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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2부. 아유타국은 어디인가 3부. 신령스러운 물고기 4부. 물고기를 신으로 모시는 민족들 5부. 허황옥의 탄생지 6부. 세계에 흩어진 쌍어문 조각들을 찾아 7부. 중국에 이민 온 인도인들의 후손 8부. 왜국여왕 히미코와 쌍어신앙 9부. 보석의 길 글을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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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안 되어 중국 안의 쌍어문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사천 지방에서는 그릇 받침의 그림으로 쌍어문이 그려져 있었고, 사천 남쪽인 운남성雲南省에서 발견된 한나라 때의 벽돌에도 쌍어문이 산뜻하게 조각되어 있는 탁본이 내 책상 위에 놓였다. 계속해서 의창, 무한 지방에서도 쌍어문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구리로 만든 그릇 바닥에는 쌍어가 ‘부귀富貴’ 등의 길상어吉祥語를 양쪽에서 보좌하는 그림도 있었고, 동전 하나에 달린 두 개의 끈을 물고기 두 마리가 양쪽에서 입에 물고 위로 올라가는 모양의 그림도 있었다. 그 동전은 오수전五銖錢으로 한나라 때 쓰던 화폐가 분명했다. 중국의 쌍어문은 양쯔 강을 따라 나타나고 있었다.
이 자료들을 분석해보니 벽돌은 사당祠堂 건축에 쓰인 것이며, 그릇이나 그릇 받침은 모두 사당에서 쓰던 제기祭器였다. 이리하여 한나라 때 쌍어문을 상징적 존재로 숭배하던 어떤 제사 집단이 자기네 고유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지은 사당이나 제사용 그릇에 남긴 무늬가 쌍어문이라는 게 확인된 셈이다. 중국에서 보주라는 땅과 쌍어문을 찾게 된 것이 무척 기쁘면서도 바보처럼 자료를 인도에서만 찾느라고 시간을 낭비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일이 어렵게 해결되었기 때문에 기쁨 또한 컸다. 한나라 때 양쯔 강 유역에는 쌍어문을 사용한 신앙 집단이 살았다. 그들은 한나라 정부의 소수 민족 정책에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났고, 그 결과 반란에 실패한 토착민들이 본거지인 사천 지방을 떠나 양쯔 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그들이 살던 지역마다 그들이 신앙생활을 한 증거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역사책에 기록된 내용과 고고학적 증거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기나긴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던 허황옥의 비밀은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후한서』를 조금 더 읽어보니 허성이란 인물에 대하여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허성許聖의 ‘허’는 성이 아니라 세습되는 직업 무사巫師를 부르는 명칭이라고 했다. 이 책은 중국인(한인漢人)의 시각에서 쓴 것이다. 따라서 ‘무사’라는 표현은 중국인의 유교적 입장에서 본 이교도의 신앙 지도자로서 신분이 세습되는 사람을 ‘허’라고 불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허’는 사람 이름 앞에 붙는 칭호로서 신부神父·목사·승僧과 같은 종교적 칭호였다. 그렇다면 ‘허’는 혹시 힌두교의 브라만처럼 신분이 세습되는 사회와 관련 있는 칭호가 아닐까? 더구나 그 책 뒷부분에 직업 무사인 ‘허’는 그 사회에서 존경받는 계층이라고 설명했다. 허황옥의 허도 존칭 접두사라면 그녀의 이름은 그냥 황옥黃玉인지도 모를 일이다. ‘보주 땅의 허성은 인도의 브라만 출신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는 인도를 떠나 보주로 이주해 온 후 태어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그래서 보주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인도식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쌍어문을 그린 사원을 짓고, 쌍어문이 그려진 그릇으로 의식을 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주가 땅 이름이고, 그 보주가 중국 사천성에 있는 지방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나니 복잡했던 역사의 비밀도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그 비밀의 문을 연 열쇠는 ‘보주’라는 두 글자였다. ---p.13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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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황옥의 고향 보주普州를 찾아서
1961년 여름, 대학생이던 저자는 자신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을 방문했다가 왕릉 대문에 그려진 물고기 한 쌍을 보고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신어神魚라고 부르는 이 물고기는 인도식 탑과 비슷한 물체를 마주 보고 있었는데 이런 종류의 그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로왕릉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왕비의 무덤 앞 능비에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과연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에 인도 여인이 머나먼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졌다. 이러한 궁금증은 그로 하여금 46년에 걸쳐 가까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도·네팔·파키스탄·영국·독일·미국·이란 등을 구석구석 답사하며 쌍어신앙을 연구하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아유타국이 기원전 7세기경 아리아족이 세운 인도 코살국의 중심 도시 아요디아이고, 중국에서 일어난 한나라와 흉노의 대립에 영향을 받아 아요디아의 지배계급과 지식인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지금의 중국 사천성 안악현(보주)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허황옥이 서기 47년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가락국으로 왔음을 밝혀냈다. 