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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책머리에 : 아스라한 길, 그 기억을 위하여
질마재 신화(서정주) - 신화가 현실과 함께 사는 시의 고향 임꺽정(홍명희) - 흔적과 전설 사이에 남아 있는 평등의 외침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 풍광에 가려진 인고의 세월 광장(최인훈) - 이념이 몸부림치는 이명준의 바다 관촌수필(이문구) - 시간 속으로 스러지는 고향의 잔영들 신궁(천승세) - 한을 실은 화살처럼, 포구에는 빗줄기가 꽂히고 금강(신동엽) - 순결과 분노를 끌어안은 강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이어령) - 우주의 공간질서와 함께하는 나뭇잎 하나 추억에서(박재삼) - 죽음과 신생이 함께 반짝이는 저 물비늘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 시각이 정지된 양, 아직도 그대로인 ‘난장이들의 삶’ 남한강(신경림) - 천험(天險)의 여울 따라 쓸려가는 풀뿌리들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 황혼 골목을 적시는 애달픈 호객 소리 태백산맥(조정래) - 밥과 이념이 뒤엉킨 빛바랜 상흔(傷痕) 절, 그 언저리(김지하) - 시대의 바다를 헤엄쳐 온 오디세우스 흑산도(전광용) -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다져진 성산 붉은 강(강은교) - 고난의 강물 위에 놓인 그리움의 다리 산(서정인) - 태초의 신생처럼 빛나는 먼 섬 안개 시정거리(한수산) - 추억마저 마멸시킨 안개의 덫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 뱃전에서 들려오는 환생의 물소리 배소의 꽃(송기원) - 미움을 지운, 대립의 해방공간 짐승의 시간(김원우) - 다친 짐승의 상처핥기 식 자기고백 봄날(임철우) - 아직도 절망이 돋아나는 5월, 광주 이 시대의 아벨(고정희) - 시대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섬진강(김용택) - 사람의 기쁨과 고난, 그 삶의 무게 노동의 새벽(박노해) - 모두에게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우리의 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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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킬로미터를 달려온 섬진강은 악양면에 이르러 우람한 지리산의 맥을 끊고, 그 자리에 비옥한 800여 정보의 넓은 들판을 펼쳐 놓는다.
여기가 ‘최 참판댁’의 4대에 걸친 이야기가 시작되는 평사리다. 3면이 지리산 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있는 가랑잎 모양의 이 들판을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상 가장 방대하고 중후한 『토지』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 『토지』는 4세대에 걸친 최 참판댁의 가족사와 함께 한 마을의 집단적 운명이 평사리에서 북간도, 진주, 서울, 중국 대륙 등으로 광역 이동되며 조명되는 총괄적인 소설이다. 작가가 떠올리려는 삶의 다면성에는 양반과 상민의 관점이 교차하며 불교, 동학, 무속, 유가, 기독교적 세계인식과 윤리의식이 치밀하고도 뜨겁게 얽혀져 있다. 그 자리에 서 본다. 들판이 훤히 보이고 그 너머로 섬진강이 휘어져 돌아가고 있다. 옆은 대숲이다. 바람이 스치자 대숲은 『토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듯 신비스러운 소리로 응답한다. --- 박경리의 『토지』의 고향을 찾은 박래부의 글 「악양 들녘 감아도는 우리 시대의 전설」중에서 국제 금융자본의 지배 아래서 저무는 세기의 황혼에, 평등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삶을 쇄신하는 견인력으로 작동되어 왔다는 역사인식은 노을에 젖어 시장하고, 그 노을 속에서 『태백산맥』을 읽는 일은 쓰라리다. 지금, 평등이라는 말은 너무 멀어서 아득하다. 그러지 말고, 그냥 밥 세끼라고 해두자. 야산대장 염상진을 따라서 산으로 들어가서 총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붙잡혀서 매 맞아 죽은 수많은 소작농 출신 전사들의 마음속에서, 이념화한 평등의 신기루가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급의 이름으로 삶을 추상화하지 않았다. … 지주는 다만 그 아비가 지주인 이유만으로 목측이 소진하는 지평선까지의 들판을 소유하는 지주였으면, 소작농은 그 아버지가 소작농인 이유로 소작농이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그 아비의 자식일 수밖에 없었다. … 벌교 역전 어시장에는 새벽 5시부터 광주리 생선장수 아줌마들이 장사진을 치며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물고기들은 경건해 보였다. ---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배경인 벌교를 찾은 김훈의 글 「밥과 이념이 뒤엉킨 빛바랜 상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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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했던 80년대를 견디게 해준
