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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화집을 펴내며
The Colors of Glory The Colors of Life The Colors of Harmony The Colors of Salvation The Colors of Logos The Colors of Angel 스테인드글라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Index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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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찾아서, 조광호 신부의 유리화와 상징체계
조광호 신부가 ‘유리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부산 남천동 성당의 천정 유리화를 제작하면서였다. 80년대 초 독일 뉘렌베르크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이어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한 성과의 첫 결실이었다. 그 후 그는 회화 작품전을 가질 때마다 타블로와 유리화를 같이 전시하는 등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새 영역의 개척자적 행보를 전개하였다. 그의 일관된 자세는 회화와 유리화를 평행선상에서 접근하고자 한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는 예술적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고 생각하고 현재 독일 등지에서 생산되는 수천 여 종의 색유리와 유약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표현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그는 ‘훌륭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회화로서도 성공작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회화의 특성을 살린 ‘유리화’를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그는 부산 남천동 성당 이외에도, 인천 남촌 성당, 대전 옥계동 성당, 서울 신정동 성당, 제주 동광동 성당 그리고 숙명여대의 박물관 로비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는 공공시설물은 물론, 근년에는 왕성한 개인전을 통해서 병풍식 유리화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들을 포괄하는 양식적 특징은 거반 그의 회화 연구의 소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유리의 투명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우연의 효과를 자아내는 퓨징 기법은 그의 회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블루 로고스」의 명제로 회화와 유리화를 동시에 제작 전시하고 있지만, 그의 근본 발상은 빛 중의 빛인 ‘블루’에 대한 상징 해석과 하느님의 말씀으로서의 ‘로고스’를 일체화하려는 데 있다. 그의 상징 해석은 전통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과 색의 전승에 뜻을 둔 것이라기보다는, 현대 스테인드글라스의 특징적 경향인 작가 자신의 개인성을 강조하는 방법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자신의 마음과 시선으로 하느님의 신성한 빛을 해석하려는 데 뜻이 있다. 일찍이 헤겔이 ‘빛이야 말로 인간 내면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요소라고’ 했듯이, 초월적이고 신적인 세계의 상징적 요소로서 최고의 등가물은 ‘빛’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업 노트) 그에게 있어서, 빛은 고딕 미학의 세 개의 강령인 위대함(magnitudo), 영광(claritas), ‘조화(proportio)’의 현전이다. 그리고 이들을 종합한 상징이 ‘블루 로고스’이다. 블루와 로고스 중에서 전자는 진리의 감성적 현전(現前, praesentia)으로서의 빛이다. 그의 유리화는 블루를 빌려 로고스를 현전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 빛의 세계는 ‘원’으로 구조화되고 ‘블루’는 ‘골드’와 한쌍이 되어 원에 내재한다. 시초에, ‘원’은 빛의 세계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원이 없이는 블루의 현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골드의 현전 또한 불가능해진다. 원은 빛에 앞서 존재하는 로고스의 형상적 현전이다. 로고스의 현전으로서의 원이 빛에 내재함으로써 블루와 골드가 분화되었다. 차례로, 블루와 골드에 대해 대각선 지점에서 그린과 레드퍼플이 분화하였다. 말하자면, 원의 로고스로부터 대각선이 유출되고 대각선의 4개의 지점을 잇는 지점에서 정사각형이 유출되었다. 그린과 레드퍼플의 분화는 이에 수반해서 이루어졌다. 조 신부는 자신의 상징체계를 처음으로 남천동 성당의 천정 유리화에 적용함으로써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의 천정 유리화에 등장시킨 상징들은 그후 그의 회화「블루 로고스」에서 발전되고 심화되었으며 유리화 또한 풍성해졌다. 주요 상징으로서의 ‘원’은 그가 언급했듯이 ‘땅에 비친 하늘의 모습이자, 우리에게 오랜 세월 하늘로 상징되어온 하느님의 영광이며, 무엇으로도 끝내 다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의 신비 그 자체’이다. 그에게 있어서 ‘원’의 상징은 ‘로고스’의 등가물이다. 하느님의 상징은 이처럼 ‘푸른 빛’이자 ‘원’으로, 위대함과 영광스러움과 조화를 함의하는 여러 이미지들로 현전된다. 더 나아가 현전의 여러 방식들과 상징들을 연관시킴으로써, 현존재의 역사에서 읽을 수 있는 하느님의 구세사(救世史)의 여러 품목들을 형상화한다.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는 천지창조의 대역사에서 시작해서 성령 강림과 묵시적 징표들에 이르는 여러 가지 아이콘들, 예컨대 크고 작은 원형 스트로크, 디지털시계, 화살표, 십자가, 비둘기, 양, 물고기를 빌려 상징화(畵)의 양식을 창출한다. 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와 성모자는 불변의 화두이다. 그의 유리화에서 우리는 중세 아이콘화의 현대적 재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는 순교자의 삶과 고난의 장면들이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짙푸른 빛깔과 찬연한 금빛, 진홍색을 상기시키는 레드퍼플과 그린으로 표상되고, 여기에 검정의 굵고 강인한 필선의 동세(動勢)가 이들을 구획 짓고 제한한다. 그가 그리는 장면들은 요컨대 크리스천의 상징계를 색과 유리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찬란한 유리화의 앙상블은 그의 상징계의 모색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앙상블의 화두는 ‘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께 영광’, ‘주를 찬미하여라’, ‘나 지금, 여기에서’와 같은 경구들이다. 타블로에서와는 달리, 유리라는 매체는 각종 유약과 합성함으로써 영롱한 빛과 색을 발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유리화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신성한 담론을 감성적으로 현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의 유리화의 근저를 이루는 배경의 도상들은 대개가 비구상적 형상들이다. 우렁찬 필선의 힘에 걸맞은 형상으로는 비구상이 보다 적절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유리그림은 이를 배경으로 그리스도와 성모자와 야훼 하느님, 12지파와 12사도를 시사하는 아이콘이 등장한다. 이와 연계해서 음악성을 동반한 강열한 색면들이 강열한 필선으로 분절되고 형과 면을 달리하는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한편, 근자에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그의 유리화는 물론 유리화에 얽힌 교회사를 염두에 둘 때 비탄에 가깝다. “오늘 우리는 시골 다방에서부터 지하철 천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싸구려 상혼(商魂)이 깃든, 그래서 우리의 뇌리에 키치(Kitsch)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본다. 이들을 위대함, 영광, 조화의 세계로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신의 영광과 인간 내면의 세계가 함께하는 형상으로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까? 일찍이 13세기 고딕 전성기의 무명 장인들에 의해 교회미술로 시작한 이래, 르네상스와 20세기 ‘아르누보’를 거쳐 마티스, 루오에 이르고, 또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리의 가능성과 존귀함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의 환경은 천박한 키치로 채워져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