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1. 천하제일의 참선 암자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 벽송사 천하제일의 참선하기 좋은 곳, 상무주암 일곱 왕자가 성불한 구름 위의 집, 칠불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백장암 2. 지리산 제일의 전망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금대암 지리산 최고의 텃밭, 원통암 지리산과 섬진강을 한눈에 조망하는 고승들의 수행처, 사성암 절로 도가 트일 만한 땅, 문수암 3. 하늘이 감춘 은둔의 땅 선승들이 평생 꼭 한 번 가보길 바란 곳, 묘향대 불국토 지리산이 감춘 곳, 문수대 지리산 오지 암자의 수행자, 우번대 푸른 눈의 스님이 찾은 지리산 오지 암자, 상선암 4. 지리산의 별천지 지리산 속 제일의 절, 영원사 모과나무의 소신공양, 구층암 중국 선승의 머리를 묻다, 국사암 아득히 구름 끝에 매달린 풍경, 불일암 5. 피안으로 가는 길 지리산 원혼을 달래다, 서암정사 자신 속의 삼신불을 보라, 삼불사 지리산의 신비, 문창대는 과연 어디인가, 법계사 굽이치는 섬진강을 굽어보는 피안의 땅, 연기암 가는 길 6. 잃어버린 암자를 찾아 절벽에 남은 전설의 마애불, 개령암지 잃어버린 암자를 찾아서, 천불암과 향적사 에필로그 부록 지리산 암자 탐방 지도 |
김천령
김종길의 다른 상품
|
벽송사에는 예전에 두어 번 온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세가 제법 커진 것 같았다. 전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입구의 널따란 바위 위에 서면 벽송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그루의 전나무가 벽송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셈이다. 맨 아래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청허당과 안국당이 마주하고 있고, 두 벌의 높은 축대를 오르면 선방인 ‘벽송선원’이 양옆으로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를 품고 있다. 선방 뒤로 원통전이 있고 그 옆으로 산신각이 있다. 원통전 뒤에는 벽송사의 상징이 된 도인송과 미인송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도인송은 꼿꼿한 데 비해 미인송은 비스듬히 몸을 젖히고 있다.
_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물한다, 벽송사(15~16쪽) 슬레이트 지붕에 두 짝의 문이 달린 지극히 간소한 건물. 색색 연꽃을 그리고, 기름한 널빤지에 세로로 내려쓴 ‘다불유시多弗留是’라는 네 자가 눈에 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문을 열어볼까 하다가 무언가 영적인 곳이지 않을까 싶어 머뭇거리기를 한참, 종무소로 다시 나왔다. 마침 공양주 보살이 떡이라도 좀 들지 않겠냐고 해서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궁금하시죠? 그거요. 이곳 백장암의 명물이랍니다.” “아무래도 알 수가 없네요…….” 공양주 보살이 잠시 뜸을 들인다. 답답해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해우소입니다.” “예? 아…… 그렇군요.” 허를 찔렸다. 바로 옆에 해우소가 있어 설마 해우소일까 했는데……. “스님들의 재치가 놀랍지요?” “근데 해우소에 왜 ‘다불유시’라고 적었을까요?” “아이 참, 아직 감을 못 잡으셨나? 영어로 해우소를 ‘더블유시(WC)’라 하잖아요. 그 ‘더블유시’를 한자로 표현하니 ‘다불유시’가 된 게지요. 자연스럽게 의미도 연결시킨 거구요. 스님이니 당연히 부처님을 떠올리면서 이름을 지었겠죠.” _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백장암(58~60쪽) 자기에게 전념하고 자기의 깊은 내부를 들여다보는 수행 방식은 얼핏 보기에 다른 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람이란 자기의 내부에 깊이 침잠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대승불교에서는 먼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자리自利’로 진리를 확고히 한 다음에 남을 구제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이타利他’행을 실천하는 것을 붓다의 뜻으로 보고 있다. 붓다도 처음 그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출가는 많은 사람을 구제한 셈이다. 결국 상구보리의 길이 하화중생의 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산중 꽃은 저 혼자 피지만 그 꽃향기는 산 아래로 흐른다고 하지 않는가. _선승들이 평생 꼭 한 번 가보길 바랐던 곳, 묘향대(128~131쪽) 문수대는 50미터가 넘는 아찔한 벼랑 아래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육산肉山에는 바위가 있는 곳이, 골산骨山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이 기운이 모인다고 했다. 