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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우리는 왜 퇴행하고 있는가
이마 201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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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비판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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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5

1장 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 - 우치다 다쓰루 13
지성적/반지성적을 나누는 것 / 지성이란 집단적인 현상이다 / 이상주의가 최악의 반지성주의를 낳을 때 / 음모 사관은 왜 되풀이하여 나타나는가 / 인류사상 최악의 반지성주의 사례 / 선구적 직감에는 시간이 관여한다 / 사회적 또는 공공적인 것의 조건 / 반지성주의를 결정짓는 ‘무시간성’ / 미래가 없는 것을 대가로 삼아 / ‘숨겨진 진실’의 발견 / 반지성주의자의 진정한 적 / 선동가는 반복을 꺼리지 않는다 / 정치에 시장은 없다 /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 반지성주의의 본질

2장 반지성주의, 그 세계적 문맥과 일본적 특징 - 시라이 사토시 55
머리말 / 1. 반지성주의의 정의와 일반적 특징 / 2. 현대 반지성주의의 문맥 I / 3. 현대 반지성주의의 문맥 II / 4. 반지성주의의 일본적 특징 / 5. 부인(否認) 선진국 일본

3장 ‘반지성주의’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어쩐지 ‘반지성주의’ 같아서 꺼림칙했기 때문에 ‘자, 그럼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를 생각하고 써 본 글 - 다카하시 겐이치로 103
빠름 / 더욱 빠름, 그리고 ‘뒤틀림’을 바로잡는 일에 대해 / 더더욱 빠름, 여자처럼

4장 어떤 무기보다 파괴적인 것 - 아카사카 마리 121
아는 척하고 싶지는 않다 / 헌법의 구성을 들여다보는 일은 나라를 들여다보는 일 / 밀착인가 아니면 고립인가 / 메이지 시대의 비밀 패러독스 / 우선 꼭대기가 면책을 받는 시스템 / ‘친밀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의 보호를 받고 / 쿠데타로 이룩한 정부이기 때문에 / 말로 표현한 적 없는 살기 힘듦

5장 전후 70년의 자학과 자만 - 히라카와 가쓰미 139
전쟁을 모르는 어른들 /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 대중 선동의 강력한 도구로서 / 지성적이었던 전후 독일의 재상 / 피해자라는 위치를 선택한 일본인 / 어른 정치가의 부재 / 우리가 똑바로 보아야 할 것

6장 지금 일본의 계급적 분열에 대하여 - 오다지마 다카시 161
교양과는 인연이 없는 곳에서 / ‘지성’을 ‘도구’로 파악한 사람들 / 속류 ‘양키론’을 배척한다 / ‘마일드 양키’라는 말의 모순 / ‘데키스기 군’과 ‘양키’의 가치관 차이 / ‘전후 민주주의’라는 우등생 사상 / 진행하는 ‘분열’ 스토리 / 생애를 결정짓는 분열은 15세 때 / 진짜 계급이 형성되기 전에

7장 신체를 통한 직감지 - 나코시 야스후미×우치다 다쓰루 대담 183
태초에 결여감이 있을지니 / 지성을 추동하는 근원은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라고? / 갈망 상태에 있으면 생명력은 향상한다 / 오래된 가요가 갖는 문화 공간 / ‘처세 의리’의 신체화 / 지성을 지성답게 만드는 것 / 지성은 공동체적으로 움직이는 것 / 신체를 통한 직감지 / 문학의 본질은 죽은 자와 공감하는 체험 / 시간과 공간을 접는다
8장 체험적 반지성주의론 - 소다 가즈히로 220
지성의 발동에 지름길은 없다 /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대본 지상주의 / 효율과 예정조화 / ‘안전책’이 다큐멘터리를 죽인다 / 관찰영화의 ‘십계’ / 일본 사회에 둥지를 튼 대본 지상주의=반지성주의 / 원자력발전 사고와 반지성주의 / 반지성주의의 질병 이득 / 우리의 반지성주의

9장 과학의 진보에 따른 반지성주의 - 나카노 도오루 236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실험 / 낚시에서 저인망 어업으로 / ‘붉은 여왕’은 계속 뛸 수밖에 없다 / 과학의 종언? / 연구와 대학의 ‘자본주의화’ / 생명과학만의 문제일까 / 저항은 가능할까 / 과학자의 책임