또한 허황옥의 이름 앞에 보주태후라는 칭호가 붙은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안악현 내에 보주 허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서운향과 민주향을 방문하게 되고, 허씨의 종산宗山 암벽에 새겨진 「신정神井」에서 ‘허황옥’이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이로써 아득한 옛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만 알려진 허황옥의 혼인 여행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인도와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전파된 쌍어신앙 쌍어신앙은 신석기시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했으며, 쌍어는 기원전 12세기에 그 지역에서 아시리아 문화가 꽃피기 시작할 때 만물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그 후 아시리아의 사제들은 인간과 인간의 생활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물고기 모양의 사제복을 입고 의식을 집행했으며 그런 물증들이 인장印章으로 나타나 있다. 쌍어신앙은 바빌로니아 시대에도 계속되어 왕권의 상징처럼 쌍어문이 유행한다. 그것이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던 민족들의 이동으로 서쪽으로는 지중해로,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로마의 탄압을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쌍어신앙은 물고기 아이콘으로 서로 기독교인임을 확인했고, 지하교회인 카타콤에 오병이어(떡 다섯 개가 가운데 있고 물고기 한 쌍이 양쪽에서 떡을 보호하는 그림)를 그려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요한복음의 내용을 전한다. 한편 쌍어신앙은 흑해를 근거지로 일어난 기마민족인 스키타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전역과 알타이 산악지대의 유목민들에게 퍼졌다. 이런 과정에서 쌍어신앙은 각 지역의 토착 신앙의 내용들과 섞여서 인도 대륙에 흡수되었고, 그것이 힌두교와 불교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 사이에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스키타이족들은 타고 다니던 말의 이마에 쌍어문을 부적으로 달고 다녔고, 말안장도 쌍어문으로 장식했다. 그 전통은 오늘날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을 운행하는 자동차에 그려진 쌍어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쌍어신앙이 인도인의 이민으로 중국의 운남, 사천 지방의 주민들에게도 퍼져나갔고, 북쪽으로는 라마교를 통해 몽골의 초원 민족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이렇게 하여 쌍어신앙은 사천 지방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허황옥 일행에 의하여 가락국에 퍼졌고, 그것은 다시 가락국 출신들의 일본 이민으로 일본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 만물의 수호신 쌍어 불가에서는 물고기가 석가모니를 보호하는 동물로 되어 있으며, 몽골의 풍속에는 물고기가 사람보다 눈이 좋아서 물속에서도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지 또는 위험에 처했는지 살피며 밤이나 낮이나 자지 않고 사람을 보호하는 신적神的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또한 몽골의 전통 종교인 라마교에서는 물고기를 팔보八寶 중 하나로 여기며, 그래서 몽골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물고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나 꽃, 신관神官이나 신물 등을 보호하기도 한다. 수로왕릉의 쌍어는 가운데 탑을 보호하고 있으며, 김해의 은하사에 있는 쌍어는 가운데 꽃을 보호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화를 보여주는 페르가몬 박물관의 한 방에는 높이가 사람 키만 한 커다란 수조水槽 바깥벽에 특이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피복魚皮服을 입은 사제가 넘쳐흐르는 물병을 손에 든 수신水神 오아네스를 호위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물고기 상징의 복장을 한 사제는 초자연적 능력을 갖춘 물고기, 곧 신어神魚를 의미한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약을 생산하는 커다란 나무의 뿌리를 보호하는 물고기 두 마리 이야기를 통해 물고기가 인류를 모든 질병에서 구해준다는 믿음에서 신년축제 때 금붕어를 사며, 일본에서는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는 의미로 ‘고이노보리’ 민속축제 때 종이로 물고기를 만들어 장대에 매단다. 이처럼 쌍어는 사원의 대문에서 군왕이나 신을 지켰고, 신령스러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막이나 물속에서 버텨 서 있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달리는 말의 이마나 안장에도 쌍어는 수호신으로 매달려 있었고, 자동차나 인력거에도 수호신으로 장식되었다. 중국에서는 여행자들의 숙소나 식당, 돈을 지키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한국에서는 왕릉의 대문과 부처님을 모시는 수미단에 장식되었고, 왜국에서는 여왕의 옷을 장식하는 무늬로, 후세에는 재물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神社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쌍어는 한국 민속에도 오래 남아서 가게나 식당의 입구 안쪽에 매달린 북어 두 마리로 끈질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는 물고기가 무언가를 보호하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들어왔고, 이 사상을 전파한 사람들의 이동 흔적이 세계 곳곳에 쌍어문으로 남아 있음을 수십 년간의 추적으로 밝혀냈다. 생생한 현장기록으로 유라시아 역사의 주요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문화권까지 널리 퍼져 있는 쌍어신앙의 역사적·종교적·문화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