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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 5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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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시바 료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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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otaro Shiba,しば りょうたろう,司馬 遼太郞

오사카 외국어대학 몽골어과를 졸업했다. 학도병으로 전차부대에 들어가 도치기 현 사노(佐野)에서 종전을 맞았다. 신일본신문사(新日本新聞社)를 거쳐 산케이 신문사(産經新聞社)에서 근무했다. 신문사 재직 중에 데라우치 오요시(寺內大吉) 등과 동인지 『근대설화』를 창간했으며, 『올빼미의 성』(1959)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풍신의 문』(1961~1962) 등 전기성(傳奇性)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썼지만, 그 후 『료마가 간다』(1962~1966), 『성채('풍운의 성채'로 번역되었음)』(1969~1971) 등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 역사소설의 새 분야를 개척했
오사카 외국어대학 몽골어과를 졸업했다. 학도병으로 전차부대에 들어가 도치기 현 사노(佐野)에서 종전을 맞았다. 신일본신문사(新日本新聞社)를 거쳐 산케이 신문사(産經新聞社)에서 근무했다. 신문사 재직 중에 데라우치 오요시(寺內大吉) 등과 동인지 『근대설화』를 창간했으며, 『올빼미의 성』(1959)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풍신의 문』(1961~1962) 등 전기성(傳奇性)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썼지만, 그 후 『료마가 간다』(1962~1966), 『성채('풍운의 성채'로 번역되었음)』(1969~1971) 등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 역사소설의 새 분야를 개척했다. 그 외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기 정치가인 에토 신페이(江藤新平)의 비극을 다룬 『세월』(1968~1969),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생애를 그린 『화신』(1969~1971),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의 인간 군상을 통해 메이지 시대 일본의 여명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1968~1973) 등의 역작이 있다. 1976년 일본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살아생전 60종의 소설과 50종의 평론, 에세이, 대담집 등을 발간했으며, 그 중 베스트셀러가 12종, 1백만 부 이상 판매된 작품만 10종이 넘는 일본의 정신적 지주, 시바 료타로. 국가, 종교, 환경 등 전 분야에 걸친 깊이 있는 학문적 견해들 뿐 아니라, 역사소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후 이른바 일본의 단카이團塊 세대(60년대 학생 운동과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대표되는 혼란기를 살았으며, 7,80년대 경제 고도성장의 주역이 된 세대)들에게 일본이 나아갈 길과 일본인의 원형을 제시해준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소설를 집필할 때마다 ‘트럭 하나 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다이카 개신에서부터 근대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일본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녹아있어, 박진감 넘치는 일본사의 한 장면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역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묘사도 시바의 작품이 사랑받는 중요한 요인. 그의 업적을 기려 1998년에 문예, 학예, 저널리즘 분야에서 창조적 활동으로 주목을 끈 사람에게 수여되는 ‘시바 료타로 상’이 제정되었다. 역대 수상자로는 일본의 석학 '다치바나 다카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애니메이션 계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있다.

시바 료타로의 다른 상품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리츠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다. 옮긴 책으로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회복하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론』,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선생님의 가방』, 오에 겐자부로의 3부작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과 『세키가하라 전투』, 『신들의 마을』, 『이상한 소리』, 『라쇼몬』, 『시의 힘』, 『게 가공선』, 『이 몸은 고양이야』 등이 있다.

서은혜의 다른 상품

저자 :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
본명 후쿠다 사다이치 福田定一. 1923년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오사카 외국어대학 몽골어학과를 졸업하였다. 산케이 오사카 지사에 근무한 바 있고, 1955년 고단講談 구락부에 『페르시아의 환술사』를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올빼미의 성』으로 나오키直木 문학상, 1966년 『료마가 간다』로 일본 최고 문학상인 기쿠치 간菊池寬 상, 1972년 『가도街道를 가다』로 신초사新潮社 문학대상, 『세상에서 날마다』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문학상, 1987년 일본 예술원 은사상을 수상하였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상담역으로 추대되었고,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1996년 향년 73세로 사망하였으며, 1998년에는 시바 료타로 상이 제정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41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722113

출판사 리뷰

시바 료타로의 작품은 그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유명하다. 7, 80년대 일본의 지식인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선생이 역사소설을 집필할 당시에는 서재에 펜과 원고지뿐이었지만 시바 료타로 선생은 트럭 하나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 일본의 역사는 시바 선생이 가르친다.”

『세키가하라 전투』 역시 다르지 않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전국시대 말기의 2년 남짓한 기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시바 료타로는 이 짧은 시간적 배경 속에 고대의 다이카 개신에서부터 근대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녹여내면서 일본사 전체의 맥을 짚어내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인해 시바 료타로는 정해진 역사적 시각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었고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주변적 인물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가 사카모토 료마인데 시바 료타로의 작품 『료마가 간다』가 발간되기 이전의 사카모토 료마는 그저 교과서에 한두 줄 언급되는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역시 이시다 미쓰나리, 시마 사콘, 오타니 요시쓰구 등 역사적으로 주변적 인물로 치부되었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시바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역사상의 사건이 인간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묘사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친근한 것이 된다는 점에 있다. 4권에 등장하는 오야마 군회의 부분에서 이에야스는 이해관계에 따라 항상 다수의 편에 서려 하는 인간의 습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것은 시바 료타로의 현실적인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이 회의에서는 복잡하고 약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간군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야마우치 가즈토요와 호리오 다다우지의 일화를 보면서 자기 주변의 비슷한 인물을 떠올리는 독자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러한 시바 료타로의 특성에 대해 “때로는 니힐리스틱할 정도로 어두운 역사관의 예각을 인간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문장력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고 평했다.

추천평

세키가하라 전투는 단노우라壇浦 전투, 도바鳥羽·후시미伏見의 전투와 함께 일본 3대 전투로 불리는 대전투이다. 서기 1600년 일본 중부의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최대 실력자로 떠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어린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옹립한 이시다 미쓰나리가 각각 동군 8만, 서군 10만을 이끌고 격돌하였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의 중세와 근세를 나누는 분수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주가主家인 도요토미 가를 멸하고 에도에 막부를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역사는 약 500여 년 간의 기나긴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근세, 즉 이후 약 270년 간 이어지는 에도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당시까지 변방 지역으로 취급되었던 간토 지역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등장하는 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간토 지역은 일본인들의 인식 속에서 ‘오랑캐의 땅’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러던 것이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개설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중심 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의 간토와 간사이 간의 지역 감정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지금도 언어와 생활 습관, 사람의 성격이 많이 다르고 도쿄와 오사카를 축으로 한 서로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리뷰/한줄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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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리뷰 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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