10장 ‘마찰’의 의미-지성적이라는 것에 대하여 - 와시다 기요카즈 258
분열의 과잉 / ‘지성적’이라는 의미 / 다문화성이라는 심연

저자 소개 1

우치다 타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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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suru Uchida,うちだ たつる,內田 樹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는 일본의 철학 연구가, 윤리학자, 무도가.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발견해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공부했다. 도쿄도립대를 거쳐 고베여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2011년 퇴직하고 명예교수가 되었고 현재는 교토 세이카대학의 객원교수로 있다. 글을 통해 70년대 학생운동 참가자들이나 좌익 진영의 허위의식을 비판해 스스로를 ‘업계 내에서 신보수주의자로 분류되는 것 같다’고 하지만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아베 내각을 ‘독재’라는 강한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고, 공산당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르크스의 가르침의 가장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는 일본의 철학 연구가, 윤리학자, 무도가.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발견해 평생의 스승으로 삼고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공부했다. 도쿄도립대를 거쳐 고베여학원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2011년 퇴직하고 명예교수가 되었고 현재는 교토 세이카대학의 객원교수로 있다. 글을 통해 70년대 학생운동 참가자들이나 좌익 진영의 허위의식을 비판해 스스로를 ‘업계 내에서 신보수주의자로 분류되는 것 같다’고 하지만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아베 내각을 ‘독재’라는 강한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고, 공산당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르크스의 가르침의 가장 본질적인 대목, 즉 사물의 근저에 있는 것을 파악한다는 의미에서 래디컬한 정당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하는 등 진영의 논리를 넘어선 리버럴한 윤리학자의 면모가 강하다.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현재까지 공저와 번역을 포함해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2011년 그간의 저술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놀랍고, 재미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을 모토로 삼은 이타미 주조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망설임의 윤리학』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어른이 된다는 것』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사가판 유대문화론』(고바야시 히데오상 수상) 『하류 지향』 등이 있고 정신적 스승인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곤란한 자유』 『초월, 외상, 신곡-존재론을 넘어서』 『폭력과 영성』 『모리스 블랑쇼』 등을 번역했다.

우치다 타츠루의 다른 상품

역자 : 김경원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 객원연구원, 인하대학교 전임연구원, 한양대학교 비교역사연구소 전임연구원을 지냈다.『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공저)를 썼고, 우치다 다쓰루의『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일본변경론』,『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를 옮겼다. 그 외 옮긴 책으로『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세계화의 원근법』,『가난뱅이의 역습』,『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06g | 148*215*20mm
ISBN13
9791186940112

책 속으로

지성은 개인의 속성이 아니다. 지성은 집단적으로만 발동한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 지성적인지 아닌지는 그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한 지식의 양이나 지능 지수나 연산 능력에 따라 판별할 수 없다.… 개인적인 지적 능력은 어지간히 높은 듯하지만, 그 사람이 있음으로써 주위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의심의 눈초리가 번뜩이며, 노동 의욕이 저하하고, 아무도 창의적인 제안을 하지 않게 되는 일이 현실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아니, 지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 사람이 활발하게 본인의 ‘지력(知力)’을 발휘하는 탓에 그가 소속한 집단 전체의 지적 능력이 내려갈 때, 나는 그런 사람을 ‘반지성적’이라고 간주한다.
--- p.17~18

반지성주의자들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여기, 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반지성주의자들이 예외 없이 과잉 논쟁적인 까닭은 그들이 ‘지금, 여기, 눈앞에 있는 상대’를 지식과 정보와 추론의 선명함으로 ‘압도하는 일’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면, 조금만 시간을 들여 알아보면 간단하게 들켜 버릴 거짓말, 근거가 빈약한 데이터, 일리가 있는 해석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례를 거리낌 없이 구사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타자와 ‘협동’해야 할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최종 소비자(end-user)’라고 부르고 있다. 자신의 지적 능력을 향유하는 것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자신의 노력이 가져다주는 성과는 자기가 다 써 버리겠다고, 누구에게도 그것을 나누어 주지 않고 증여하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최종 소비자’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 p.34~35

대중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반지성주의의 심정이 사회의 잠재적인 주조 저음으로 깔린다. 사정이 이러한 이상, 정치권력은 우민화 정책을 실행하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정을 권력의 자원으로 끌어들인다. 동시에 그것이 압도적으로 패권을 쥐고 흔들지 않도록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대중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그 과정이 진화하면 진화할수록 반지성주의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중대한 난제를 껴안고 있다.
반지성주의가 권력층의 통제를 벗어나 폭발적으로 분출할 때, 매카시즘이나 문화대혁명, 폴포트의 지식인 탄압 같은 파국적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아까 이소자키 요스케의 예에 나타나듯, 현대 일본의 반지성주의는 권력자가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이용하는 우민화 정책의 차원을 뛰어넘어 반지성주의적 에토스가 권력층 자체까지 침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 p.61~62

