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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봄꽃 속에 승경이 있었다
티끌 물들지 않은 천혜의 절경 _ 화순 물염적벽 백제의 자랑, 거대한 역사의 물둑 _ 김제 벽골제 옛 선비의 정신이 깃들인 초당 _ 부안 반계초당 작은 시내 위에 걸린 무지개 다리 _ 진도 남박다리 빼어난 경관에 정약전의 숨결이 서린 섬 _ 신안 흑산도 푸른 솔숲에 만발한 학화 _ 고흥 백로 도래지 선인들의 풍류 흐르는 유상곡수 _ 정읍 유상대 서해 용왕님을 달래는 더덩실 대동마당 _ 위도 띠배놀이 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서가 _ 부안 채석강 곧은 선비의 오롯한 기개 _ 함평 자산서원 여름마다 그리운 남도의 그 푸른 물빛 멍텅구리배 향수 배인 어항 _ 신안 전장포 눈부신 모래와 소나무의 섬 _ 여수 사도 하늘다리, 백사송림 가는 곳마다 선경 _ 진도 관매팔경 삼별초의 기개 선연한 왕궁터 _ 진도 항몽 유적지 은색 절벽, 쪽빛 창해에 뜬 동백림 _ 거문도 등대길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_ 벌교 승주 은빛 비단에 쏟아져 내리는 옥계수 _ 변산 직소폭포 달밤에 쌓아올린 돌탑의 염원 _ 진안 마이산 ?닻 올레라이 닻 올레라이? 어부사시사의 섬 _ 보길도 부용동 천년 자취를 간직한 역사박물관 _ 장흥 방촌 문화마을 황금 들녘의 풍요 안고 울긋불긋 단풍 들러 간다 섬진강 들녘을 지나 산사 가는 길 _ 구례 오산 사성암 순백한 선비의 정신이 깃들인 아치실 _ 장성 박수량 백비 망국 백제의 염원과 비원 _ 익산 미륵사터 조기 파시의 추억 오롯한 진달이섬 _ 영광 낙월도 감로차 훈향 흐르는 ?동다송?의 산실 _ 해남 두륜산 일지암 마을 지키는 무섭고 친근한 얼굴 _ 화순 벽나리 벅수 흰 눈발 속에 매운 향이 그립다 가깝고도 먼 천형의 섬 _ 고흥 소록도 구름 위에 지은 새들의 둥지 _ 구례 운조루 향 묻어 기원하던 고운 풍속 _ 영광 법성포 매향비 칼칼한 도학정신이 서린 사액서원 _ 순천 옥천서원 마지막 선비의 매운 향 그윽한 사당 _ 구례 매천사 '새야새야 파랑새야' _ 정읍 배들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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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저기 뒷산에 하얗게 널려 있는 것이 백설이냐, 백합이냐. 장관이었다. 진객을 뒤에 두고 헛폼만 잡았구나. 푸른 솔숲에 순백으로 만발한 학화(鶴花)는 철썩이는 해조음과 어울려 말 그대로의 선경을 빚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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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그냥 덩그러니 서 있는 밋밋한 바위에 불과하다. 황량한 벌판에 작은 둔덕이 있고… 옛 어른들이 마을의 기를 고르려고 마련한 선돌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돌 위에 가는 선의 얼굴 모양이 서서히 떠오르는데, 그것이 사람의 가슴을 쏴하게 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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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에도
남녘의 쪽빛 하늘이 그립다” 남도의 하늘빛, 물빛, 산빛… 역사 문화의 현장 그리고 흥그러운 정을 찾아서 돌이켜 보면 그 동안 무던히도 쏘다녔다. 20세에 신문사에 들어온 뒤 50세를 바라볼 때까지 한번의 외도도 없이 인쇄밥을 먹으면서 그 대부분의 세월을 문화부기자라는 명찰을 달고 살았다. 역마살이 끼었던지, 풍류기질이 거나했던지, 어쨌거나 책상머리에 진득이 붙어있지 못하고 일부러 건을 만들어서라도 그저 바깥으로 돌고 보는 게 그 동안의 고질이었다. 그렇다보니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았다. 그 중 하나씩만 예를 들자면 이른바 기자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밟을 기회를 스스로 내버린 결과를 가져왔고 그 대신 자칫 스치고 지나갈 뻔한 우리의 문화 얼을 골똘히 대면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려나 나는 우리 겨레가 나고 자란 이 산하를 헤매 돌며 거기 깃든 선인들의 이런 저런 체취를 맡는 게 그렇게나 행복하고 좋았다. 나는 무당기질이 있는 어머니와 일자무식 농군인 아버지 사이에서 딸도 없이 태어난 늦동이 외아들이었다. 산자수명한 물염적벽에서 금이야 옥이야 길러지면서 무엇이든 제멋대로 하는 조동 버릇이 붙었던 모양이다. 그런 성장내력이 검판사를 바라는 부모를 거역하고 느닷없이 목장주가 되겠다며 농대를 진학하는가 하면 그마저 때려치우고 신문기자로 변신하는 둥 천방지축 날뛰는 배경이 되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왜 부끄러운 출신성분을 꺼냈느냐 하면, 그렇게 형성된 충동적이고 감상적인 성정이 행여 우리네 문화나 예술이 품고 있는 '신명'이라는 것에 쉽게 반응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준 요인이 아니었나 하는 자가진단이 섰기 때문이다. 나는 외람되지만 문화는 '찾기'며 '읽기'며 '보기'만으로는 절대 깨우쳐지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느끼고' '어울리고' '전하고' 해야 진정한 깨우침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왁자한 풍물판을 만났는데도 어깨가 들썩여지지 않는다면 그는 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지녔다하더라도 참된 문화지기가 아니라고 나는 단정한다. 최소한 추임새라도 넣으며 판에 어울려들 공명을 얻은 연후에 문화 운운해야 옳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 이치가 요즘 많이 일탈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무슨 문화답사 붐이 불면서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에 대한 접촉이 어느 때보다 활발한데 예의 느끼고 어울리는 '동화'보다는 읽고 외우는 '습득'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 문화를 머리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온 몸으로 어울린 다음에 아들딸에게 이를 직접 손으로 전수해주어야 한다. 나는 역사와 풍물과 문화재와 민속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문화의 정체를 지식으로 전달하기보다는 그 문화의 속얼을 느낌으로 배달하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그러다 보니 그 어떤 문화를 만들고 베푸는 주인들과 실제로 어울려 생생한 난장을 체험하고 함께 뒹굴고 내력을 배움 받는 식으로 판이 진행되었다. 자연히 술도 늘고 알음도 많아지고 또 제법 솜씨도 갖기에 이르렀다. 그런 즉, 이 서투른 글에는 갈피마다 탁주 냄새가 진동하고 사투리가 두서없고 촌무지랭이들의 땀내가 끈할 것이다. 발품 들인 현장의 냄새라고 여기고 참아주시면 고맙겠다. 이 문화기행은 내가 몸담았던 광주일보사의 자매지 『월간예향』에 연재했던 글들을 간추려 묶은 것이다. (저자 서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