문수대는 육산인 지리산의 바위 벼랑 아래 부드러운 대지에 터를 잡았으니 애써 명당이라 말할 필요가 없다. 한두 사람이 머물기에는 물도, 땅도 넉넉하니 예부터 수도하기에 좋았던 것이다. 지금도 화엄사의 스님이 이곳에서 수도 중이다. 이곳에 암자가 처음 들어선 건 1803년경 화엄사의 초운대사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자세한 내력은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 고요한 암자도 지리산의 아픈 역사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문수대가 역사에 드러난 건 구한말 지리산 일대에서 일어난 항일의병 활동 때문이다. 한때 의병 1,700명을 이끌던 의병장 김동신이 이곳 문수대 일대를 근거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것이다. _불국토 지리산이 감춘 곳, 문수대(141~142쪽) 수행이 끝나고 당시 상선암 주지였던 지인스님으로부터 지리산의 빨치산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지리산과 빨치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현각스님은 피로 얼룩진 지리산의 역사를 듣고 매우 놀란다. 마침 옆에 있던 화엄사 스님 한 분이, 사람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을 때 누군가 열심히 염불을 해주면 그들의 영혼이 자유로워진다고 말한다. 현각스님은 자신의 염불 기도가 빨치산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는 신비로운 일을 체험한 것이다. 상선암에서의 그의 철저한 수행 생활은 천은사 스님들에게도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인 스님이 한국에 와서, 그것도 지리산 깊숙한 천은사에서도 한참 떨어진 암자의 토굴에서 용맹 정진한 사실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_푸른 눈의 스님이 찾은 지리산 오지 암자, 상선암(168쪽) 이 승방에는 구층암을 대표하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다. 모과나무 기둥이다. 직접 보고 나면 그 기이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떠한 인위적인 조작도 없이 살아 있던 모습 그대로의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서까래와 지붕을 얹어 집을 지었다. 나무의 생김새대로 천연덕스러운 기둥을 세운 것은 서산 개심사 종루나 안성 청룡사 대웅전 등 우리 옛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대패질조차 하지 않고 최소한의 손질도 하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쓴 이 무심의 경지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죽은 모과나무를 그대로 쓴 목수도 능청스럽지만 그것을 허락한 스님의 안목은 또 얼마나 통 큰가. _모과나무의 소신공양, 구층암(191~192쪽) 연기암이 자리한 곳은 해발 530고지. 지리산 암자치고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세상으로부터 한참이나 들어온 깊숙한 곳이다. 이곳에 서면 산자락 끝으로 멀리 구례 들판과 그 들판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가는 유장한 섬진강을 볼 수 있다. 연기암의 건물은 마치 저 멀리 있는 섬진강을 염두에 둔 듯 일제히 강을 향해 서 있다. 산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큰 암자 건물이 다소 생경스럽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아득한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피안의 세계가 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일 거라고 누구든 말할 것이다. _굽이치는 섬진강을 굽어보는 피안의 땅, 연기암 가는 길(268쪽) __본문 중에서 |
|
지리산이 숨겨둔 암자에 가까워질수록