데키나 오사무가 착안한 ‘B층’이라는 개념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해산과 총선거 때 나왔다. 즉 자민당으로부터 선거 전략을 의뢰받은 광고 회사(스리드사S.L.I.E.D Co. Ltd.)가 작성한 리포트에 등장했다가 그것이 외부로 유출되는 바람에 세상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용어다. 국민의 계층을 A~D층으로 분류한 그 리포트에서는 B층을 ‘구조 개혁에 긍정적이고 IQ가 낮은 층’,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캐릭터를 지지하는 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데키나 오사무는 이를 정리하여 B층이란 “매스컴 보도에 휘둘리기 쉽고 ‘비교적’ IQ가 낮은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린다. 매스컴에서 글로벌화나 규제 완화-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를 좋은 것이라고 선전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찬성!’을 외치는 어리석고 지성을 결여한 사람들이다. 고이즈미 자민당은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면밀한 전략을 세움으로써 총선거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덧붙여 스리드사의 리포트는 B층 이외의 계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A층: 구조 개혁에 긍정적이고 IQ가 높다. C층: 구조 개혁에 부정적이고 IQ가 높다. D층: 구조 개혁에 부정적이고 IQ가 낮다.… 요컨대 이 분류는 중산층 사회가 붕괴한 이후 등장한 새로운 계급 사회의 양상을 그 나름대로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p.64~66

반지성주의를 둘러싼 논의는 지성 같은 것을 축으로 대립한다기보다는 ‘분열’의 서사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현재 이 나라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간을 두 계층으로 분열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주제는 ‘분열’ 자체에 있다.
집단을 둘로 단절시키는 원흉으로 ‘학력’이 강조된다. 반지성주의 집단이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학력에 의한 분열의 절단면이 성적 서열이라는 지층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 지성을 축으로 대립하다가 그 결과 사람들이 두 진영으로 분열한 것이 아니다. 순서를 따지면 분열이 먼저 생기고, 분열을 발생시킨 요인으로 ‘지성’이 악역을 맡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계속 분열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지성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둘로 나뉜 각 집단에 의해 표면화되고 있다. 생각건대 우리는 지성 같은 사소한 것으로 대립하기를 멈추고, 될수록 빨리 제대로 된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제대로 된 사회를 되찾아 현재 진행되는 분열을 저지해야만 한다.
--- p.177~178

일본 정부는 오래전부터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심각한 사고를 일으킬 리 없다(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안전 신화’라는 강력한 대본을 갖고 있었다. 그 배후에는 ‘원자력발전소 추진’이라는 더욱 포괄적인 대본, 즉 정계와 관료와 학계와 언론이라는 일본의 권력 중추가 공동으로 발전시킨 대본이 있었다. 그래서 막상 대본에 없는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자 일본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대본의 존재로 인해 일본 엘리트는 지성의 기동을 현저하게 저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도 자신들의 대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성을 철두철미하게 폐기하고,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도록 사고를 정지시키는 도리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지성을 가동시키면 ‘원자력발전 추진’ 시나리오는 붕괴하고 말기 때문이다.
--- p.231~232

고도로 복잡하고 전문적인 과학에 의한 반지성주의는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것이다. 그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한층 더 나쁘다. 그 커다란 흐름에 저항하려면 새로운 기술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말고, 정보 검색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목적에 얽매이는 일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머리로 똑바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일반인이 과학에 대한 반지성주
의에 빠지지 않도록 똑바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과학의 운용에는 지성이 저절로 따라붙는다는 애매모호하고 낙관적인 선입관에 사로잡히는 것은 과학에 내재한 반지성주의에 가담하는 꼴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256~257

한 사회의 중대한 생명은 ‘마찰’에 의해 길러진다는 말입니다. 사회의 각 계층이나 부분은 반드시 나머지를 부가하여 보충해야 할 결함을 갖고 있으며, 그 때문에 발생하는 상시적인 ‘마찰’에 의해 “끊임없이 자극이 편재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평화를 보장”한다고 T. S. 엘리엇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얼크러지는 분할선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대감을 분산시키고 혼란시킴으로써 국민 내부의 평화에 유리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마찰’을 감소시키고 소거하여 하나의 ‘신앙’으로 균질화하려는 사회는 견인력과 반발력의 긴장감을 잃고 마침내 ‘생명’까지 잃고 맙니다.… 그렇지만 작금에 들어 격차의 심각한 비대화, 걷잡을 수 없는 배외주의의 앙양 등을 보면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그 반대, 즉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시키지 않는 ‘분열의 심화’(사이토 준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 정부가 명백하게 원자력발전의 재가동,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으로 키를 돌려도, 이를 염려하는 수많은 목소리는 흐릿하기만 할 뿐 잘 퍼져 나가지 않습니다. 연대를 하려 해도 금세 길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개중에도 특히 매개자가 되어 중의를 충분히 모아야 할 야당이 거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분열의 심화’라는 거울에는 필시 가장 가까운 정치적 길을 스스로 찾아내는 기술을 연마하지 못한 우리 자신이 비치겠지요.

