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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시
대승찬에 관하여 대승찬 97수 전문 첫 번째 법문 두 번째 법문 세 번째 법문 네 번째 법문 다섯 번째 법문 여섯 번째 법문 일곱 번째 법문 여덟 번째 법문 아홉 번째 법문 열 번째 법문 열한 번째 법문 열두 번째 법문 열세 번째 법문 열네 번째 법문 열다섯 번째 법문 열여섯 번째 법문 열일곱 번째 법문 권말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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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에 끄달리는 습관 때문에 도를 보기는 어렵지만, 도는 반드시 볼 수 있습니다. 늘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번 보세요! 생각도 바뀌고 모습도 바뀌고 시간도 바뀌고 있지만, 그 바뀌는 순간은 항상 이 순간입니다. (35쪽)
지금 이 순간에 나 자신을 확인한다고 합시다.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이 순간 가장 확실하게 의심할 수 없이 확인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순간에 제일 또렷하고 진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순간 한결같이 변함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77-78쪽)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하면서 끝까지 해 나가다 보면 기진맥진해서 망상조차 활동을 못해요. 그럴 때쯤 되면 길이 열리는 겁니다. 뭔가를 붙잡고 있는 힘이 쫙 빠져야 돼요. 탈진 상태가 되어야 돼요. 그러면 어느 순간에, 세상이 끝장나서 내가 죽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확 뒤집어지는 거예요. 출구가 나오는 겁니다.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 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길이 열려요. (172-173쪽) 공부란 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전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수행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자지도 않고 배고픈 것도 참아가면서 고통스럽게 억지로 무엇을 추구하는 것은 공부가 아닙니다. 공부란 이름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를 하면 행복해져야지, 괴롭다면 왜 공부를 하겠어요? (264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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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 승찬 대사가 지은 신심명과 더불어 선종에서 가장 많이 음미된 게송인 <대승찬>을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이 선의 핵심을 곧장 가리키는 언어로 설법한 책이다. 김원장의 설법을 녹취하여 미내사클럽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지금 여기>에 연재했던 글을 이번에 묶어 책으로 펴냈다.
<대승찬>은 지공화상(誌公和尙)이 지어서 502년경에 양(梁) 무제에게 바친 게송이다. 대승찬(大乘讚)은 대승을 찬탄한다는 뜻으로서, 그 제목에 걸맞게 불이중도(不二中道)인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노래하고 있다. 중국의 선종은 대승불교를 가장 접근하기 쉽게 발전시킨 것이며 가장 쉽고 빠른 깨달음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승찬에도 그러한 선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고구려의 왕이 지공화상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은으로 만든 모자를 바쳤다고 한다. 《선으로 읽는 대승찬》은 17개의 법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법문에 앞서 <대승찬> 원문을 충분히 음미하도록 97수 전문과 김원장의 엄밀한 번역을 수록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대승찬에 관한 소개와 권말시, 권두시를 덧붙였다. ‘중국 조사선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실제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부산 무심선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태완 원장의 설법은 직지인심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마음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양하게 도를 가리키지만, 언제나 바로 이것,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까닭에 쉽게 읽히면서도 저절로 도에 몰입되게 한다. 선의 핵심을 쉽고 명쾌하게 보여 주고 있어, 선(禪)에 관심이 있거나 마음공부를 하는 독자에게는 좋은 지침이 될 만한 책이다. 큰 도(道)는 늘 눈앞에 있는데, 눈앞에 있지만 보기는 어렵다 대승찬의 첫 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구도자는 도를 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구도자들이 구하는 도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지은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큰 도는 곧 마음입니다. 마음은 눈앞에 있습니다. 아니, 마음이 곧 눈앞입니다." 여기서 눈앞이란 곧 지금 여기를 가리킨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어서 말하기를, "대도란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인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한다. 평상심이 곧 도이며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마조선사의 말씀을 연상케 하는 이 단순한 말 속에 바로 선의 요체가 담겨 있다. 구도자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도란 곧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마음이며 내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어디 가서 따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실은 순간순간 늘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눈앞에 있는 도를 보기가 어려운가? 지은이에 따르면, 그것은 모습을 좇아가고, 분별하는 생각을 따라가는 습관 때문이다. 이른바 분별심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눈앞의 도를 보기 위해서는 모습을 따라가지 않고 분별심에 의지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한다. 지은이는 책의 전반에 걸쳐 분별심에 의지하는 습관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도에 몰입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