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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시작하며
1부 일상의 발견 이순신 장군이 세종로를 접수한 까닭_세종로 ‘이순신 동상’을 찾아|청계고가는 갔어도 화두는 여전하다_지금은 사라진 ‘청계고가’를 걸으며|어머니가 가발공장에 취직하던 해_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평화시장’을 찾아|해방과 함께 태어나 전쟁과 함께 자라다_용산동 2가 ‘해방촌’을 찾아|‘친일미술가’의 손으로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빚다_남산공원 ‘김구와 안중근 동상’을 찾아|해방 60년 만에 닻 올리는 친일 역사 청산_‘반민특위’가 있던 국민은행 명동지점을 찾아|침략과 수탈에서 평화 교류의 철도로_‘서울역’을 찾아 2부 문화의 재발견 100년 한국 영화와 함께한 산증인_종로 3가 ‘단성사’를 찾아|실패한 조국 근대화의 상징_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세운상가’ 유람기|지금 이 순간에도 무참히 헐리고 있다_우이동 ‘육당 최남선 고택’을 찾아|외세를 이용해 외세를 막으려 하다_정동 ‘손탁호텔’ 터를 찾아|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장경근을 떠올리다_정도 ‘옛 대법원’을 찾아|‘만들어진 전통’ 제야의 종_종로 ‘보신각’을 찾아 3부 의미의 발견 나머지 절반의 역사를 생각한다_현저동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사대의 상징’을 헐고 들어선 ‘일제로의 종속’_현저동 941번지 ‘독립문’을 찾아|‘망자’가 아닌 ‘산자’를 위한 공간_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철저히 유린된 제국의 상징_소공동 ‘환구단’을 찾아|김구만 남고 임시정부는 잊혀지다_평동 ‘경교장’을 찾아|‘기록’이 아닌 ‘기억’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_충무로 2가 100번지 ‘한미호텔’을 찾아 4부 장소의 재발견 모든 집은 와우식으로!_날림공사의 원조 ‘와우아파트’를 찾아|과거 청산 없는 화해란 있을 수 없다_《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과 함께 남산 ‘옛 안기부’ 터를 찾아|진정한 민족대표는 누구인가?_인사동 ‘태화관’ 터를 찾아|‘해방’은 됐을지언정 ‘독립’은 하지 못한다_남산공원 ‘조선신궁’ 터를 찾아|남산에 신사 유구가 있다!_리라초등학교 뒤 ‘노기신사’ 터를 찾아|이토 히로부미 죽어서도 조선을 파괴하다_장충동 ‘박문사’ 터를 찾아|초라한 서울시의회 청사가 가벼이 보이지 않는 이유_태평로 1가 ‘부민관’과 해방 후 ‘국회’가 있던 곳을 찾아 산책을 마치며 참고 문헌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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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재발견_일상의 공간이기에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공간이 겪어낸 역사적 사건을 떠올린다
“경부고속도로가 경제의 중심도로라면, 세종로는 역사의 중심도로다. 이미 조선시대 때 나라의 중심도로로 조성된 세종로는 일제강점기 때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거느리며 제1도로의 지위를 이어갔다. …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곳도 세종로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이룩한 월드컵대표팀이 카퍼레이드의 종착지로 삼은 곳도 세종로다. 건물만 보아도 세종로는 가히 우리나라의 중심이다. ‘과거권력’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세종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고, ‘현재권력’을 상징하는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가 지척이다. …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종로의 중심은 늘 권력의 입맛에 맞게 개조되어 왔다. 이승만 정권 때에는 이순신 동상 자리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웠다. …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4·19혁명 때 시민들에 의해 철거된 이후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세종로라는 이름에 걸맞은 세종대왕 동상이었다. 그러나 반공이 국시였던 1960년대 후반, … ‘상무尙武’를 중시하던 권력자는 세종대왕 동상의 대안으로, 왜를 물리친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1968년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보완해주리란 기대를 떠안은 이순신 동상이 한국의 대표도로 세종로를 ‘접수’했다. … ”---p.15~24 · 문화의 재발견__우리 주변의 장소와 건물이 가진 문화성을 탐색한다. “지난 2003년 서울 우이동 북한산 초입에 있는 소원素園을 찾았다. ‘하얀 정원’이라는 뜻의 소원은 최남선이 일제 말기인 1941년부터 해방 후 1949년 2월 7일 반민특위에 검거될 때까지 머물렀던 185평방미터 정도의 단층 한옥이다. … 최남선의 후손들이 “건물 때문에 친일이라는 아버지의 상처가 자꾸 덧나는 것 같다”며 D건설사에 매각해버렸는데, 서울시문화재위원회 역시 몇 차례의 토론 끝에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최남선이 소원에 머무르기 시작한 1941년은 그가 신문 기고나 강연 등을 통해 조선 청년들에게 일제의 침략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을 시작한 시기이고, 1939년 지어진 개량 한옥으로서 이미 원형이 크게 훼손된 데다 근대건축물도 아니니 보존할 만한 건축사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 눈이 녹아 질척한 마당에는 춘원 이광수와 나눴던 편지 등 각종 우편물과 뜯지도 않은 프랑스와 러시아 신문 등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 그동안 우리에게 생활문화사적인 측면에서 사료를 보려는 자세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 우리는 너무 무관심하다. 첫 방문 이후 4년 만인 2007년 말 다시 우이동 5-1번지를 찾았을 때 그곳에 ‘최남선’은 없었다. 