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Foenk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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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추억들이 그를 따라다닌다.
어떤 방이든 물건 하나하나에 아내가 있다. 아파트의 공기는 여전히 아내가 숨 쉬던 그 공기. 그는 가구의 위치를 옮기고 모조리 뒤엎어버리고 싶다. 아니,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려야 할지도. 하지만 샬로테한테 그렇게 말하자, 아이는 거절한다. 엄만 일단 하늘나라에 도착하면 나한테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니까 여기 그냥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릴 찾지 못할 거예요, 소녀는 그렇게 말한다. 저녁마다 소녀는 창가에 앉아서 몇 시간씩 기다린다. 지평선은 어둡고 음울하다. 엄마의 편지가 길을 못 찾고 있는 건 그 때문일지 몰라. 여러 날이 흐른다, 아무런 소식도 없이 --- p.36 샬로테는 여러 주일에 걸쳐 여러 장의 정물화를 그린다. 독일어로는 정물화를 슈틸레벤, 즉, 침묵의 삶이라 한다. 침묵의 삶, 이 표현이야말로 샬로테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 샬로테는 자신의 느낌을 나타낼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그림은 점점 더 나아진다. 학습된 아카데미즘과 모던 스타일 사이의 길을 찾아낸다. 반 고흐에 깊이 경탄하고 샤갈을 발견한다. 에밀 놀데의 이런 글을 막 읽고 그를 존경해마지 않는다. --- p.78 여러 해를 두고 나는 기록해나갔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끊임없이 찾아서 봤다. 내 소설 중 몇몇에는 샬로테를 인용하거나 그녀를 회상했다. 이 책을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펜을 들고 시도했다가 이내 포기했다. 연이어 두 문장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마다 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도무지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감각, 어떤 억누름이었다. 나는 절감했다, 숨이라도 쉬려면 다음 줄로 넘어가야 해! 그래서 그것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 p.90 알프렛은 샬로테의 뺨에 손을 갖다 댄다. 그리곤 말한다, 고마워. 너의 그 그림들, 고마워. 순진하고, 거칠고, 미완성이긴 하지만. 거기 담긴 약속의 힘 때문에 그 그림들이 좋아. 그걸 보면서 너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좋아. 일종의 상실을, 그리고 불안을 느꼈어. 어쩌면 심지어 어떤 광기의 시작이라고 할까. 부드럽고 온순한, 슬기롭고 다소곳한, 그러나 생생한 광기. 자, 그래.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그거야. 우린 아주 아름다운 시작이야. --- p.116 우리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해줘야 해. 너무 늦기 전에. 어떤 그림들은 거친 스케치에 좀 더 가깝다. 샬로테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내달리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를 위한 이런 광란의 상태에는 숨이 막힌다.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이루어진 창조. 두려움에 빼빼 마른 은둔의 샬로테는 스스로를 잊고 몰두한다. --- p.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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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을 잘 부탁해요, 내 삶의 전부니까!”
그녀의 그렇게 자신의 삶을 뒤로 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스러져갔다. ★2014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르노도(Prix Renaudot) 수상 ★2014년 공쿠르 데 리세앙(Goncourt des Lyceens) 수상 이 소설은 샬로테 잘로몬의 생애에 영감을 얻어 태어났다. 주인공 샬로테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소설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인 1913년부터 생을 마감한 1943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샬로테는 할머니와 엄마, 이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족사적인 비극과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유대인에 대한 핍박을 감내해야하는 시대적인 비극을 직면해야 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유대인에 대한 폭압은 그녀의 모든 인생을 뒤흔들었다. 그림에 대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베를린예술대학교)도 포기하도록 만들었고,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알프렛과의 첫사랑도 어긋나게 만들었다. 수용소 행을 피하기 위해서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프랑스로 피했지만, 그곳 역시 유대인인 그녀에게 또 다른 핍박을 가할 뿐이었다. 시대가 가하는 일련의 폭력 속에서 샬로테는 그림이라는 탈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숨조차 쉬기 어려운’ 창조에 몰입했고, ‘삶인가? 아니면 연극인가?’ 라는 제목의 연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일련의 창조를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가족의 자살과 자신도 언젠가는 똑같은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강박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비극은 피해가지 못했다.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내몰렸고, 결국 거기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