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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 엄숙하고 두려운 것을 지으려고 하네.〔……〕당신의 증거는 어디에 있소? 그러면 내 대답은, 내 교회와 그 교회의 그림자가 지상에 떨어지는 방식을 바라보시오. 또한 그 교회들을 쳐다보았을 때, 당신이 혼란에 빠지는지 확인해 보시오.〔……〕영혼의 실존은 수학적 증거에 의해 발견될 수는 없소.
--- p.15, p.199 혹스무어의 등에서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몸이 묶인 채 비명을 지르며 전율하고 있었다. 그의 비명이 옆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겹쳐졌다. 그는 잭나이프처럼 몸을 꼭 웅숭그린 자세로 꼼짝 않고 있었다. 수화기를 집어 들자,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교회 옆에 버려진 소년 발견. 시체엔 아직 온기가 있음. 자동차가 모시러 가고 있음.?? 잠시 동안 그는 누구 집에 있는 지, 어느 곳에 있는지, 또는 지금이 어느 무렵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다가 정신이 깨어났다.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오면서, 그는 입안이 텁텁함을 느꼈다. --- p.296 또 하나의 편지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네 개의 열십자가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는데〔……〕도형은 혹스무어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에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만약 열십자가 교회의 관습적인 기호라면, 여기 그 외곽선에 살인 지역이 있을 것이다. 삼각형의 꼭짓점은 스피털필즈, 밑변 양 점은 성 조지 인 디 이스트 교회와 성 앤즈 교회, 그리고 서쪽엔 성 메어리 울노스 교회가. 그 밑에는 연필로 '이건 내가 털어놓을 게 있다는 걸 당신이 알게끔 해주기 위한 것이오.라고 휘갈겨져 있었다. -- p.324 그래서 나는 내 도형을 다음과 같이 완성하게 되는 거다. 스피틀 필즈, 워핑, 라임하우스가 삼각형을 이루고, 이에 블룸스베리, 성 메어리 울노스가 어울려 별표를 창조하고, 그리니치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은 바알 베리스 또는 언약의 신을 위한 육각형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리틀 성 휴 교회와 어우러져 칠각형이 블랙 스텝 레인 주위에 솟아날 것이며, 이 칠각형으로 모든 직선들은 무한대의 점 하나로 풍요로워지고 모든 평원은 무한대의 선 하나로 풍성해질 것이다. --- p.367 혹스무어가 교회 옆을 빙 돌아 걸어가자 한 떼의 경찰관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을 의식하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경찰관들의 서 있는 자세에서 혹스무어는 시체가 그들 뒤편 잔디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시체에 눈길을 내려 보는 첫 순간에 한편 그는 자신이 죽었을 때 자신의 시체를 둘러싼 낯선 이들에게 자기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 p.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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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피터 애크로이드의 대표작 -《혹스무어》
솔의 현대 문학선 '로터스 총서' 첫 권으로 출간!! 피터 애크로이드는 런던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작가다. 실제로 그는 런던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출간했으며, 그의 글은 대부분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런던의 역사London: The Biograph》는 이름 그대로 런던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기술한 저서이며《런던 도해Illustrated London》와 《성스러운 템스 강The Thames》도 런던의 풍경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런던 어느 특정 지역의 고유한 역사를 바탕으로 그 지역의 특성을 캐내는 세밀하고 치밀한 묘사는 그의 장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느 거리나 거주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과 행동에 물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과 같이 런던 또한 그 안에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온 감성의 패턴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작가의 이런 현실 인식은 동일한 장소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서술방식으로 드러나며《혹스무어》에서도 두 개의 시간대가 소설의 장이 바뀔 때마다 서로 번갈아 진행되면서 18세기와 20세기의 런던을 오간다. 두 개의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서로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소설은 18세기의 건축가 니콜러스 다이어에 의해 교회가 재건축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20세기의 혹스무어 경관이 250년 전에 지어진 교회들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이어가 저질렀던 살인과도 연결된다. 자연히 소설은 연속해서 벌어지는 살인의 범인은 누구이며, 왜 살인이 벌어지는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독자는 두 시간대에 벌어지는 살인을 개별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맞물려 있다고 믿게 된다. 1711년 앤 여왕시절, 런던은 대화재 이후 새로운 교회 건설을 계획하게 되는데… 건축가 니콜러스 다이어가 이 작업에 책임을 맡아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다이어는 어린시절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시내를 떠돌다 미라빌리스라는 이단 종교의 교주를 만나 그에게서 시체, 어둠, 제식 등의 관념을 이식 받게 되고 그만의 이러한 사상을 교회 건설의 밑바탕으로 삼으려한다. 그의 건축물들은 시체와 피의 의식을 통해 하나씩 완성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참형을 당하기에 충분한 그의 종교적 특성과 교회 건축의 운영 능력을 위협하는 편지를 받게 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리고 측량 감독관 헤이즈를 자신을 위협하는 인물로 확신하고 그를 유인해 술에 취하게 한 뒤 그를 공사 중인 교회 건물로 유인해 살해한다. 그러고는 그의 노고를 취하하는 것으로 위장해 교회 건축터에서 또다시 시체 제의를 치르고자 하는데, 병과 망상 외로움의 고통 속에서 다이어의 교회 건축은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 교회 옆에 버려진 소년 발견. 시체엔 아직 온기가 있음. 런던은 뒷골목의 그림자가 가진 과거의 기억(역병, 화재, 빈곤 등)을 묻고 화려한 간판과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는 토머스는 교회 벽에 기대 시간을 보내고 교회 속 지하 미로를 헤매인다. 부랑자 네드도 마찬가지다. 