문학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마약’ 한국 문학 50선, 김훈 박래부가 발로 쓴 문학에 대한 헌사 2007년 한국일보가 뽑은 ‘우리 시대의 명저 50’에 선정된 도서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 김훈 ? 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 ? 둘』의 개정판이 나왔다. 새로운 편집체제를 갖추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작품 설명에 일일이 표지 사진을 실어 『김훈 ? 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 ? 둘 ―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로 개정됐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문사 김훈(소설가)과 박래부(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가 한국의 대표적 소설과 시들을 골라, 1986년부터 2004년까지 근 20년 동안 그 문학의 현장을 답사하고 작품을 비평한 글을 엮은 것으로,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엄격히 고려하여 지은이들이 50명의 수록작가 선정을 새로 한 개정판이다. 시대상황 때문에 당시에는 다루지 못했던 월북 문인 홍명희와 반체제 시인 김지하,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를 추가한 것도 특징이다. 벽초의 소설 『임꺽정』, 김지하의 『절, 그 언저리』,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그것이다. 수록작품을 바꾼 것도 있다. 소설가 조정래의 경우, 1997년 판에는 『불놀이』가 들어가 있으나, 이번에 나온 책에서는 그의 대표작 『태백산맥』으로 대체됐다. 사진 역시 노련한 사진작가 김연수(문화일보 사진부장)가 전국을 돌며 다시 찍은 작품을 실었다. 『문학기행』은 언론 문학비평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획기적인 기획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되던 당시부터 주옥같은 명문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은 현장 비평서다. 그들의 『문학기행』은 그 자체로 문학이었으며, 이로써 한국문학은 문학기행문이라는 새로운 문학의 분야를 갖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문학기행을 읽는 즐거움」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고백했다. “오늘 한국일보 일요판에 「명작의 무대」란 이름의 문학기행 첫 회분으로 박경리의 『토지』가 실려 있다. 그 작품의 무대가 된 평사리를 작가가 직접 답사한 바 없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학에 있어서의 배경이란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가 아닐 것인가.” “두 문학기자의 글은 시인과 작가에게는 기분 좋은 자극을 주었고, 게으르고 눈 어두운 문학평론가에게는 기분 나쁜 자극을 주었으며, 독자들에게는 고급기사 읽기의 행복을 전해 주었다. 『문학기행』은 좋은 의미에서 문학의 대중화를 이룩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시인 이문재의 서평 중에서) “『문학기행』은 저 엄혹한 80년대를 말의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현실 앞에 절망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아름다움은 결국 존재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한 편의 서사시였다.”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철화(중앙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은 나에게는 그 기행을 쫓아감으로써 악몽과도 같은 청춘을 견디게 해주었던 아름다운 마약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마약에 때로 취한다. 그리고 취할 수 있음에 행복해 한다. 『문학기행』의 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 아름다움과 ‘관계의 행복’을 선사하는, 모두의 마약이 되기를 바란다.” 왜 다시 『문학기행』인가 박철화 교수는 지금도 그 때의 신문을 ‘청춘의 기록사진첩’처럼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절판된 책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시대상황의 변천에 맞게 작가와 글을 보태고 덜어내는 성가신 작업을 통해 7년 만에 새로운 버전을 선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김훈은 이제 『칼의 노래』 등으로 최고의 작가들과 반열을 함께 하고 있으며, 박래부 실장 또한 『한국의 명화』『화가 손상기 평전』 등 문학과 그림을 넘나드는 책을 저술한 중진 언론인이지만, 1987년과 1997년에 이어 세 번씩 판을 갈아가며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문학기행』만큼 그들의 글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없을 것이다. 젊은 날 두 지은이가 공들여 쓴 『문학기행』이 시와 소설이 생성된 우리 땅에 대한 공간답사라면, 그야말로 더욱 막막해진 현장을 찾아 “지금, 여기”의 모습을 담은 사진취재는 하나의 시간여행이었다. 20세기 초, 중반의 이야기를 수십 년 지난 뒤 작품화한 시와 소설을, 대략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기간의 시각으로 현장을 답사한 기사에 오늘의 시간을 짝지우는 것은 일종의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이나, 폭력이 으레 그렇듯이 그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볼만하다. IMF 당시보다도 여러모로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하는 이즈음, 정치적인 고난의 세월을 글쓰기와 글 읽기로 버텼던 1980년대 중반을 회상하며 6.25 즈음의 문학공간을 탐사하는 것은 독서의 재미를 넘어,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20년 김훈 문학의 원형질, 그리고 30년 언론인 박래부 기자의 시각을 좇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선대들이 이야기가 삶의 현장에, 그리고 당대의 문인들의 글 속에 알알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침내 만들어냈던 이 나라의 문학지도 ― 그것은 미숙한 미완성의 지도지만, 우리의 치열했던 작업에 대한 사적인 그리움을 뛰어넘는 지도다. 그 지도를 들고 명작의 무대를 찾아가는 나그네가 되자고, 나는 다시 이 책의 독자들에게 바람을 넣고 싶다.” 김훈, 박래부 기자의 글을 매만졌던 장명수 문화부장(현 한국일보 고문)의 추천의 말이 유혹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