 운명을 함께 느낀다. 앙코르와트 궁전 앞에서 하늘에 우뚝 솟은 그 무심한 장엄함에 뜨거운 햇살같이 답답한 분노를 느낀다. 젊은 날 자신이 거닐었던 소르본느 대학가를 다시 찾아 젊은 시절 그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스승들을 그리워하며 파리를 떠난다. 이 책은 한 철학자의 지적 여정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절규’에서 ‘순례’로 이르는 한 철학자의 지적 여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색의 깊이에 빠지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