인쇄소 근로자였던 그는 동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홀로 진행하는 단순 업무에만 전념하다 처음 동료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실언을 하고 그 후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회사를 그만두고 숨어서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야기는 이어서 런던에 자리한 일곱 개의 교회를 배경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을 보여준다. 사건에 투입된 혹스무어 경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걸 바쳐 사건에 몰입하지만 그는 사건의 배경, 용의자, 사건 기록부가 아닌 교회에서 뿜어내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다. 그때 그의 손에 들어온 알 수 없는 공책 한 권에 숨겨진 비밀, 이제 교구 내에 있는 교회들 간의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수수께끼가 풀릴 듯도 하지만 사건은 계속 미궁에 빠지게 된다. 사건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혹스무어는 강제로 전출되고 사건의 해결은 그의 후배 월터 파인에게 남겨지는데……. 다른 시간 속에 공존하는 개인의 역사들!! 모든 사건들은 시간의 간극을 넘어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순환 반복으로 이어진다. 삶의 영원한 반복을 주장하는 18세기의 건축가 다이어의 시간관과 세계관은 다이어의 스승인 크리스토퍼 렌과 크게 대립한다. 렌은 오히려 시간의 일직선적 발전론을 주장하는 이성론자다. 이성과 추론을 통한 사유의 합리성과 경험에 의거한 진보를 주장하는 렌은 과학과 경험주의의 철저한 숭배자이다. 그런 문명의 진보를 믿는 렌의 낙관적 세계관은 비이성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을 지닌 다이어의 세계관과는 정반대이다. “어둠 없이는 빛도 없고, 그림자 없이는 실체도 없다.”다이어의 이러한 세계관은 20세기의 혹스무어 경관이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가운데 사망시간과 과학적 해부에 의존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다이어의 세계관은 철저하게 비이성적이고 심지어 악의를 띠고 있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서구세계가 추구해온 이성적 가치나 기독교적 교리의 패러다임을 정반대로 뒤집을 때 가능해지는 해법이며, 그것은 다이어의 말대로 어둠과 죽음이 갖는 형이상학인 것이다. 《혹스무어》는 포스트모던 소설로서의 면모도 잘 갖추고 있는데, 탐정소설의 형식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한편 사건 해결의 중심을 끝까지 미궁으로 남겨둠으로써 전통적 서사방식을 거부한다. 사실을 근거로 하면서도 사실 확인을 포기하게 만들며, 살인 사건 속에서도 사건 해결을 포기하게 만들어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또, 18세기의 내용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철자법, 문장구조, 라틴어의 혼용, 수많은 지식의 삽입, 인용부호 삭제 등의 18세기의 문체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랄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은 글을 손쉽게 읽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그 의도를 파악해갈수록 새로운 재미가 더해진다. ■ 지금, 여기를 의심하게 하는 현실과 가상의 혼돈 애크로이드는 서문에서 ‘1711년, 앤 여왕 즉위 9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밝히고, 건축가 다이어가 런던에 일곱 개의 교회를 지어야 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여왕의 통치 기간으로 분류되는 역사의 한 시점에서 실존했던 건축가 니콜러스 혹스무어(1661~1367)를 모델로 만들어진 니콜러스 다이어를 통해 혹스무어가 남긴 건축물과 연관된 어떤 사실적인 사건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소설은 그러한 사실적 배경을 그대로 사용하지만은 않는다. 현실을 차용하면서도 사실에 위배되는 작가의 시도들은 이렇듯 일직선적 시간관을 넘어서는 이야기 서술방식과 여러 장치들을 통해 끊임없이 독자를 낯설게 하고 의미 파악의 속도를 지연시킨다. ■ 일곱 개의 교회에 숨겨진 별자리의 비밀 《혹스무어》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추적해 들어가는 탐정 소설로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어딘가에 작가가 숨겨놓은 살인 사건과 관련된 단서나 실마리를 찾게 하고, 상징이나 수수께끼 같이 모호한 것들을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혹스무어》를 읽는 내내 독자는 환상, 꿈, 상징물, 모호함 등과 맞닥뜨리며 이성적으로 살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려는 노력은 종종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전통적인 탐정 소설이 범인이 남긴 흔적과 사건의 정황 등에 근거해 추론하고 범인과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논리적 구조를 갖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는 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과연 답이 존재하는가의 의문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힘과, 이성적 능력 이면에 숨겨진 주술적이며 근원적인 거대한 힘에 눈길을 돌리는 가운데 그 배경이 교회로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던지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시사점이랄 수 있다. ■ 다이어! 그에게 삶은 곧 죽음이요, 죽음은 곧 삶이다 다이어는 어린 시절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돌다 만난 미라빌리스라는 인물에 의해 인간 이성 이면에 담긴 어둠과 악의, 무기력을 깨닫고 “시간이 상처라는 게 진실이라면, 그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리라”,“죽기를 바라는 염원보다 더 빈번한 염원은 인간에게 없도다”와 같은 독백을 한다. 이는 니체가 소개한 실레노스적 지혜를 연상케 한다. 진리를 묻는 왕에게 현자는 인생에 있어서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빨리 죽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 답은 삶의 고통 앞에 선 인간에게 포기와, 절망을 안기는 듯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가 담겨 있다. 삶의 근원 자체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정과 겸손은 삶을 한층 더 가볍게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 현대 소설의 새로운 시간 여행, 새로운 서사, 새로운 전형 《혹스무어》는 각 장마다 구별되는 18세기와 20세기의 서로 다른 이야기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각 장의 시작과 끝에 같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도록 한다. 예를 들어 1장의 마지막 구절이 “한낮에도 별이 빛나는 걸 볼 수 있을 것만 같다”로 끝났다면, 2장은 “한낮에 그들이 스피털필즈 교회로 다가오고 있다”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2장이 “그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로 끝나자 3장은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목소리로 변했다”로 시작한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두 이야기를 하나의 완성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