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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1992년 장편 소설 『먼 하늘 가까운 사람들』로 [현대소설] 신인상 당선, 『아버지의 우산』을 비롯한 8편의 장편 소설이 있다. 『빼앗긴 들의 사람들』,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생각』, 『집으로 가는 길』, 『치즈』, 『낙타』, 『은밀한 유산』을 썼다. 청소년들과의 토론 수업을 새로운 즐거움으로 삼으면서, 그들의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상은 내가 지나온 세상이 아니라, 여전히 내 앞의 삶이란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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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94쪽 | 477g | 148*210*20mm
ISBN13
9788974561888

책 속으로

한 남자의 뒤꼭지에 그것도 한순간에 반했던 일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기를 쓰고 말렸을 때 그 말을 들었더라면, 부모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을 왜 무시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날 아침, 아버지 몰래 16인치 나팔바지를 사입고 출근하는 길에 영우를 만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었다.

그날 아침은 세상이 온통 아름다웠다. 나팔바지에 굽 높은 구두를 신었으므로 세상도 한 뼘 아래로 작아 보였다. 명동 한복판을 늘 누비고 다니는 순자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10년 전 패션으로 살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순자는 명동 거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다운 나이였다. 늘 20년 안쪽만 기억하고 사는 부모들이란 언제나 고루했다. 순자는 아버지 몰래 사둔 새옷을 입고 허겁지겁 문을 빠져나왔다. 용케 아버지에게 들키지도 않았고, 출근길 뭇시선들을 자랑스럽게 받아 내는 걸음걸이는 경쾌했다. 그 발걸음을 붙잡은 것이 영우의 뒤꼭지였다.

---pp. 103~104

출판사 리뷰

『치즈』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상처를 앓고 있다. 그들은 그 상처로 인해 사랑에 빠지기를, 타인들과 관계 맺기를 불편해한다. 그리고 그 방식과 면면들은 각 인물들이 겪어 온 역사에 따라 매우 상이하게 펼쳐진다. 『치즈』에서는 인간 군상의 다채로운 모습들이 이 상처의 역사, 관계 맺기의 역사로써 흥미진진하게 빚어진다. 자신의 욕망과 열정만을 채우기 위해 가족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적에 배신감을 느꼈던 정민은, 사사로운 감정의 개입 없이 늘 표준 매뉴얼을 갖고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이성적인 관계가 아닌 경우를 불편해하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녀는 사랑이, 비합리적인 감정 놀음과 외로움과 터무니없는 소유욕이라면서, 마약보다 강한 그 중독성 떄문에 몇 년 고생하고 나서 겨우 평상심을 찾았을 때의 담담함이 외로움보다 더 견디기 편하다고 생각한다. 순자는 남편의 배신과 연극판 사람들의 외상으로 무일푼으로 무너져 절집에 의탁하는 신세가 되어 끊임없이 절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용서하고 잊으라 말하면서도 사실 그녀가 절을 하는 것은, 어떤 것과도 더 이상 줄 것도 받을 것도 없게끔 만들겠다는 바람이었다. 윤재는 아내 현주의 외도로 생긴 아이를 키우며 한편으로 여전히 첫사랑을 못 잊는다. 한섭은 이혼한 이래로 마음의 골을 키워 가던 와중에 처음으로 소년 같은 감정의 진창을 경험한다. 이 상처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 그 두께를 더하면서 서로의 상처와 역사를 서서히 이해해 가는 가운데 치유되어 간다. 관계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상처는 다시 관계에 던져져야만 진실하게 아물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치즈』는 펼쳐나간다. 그들은 서로 상처받은 개인임에도 오히려 각자의 그 상처를 자산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물들이고 전염시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순간이 영원일 수 있는 것은 영원을 순간으로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찰칵 하는 그 순간들 때문에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괴로워한다. 영원을 각인하는 바로 그 순간을 알아보기란, 대개 그 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이루어진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알아보는 것, 그 찍힌 사진 속에 살아남은 영원성에 공감하는 것은 시간이 흐른 뒤이다. 시간은 그 순간을 아름답게 발효시키고, 이 과정 속에서 순간과 영원의 비밀, 삶의 신비가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들의 연이 서로 얽혀 든 이 세상은 컬러풀하다, 온갖 색들은 감동이다라는 이야기가 『치즈』안에 그려져 있다. 그러기에 순자는 고립된 성을 떠나 사람들의 거리로 내려오고, 윤재는 지금과는 또 다른 생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치즈』는 사람들끼리 얽혀 사는 진창을 이야기한다. 여우와 순자의 활짝 핀 사진, 단체 사진 한쪽 끝에 얌전히 숨은 정민의 사진, 정민과 윤재의 가게 개업식 때 사진, 한섭의 잘못 찍힌 듯한 사진, 순자의 영정 사진…… 이 사진들 안에 잃어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못한 미래의 길목이 아스라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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