고급 빌라가 들어섰을 뿐, 역사적으로는 죽은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 ”---p.121~131 · 의미의 재발견_잘 알려진 곳이지만 이면에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재조명한다 “김구가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숨진 곳은 상해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이다. … 경교장을 보기 위해서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지하철5호선 서대문역과 광화문역 중간쯤 되는 언덕 위에 강북삼성병원이 있는데, 그 건물 현관이 바로 경교장이다. 건물이면 건물이지 현관이라니? 경교장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최근까지만 해도 이곳이 해방 후 임시정부의 주석이던 김구가 기거한 공간이자 그가 암살된 곳이었다는 사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1994년 서울시가 표지석을 세우기 전까지는 그 어떤 안내판 하나 없었다. 김구 사후 40년 이상 그 존재가 잊혀져 있었다. 무관심은 곧 원형 훼손을 불러왔다. 1968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에 인수되고부터는 껍데기를 제외한 건물 전체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포르말린 냄새가 풍기는 병원 본관 중앙현관으로 쓰이는 경교장 1층에 들어서면 응급실과 약국, 원무과 등이 눈에 들어온다. ‘백범 기념실’이라고 적힌 작은 플라스틱 안내판이 없다면, 이곳이 백범 김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영 알 길이 없다. … ”---p.208~218 · 장소의 재발견_지나간 이야기를 숨긴 채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장소를 찾아가 그때를 생각한다 “1970년 4월 8일 잘 서 있던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이 입주가 시작된 지 채 한 달도 안 돼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산 2번지 와우 아파트 15동은 1969년 서울시가 37개 지구에 건립한 시민아파트 406개 동 가운데 하나다. … 여느 사고가 그렇듯 와우아파트도 붕괴 전에 이미 충분한 징조가 있었다. 13~16동의 입주가 시작된 것은 3월 12일이었는데, 그때 이미 벽에 금이 간 것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구청의 반응은 별일 아니라는 투였다. … 15동이 붕괴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루만 더 지나면 임시로나마 기둥이 보강됐을 텐데 그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 이 일로 ‘불도저’라 불리던 김현옥은 서울시장직에서 해임됐고, 붕괴 위험이 있는 다른 시민아파트 101개 동도 철거됐다. 철거에는 처음 시민아파트 434개 동을 지을 때와 맞먹는 50여억 원이 들어갔다. 지하철2호선 신촌역 7번 출구로 나가 400미터 정도만 걸으면 기업은행이 보인다. 와우아파트는 그 뒷산 중턱에 있었다. ‘누운 소’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렸고 거기서 아파트 이름을 따왔는데, 그게 와우아파트의 운명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 당시 이곳에 하룻밤 사이 사라져버린 아파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있을까? 그것도 그냥 아파트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 친히 준공식에 참석해 테이프를 끊을 정도로 축복받은 아파트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 ” ---p.23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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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의 무지함과 무심함을 반성하는 데서 책은 시작한다. 서울 사람은 서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자랑스러운 것만 내 것으로 가지고 싶어 하지, 부끄러운 기억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우리 역사가 남의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 속에서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을 걷다 보니 곳곳에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거나 왜곡된 흔적이 보인다. 이 공간은 해방이 되고 불안한 정국을 거치며 다시 상처를 입었고, 그후 한국전쟁을 치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들을 겪어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서울은 그런 아픈 일들은 이제 다 잊었다는 듯 화려하기만 하다. 화려하고 멋진 모습, 물론 자랑스럽다. 더 다듬어지고 더 좋아져 진정한 국제적인 도시 서울이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모조리 묻어버리고 새것으로만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부끄러운 역사는 부끄러운 대로 교훈으로 삼고, 자랑스러운 역사는 대대손손 잘 물려주게, 보존할 건 보존하고 알아야 할 건 알자는 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다. “서울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실을 만나게 되는 요술경 같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촌스러운 건물이지만, 서울시의회 청사에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지나치던 보신각과 청계천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진실이 숨어 있었다. 서울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멀리 달아났다. 진실은 늘 사실 저 너머에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수도답게 서울의 변화 속도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의 기적을 대변했던 청계고가는 헐렸고, 2열종대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삼일아파트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한국 최초의 증권거래소와 동대문운동장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우리가 밥벌이의 고단함에 치여 허우적대는 사이 축적된 삶의 편린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산책을 시작하며 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