--- p.263~264

출판사 리뷰

일본의 지식인들, 반지성주의에 저항하는 법을 고민하다

반지성주의는 단순한 무지나 무교양과 다르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로 지성에 대한 반발, 아니 공격적인 태도다. 반지성주의적인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지식도 교양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특히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_『아사히신문』서평(2015. 4. 17)

아베 정권은 폼을 잡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런데도 국민의 다수는 이 정권을 지지한다. 일본인은 바보가 되어 버린 것일까.… (이) 논고가 가르쳐 주는 중요한 것. 그것은 반지성주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무심코 무자각 상태에 휘말린다는 것이다.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일본인에게 필독서.
_『겐다이 디지털신문』(2015. 4. 14)

◈ 반지성주의 사회, 폭주하는 사회의 이면을 읽다


이 책은 분명히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경고와 성찰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 자위권을 인정하는 헌법개정 움직임과 재일 한국인을 겨냥한 혐오 시위?발언 등 부쩍 심화되고 있는 우경화 움직임을 우리는 걱정스럽게 지켜봐 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 사회의 이러한 흐름을 그저 관망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정부의 진실 은폐, 정치인과 미디어의 폭언과 거짓 발언?보도, 여성?성소수자?해외이주민 등 소수 집단을 향한 혐오 발언과 범죄, 사실관계 확인 없이 SNS를 뒤덮고 있는 음모론, 과거사 왜곡 등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있는 우리도 이미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도착해 있는 사회, 이 책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반지성주의가 밑바탕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성의 부재나 비지성적인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맹렬한 지적 정열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지성의 작용에 대해 모멸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매우 높은 파급력과 선동성을 지닌 반지성주의는 당연히 사회를 단일한 방향으로 몰아가며, 특정한 집단이나 계급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게 된다. 반지성주의의 실체와 작동 방식을 역사적으로 또한 동시대적으로 살펴본 이 책은 일본의 비판적 지성 우치다 다쓰루가 기획?편집?공동 집필했고, 정치학자, 철학자, 작가, 정신과 의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생명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와 세대에 포진한 9명의 저자들이 글을 실었다.

◈ 반지성주의에는 사회도 미래도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반지성주의 최악의 역사적 사례들로 19세기 후반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20세기 중반 미국의 매카시즘, 일본의 사례로는 군국주의와 이의 왜곡을 두루 지목한다. 반유대주의는 인류사 전체를 유대주의와의 대결로 간단히 규정하고 당시 유럽 사회가 처한 모순의 제공자를 유대인으로 몰아가 이후 20세기에 홀로코스트를 낳았으며, 매카시즘은 미국 정부 곳곳에 공산주의자가 다수 암약하고 있다는 발언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무려 5년간 정계와 사회, 문화?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공통적으로 성찰과 의문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무시간성’(‘지금, 여기, 나’밖에 없다)과 진부하고 음모론적인 지식의 단순한 반복과 웅변, 사회의 영속성은 안중에도 없는(죽은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를 배제하는) 외곬의 지적 정열이 압도한 사례다.

현재 일본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혐오 발언과 시위?범죄에도 이러한 반지성주의가 깊이 내재해 있다. ‘재특회’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 ‘일베’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 차별과 여성 혐오는 일종의 사회병리적인 하위문화의 수준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심상으로 번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사회, 경제적 모순과 그로 인한 박탈감을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너무나 손쉽게 치환하는 반지성주의적인 사고와 선동이 있다. 마찬가지로 반지성주의적 정치권력은 이를 적극적으로 권력의 자원으로 동원하거나 활용한다.

◈ 지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 책은 반지성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지성’의 역할과 작용을 다시 생각한다. 근대적 지성은 이미 도구적 지성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이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여러 오해와도 관련되어 있다. 지성은 단지 학력이나 지식의 양, 연구나 업무의 성과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이러한 도구적 지성은 분열과 정치적 동원의 계기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저자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소다 가즈히로(8장)는 ‘대본 지상주의’와 반지성주의를 연관 짓는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이미 주제를 결정짓고 이에 따라 내용 전개나 인터뷰이의 발언에 관찰자가 부적절하게 개입하는 대본 지상주의는 사회 문제 전반에 깊숙이 개입된 태도이다. 동일본대지진 직후의 일본 정부나 미디어의 대응을 살펴보면, ‘일본의 원전은 사고를 일으킬 리 없다(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안전 신화’의 강력한 대본, 그에 앞서 ‘원전 추진’이라는 정재계, 언론, 학계 등이 연루된 권력 집단의 대본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대본에 없던 사고가 나자 그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최첨단의 지성이 결집된 과학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조작 사건은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례이다.

이 책은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성의 본래적 작용, 즉 회의하고 질문하고 우리 안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러 있는 힘을 강조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의 멈추지 않는 열정에 사회 전체가 휘둘리지 않기 위해, 또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이용되지 않기 위해, 다시 지성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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