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
미얀마 불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바간은 만달레에서 남쪽으로 193km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42㎢ 정도이다. 바간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따모다릿이라는 왕이 주변의 소부족들을 통합하여 아리망 타라프라국을 세운 것이 바간 역사의 시초이다. 그러나 바간 왕조의 영화는 1044년 통일 미얀마를 건설하게 되는 42대 아노라타 왕이 즉위하면서부터이다.
아노라타는 북부의 라카잉을 정복하고 국토를 넓혀가다가 때마침 타톤에서 전파된 승려에 의해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타톤에 불교경전의 복사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기적 불교관을 가지고 있었던 타톤의 왕 마누하는 이를 거절해 버리고 만다. 이에 격분한 아노라타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가 타톤을 멸망시키고 미얀마를 최초로 통일하기에 이른다. 바간 왕조는 이 시기에 타톤으로부터 불교 경전을 비롯해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모두 포로로 데리고 와 화려한 바간 문화를 꽃피우는 계기를 마련한다.
불교를 전파하려다 오히려 정복을 당한 타톤의 마누하, 반면 불교에 귀의하게 되면서 그것을 계기로 미얀마의 통일을 이루게 되는 아노라타, 이 두 왕의 운명적 만남은 바간의 한 유적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아노라타는 불교를 계기로 전 미얀마를 통일하고 그 최초의 상징물로 거대한 황금 탑을 조성하며 불가사의 한 바간의 역사를 시작한다. 1287년 몽고의 쿠빌라이 칸이 쳐들어 올 때까지 바간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탑 불사를 이룩하는데 200년에 걸쳐 5,000여 개의 거대한 전탑군을 조성한다. 현재는 2,500기의 탑만이 남아있는데 유네스코에 의하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바간은 아시아에서 귀중한 고고학적 유적지 중 하나이며, 또한 오늘날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함께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만달레이
이라와디 강 중류 동쪽 퇴적지대에 위치한 만달레이는 양곤에 이어 미얀마 제2의 수도이다. 양곤은 항구도시와 행정도시로서 기능을 하고 만달레이는 문화 예술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중국과 국경지대로 미얀마의 경제 구조상 아주 중요한 무역 통로로 발전하여 왔다.
공파웅 왕조의 왕도이기도 했던 이곳은 아직도 당시의 궁전터가 남아 있다. 만달레이는 중국 국경이 가까운 관계로 화교가 많이 살고 있으며 내륙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영향으로 산악민족과 기타 소수민족들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다. 1857년 민돈왕에 의하여 조성된 만달레이는 불교적 설화를 바탕으로 도읍지를 결정하고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만달레이의 궁전 뒤편에 조그마한 산이 있는데 이곳에 부처님이 다녀가시며 ?내가 열반한 후 2,400년이 지나면 이곳이 불교 최대의 도시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다고 한다. 물론 다분히 지어낸 전설이지만 왕도로의 결정을 하기 전에 불교를 믿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당위와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민돈은 1859년 이 도시와 만달레이 성을 지으며 이전의 수도인 아마라뿌라로부터 15만 명과 함께 1861년 천도를 감행한다. 하지만 얼마 후 이 도시는 얼마 사용도 못하고 영국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며 그들에게 물려주고 만다.
구도도는 만달레이에서 가장 의미가 깊은 사원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인도에서 4번의 결집이 이루어진 다음 이곳에서 민돈 왕에 의하여 제 5차 경전 결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729개의 하얀 대리석에 2,400명의 승려들이 6개월간을 밤낮없이 작업을 하여 완성한 탑이라고 한다. 이 석장경을 탁본으로 만들 경우 400페이지 분량의 책이 38권이 나오고 이 경전을 하루 8시간씩 읽을 경우 1년하고도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1871년 4월 15일 시작된 이 대작 불사는 경전이 4차 결집 이래 패엽경으로 전파되며 많은 오류가 발생하자 이를 시정하여 후세에 바르게 남기기를 바라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금판이나 은판에 새기려 계획하였으나 도난의 염려를 들어 만달레이의 주변에 많이 나는 흰 대리석을 재료로 하기로 결정하여 율장 111판 논장 208판 경장 410판을 미세하게 석판에 새긴다. 이 구도도의 석장경은 그 한판 한판을 풍화되지 않도록 벽돌로 탑을 쌓아 그 속에 보관을 하는데 천 년을 내다보고 조성된 사원인 것이다.
이른 아침에 구도도를 참배하면 하얀 석장경의 눈부신 도열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인레호수
인레호수는 미얀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계림의 산수가 부럽지 않은 곳이다. 샨주에 위치한 이 호수는 그 동안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낸 곳으로 원시적 자연환경과 문명에 물들지 않은 소수민족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인레호수는 장장 22km의 길이와 11km의 폭을 가진 광활한 호수로 고도가 875m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 한때를 제외하고는 늘 선선한 기후를 가진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생을 배와 함께 생활하는데 호수 위에서 자고 먹고 농사까지 짓는다. 모든 가옥은 티크목이나 대나무를 이용하여 물 위에 지주를 세운 다음 수상 가옥을 짓는데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협동하여 한 채의 집을 짓는데 필요한 시간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인레 주변에 주로 사는 인따족은 어업 이외에 농사도 짓고 사는데 아주 특이한 농경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대나무를 밭고랑만큼 엮어 부력으로 띄운 후 그 위에 흙을 올려 수경재배를 하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호수 위 농경지가 물결에 출렁이는 모습을 보면 모두들 처음에는 머리를 갸우뚱하지만 이내 수상족들의 지혜로운 농사법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 부표식 농토는 잘라서 거래도 한다고 하는데 대부분 토마토와 같이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을 경작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간간이 호수에서 수초를 채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수상농장에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지인들의 말을 빌리면 인레의 수초는 어떠한 화학 비료보다도 훌륭한 자연 비료라고 한다.
호수만을 무대로 사는 인레 사람들의 생계수단을 살펴보면 어업과 농업 외에 직물직조가 주업을 이루는데 특히 인레의 무명과 실크는 천이 질기고 값이 싸서 미얀마의 전역에 내보내는 특산품이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모든 작업을 모두 물레와 베틀을 이용한 수작업으로 한다는 것인데 전문적으로 천을 짜는 곳은 베틀이 1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무명과 실크의 특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2,500여 년을 이어온 불연(佛緣)의 나라,
달음질치는 현대인을 조롱하듯 깨친 자의 평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즐비한 황금 탑의 눈부심에 부처님의 생애(生涯)가 전설처럼 들리는 곳,
깨달음을 향한 감빛 물결의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들,
신심의 열풍으로 숨막히 듯 다가오는 불탑의 향연 바간,
마지막 왕조 영욕의 고도(古都) 만달레이,
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이 파문이 되어버리는 시간이 멈춘 땅 인레호수,
그 어떤 수식어로도 미얀마의 아름다움을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찾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성지를 거닐며 망각의 나락 저편에 잠들어 있는 역사를 깨워 보라! 말없이 서 있던 유적들이 마법처럼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황금 전설의 주역들과의 만남을 주선할 것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