내게 이르는 고요한 자유의 길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인문여행 에세이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 암자 기행〉을 책으로 만나다 10년 넘게 지리산 암자 50여 곳을 모두 탐방한 저자가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품고 있는 23곳의 암자를 배경으로 ‘참나’를 구하는 고요한 자유의 길을 모색한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금대암과 유장한 섬진강을 굽어보는 연기암이 인간 세상을 잊게 만드는 비경으로 피안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천혜의 보고로서의 지리산을 펼쳐보인다면, 푸른 눈의 현각스님이 수행했던 상선암, 오지 중 오지에 있지만 선승들의 수행처로 이름이 높은 묘향대는 번다한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처로서의 지리산을 드러낸다. 이 책은 저자가 2014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1년간 《오마이뉴스》에 필명으로 연재한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 암자 기행〉을 수정 및 보완한 것으로, 지리산 암자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이다. 최고의 절경을 찾아서 이 책에서 저자도 다수 인용하듯 옛 선현들은 많은 수의 지리산 유람기를 남겼다.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지리산으로 모여들어 보고 느낀 바를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극히 아름다운 절경’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금대 지리’라고 불릴 만큼 금대암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풍경은 최고로 꼽힌다. 저자에 따르면 ‘금빛 연화대’(연화대는 부처상을 앉히는 자리를 뜻한다)에서 ‘금대’라는 이름이 비롯될 정도로 그 풍경이 장엄하고도 미려했던바, 금대암만큼 조선 시대 지리산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암자도 드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연기암에 서서 굽이치는 섬진강을 굽어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흡사 피안의 세계를 마주한 듯 고즈넉하면서도 웅숭깊은 편안함이 스며든다. 일상 밖 작은 수행의 공간 20여 년 전, 한국 불교에 귀의해 ‘서양인 승려’라는 이색적인 풍경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푸른 눈의 구도자 현각스님, 그가 한국에 머물 때 수행했던 곳이 바로 지리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천은사에서도 한참 떨어진 상선암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상선암에서 수행하던 현각스님이 자신의 염불 기도로 지리산에서 죽임을 당했던 빨치산의 영혼을 달래주는 신비로운 체험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그곳 스님에게서 전해듣는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찾는 일상 밖 작은 수행의 공간이 시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깨달음의 장소로 변화한 것이리라. 삼불사에서 저자는 누구나 부처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다시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모든 것은 ‘저기’가 아닌 ‘여기’, 자신에게 있다.”(242쪽) 민족의 역사가 깃든 암자 책은 지리산의 역사가 우리네 삶의 역사임을 자주 상기시킨다. 그 역사에는 특히 지배에 대한 저항, 중심에 대한 변방의 정신이 지리산 속 암자에 서려 있다. 해인사의 말사인 법계사는 고려 말에는 왜군에 의해, 대한제국 시기에는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탔다가 중창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천왕봉 부근의 천불암은 동학농민혁명 때 부상병 치료소이자 한국전쟁 중에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이었다. 본래 지리산은 왕실과 귀족의 무대가 아니라 지방 호족과 민초의 터전으로 면면히 세월을 이겨내왔다. 산세가 험해 수행을 위한 은둔의 땅이기도 했지만, 민란 세력이나 의병 혹은 화전민이나 유민 들까지 저항과 생존을 위해 굽이굽이 이어진 지리 능선 아래로 모여든 것이다. 그리하여 지리산 암자는 불교적 깨달음의 공간이 되는 동시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까지 품는 인문의 산이 된다. 지리산 암자만을 다룬 첫 책 이 책은 오로지 지리산 암자만을 대상으로 한 첫 단행본이다. 외딴곳에서 40년 넘게 홀로 수도하는 스님에게서 듣는 우번대의 유래, 살아 있던 모습 그대로의 모과나무를 구층암 승방의 기둥으로 쓴 무심의 경지가 일깨우는 자연의 멋. 단순히 스치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닌 경건한 수행자의 마음이 묻어 있는 기행문은 지리산 암자의 유래나 스님들에게서 직접 전해들은 암자의 전설을 놓치지 않는다. 번다한 세계 바깥에 점점 자리한 지리산 암자에서 불어오는 담박한 풍경 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