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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지리산 화개동 화개동 / 화개동의 동천들 / 무릉도원 무릉도원의 초입, 화개동천 시냇물에 떠내려온 복사꽃잎 / 꽃이 핀 세상의 별천지 / 은군자의 땅 은군자의 땅, 부춘동천과 덕은동천 한유한의 부춘동 / 취적대의 감회 / 정여창의 덕은동 / 악양정의 감회 / 조식이 만난 세 사람 신선의 세계, 쌍계동천과 청학동천 쌍계사 / 유람객의 시선 / 쌍계석문의 글씨 / 진감선사비의 감회 / 최치원 회고 / 금당 이야기 / 쌍계사의 감회 / 청학동을 찾아서 승려들의 수도처, 삼신동천 삼신동 / 지리산에서 가장 빼어난 신흥사 / 의신조사가 도를 닦던 의신사 / 영험한 기운이 서린 영신사 / 서산대사가 은거한 내은적암 / 일곱 사람이 성불한 칠불사 오래된 미래, 화개동 한국인의 영원한 이상향 / 화개동의 오늘과 내일 부록 화개동 사람들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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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동은 자연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게 깃들어 있다. 지리산 권역의 다른 어느 동천보다 풍부한 문화와 전설을 간직한 골짜기다. 따라서 이 화개동에 투영되어 있는 예전 사람들의 정서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보는 것은 이 공간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일은 화개동이 내포하고 있는 이미지를 발굴하고 문화원형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 p.20
유몽인은 의신사에 들렀다가 신흥사로 내려오는 계곡을 홍류동(紅流洞)으로 칭하고 있다. 그는 홍류동의 명칭에 대해 “이른바 ‘홍류(紅流)’란 사영운(謝靈運)의 시 ‘돌층계에서 붉은 샘물 쏟아지네[石?射紅泉]’라는 구절에서 취한 것인데,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홍천(紅泉)은 단사(丹砂)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니 홍류라는 이름은 선가(仙家)의 책에서 유래된 것이다’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홍류라는 명칭을 신선 사상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설이 있는가 하면, 글자 그대로 풀이하여 ‘붉은 꽃잎이 떠가는 시내’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 p.50 최치원은 화개동을 별유천(別有天)이라고 했고, 다시 그곳을 신선 세계라고 하였다. 별유천은 ‘별도로 하나의 하늘이 있는 곳’이라는 말이니,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선인이 살고 있다. 최치원의 이 한마디 평으로 화개동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단언컨대 자연경관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화개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별천지이고 최고의 신선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누구나 와서 불화와 갈등을 풀 수 있는 곳으로 그 장소적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 p.53 1748년 4월 쌍계사를 유람한 이주대(李柱大, 1689~1755)는 “절이 본래는 크고 화려하였으나 매우 퇴락하였다. 말로에는 좋은 곳이 하나도 없으니, 또한 깊은 산속에서도 그렇다는 말인가?”라고 하여 쌍계사가 매우 퇴락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18세기는 불교가 가장 위축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법맥도 겨우겨우 이어질 정도였으며, 사찰을 유지하고 보수할 여력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응윤(應允)이 지은 「중록쌍계사사적기」를 보면, 18세기 폐허가 된 쌍계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 p. 144 서산대사는 유교와 불교의 사상적 차이에 주목하지 않고, 유교와 불교를 회통한 경지에서 최치원과 진감선사의 정신적 교유를 중시하면서 아울러 이 두 사람이 세속을 떠나 진리의 세계에서 온전한 삶을 추구한 점에 시선을 두고 있다. 특히 유교와 불교의 허명에서 벗어나 천지의 크고 온전한 도를 즐겼다는 점은 이들의 정신적 지향이 세속적 가치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진감선사는 850년에 입적하고, 최치원은 857년에 태어났으니 두 사람은 실제로 이 세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사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진감선사의 삶을 비문으로 쓰면서 그 마음을 알아주었으니, 서산은 두 사람의 마음을 무현금에 비유한 것이다. --- p.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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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옥보고, 한유한, 정여창, 진감선사, 서산대사 등이 찬양한
현실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무릉도원 무엇이 그들을 여기에 머무르게 했는가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화개동을 유람하며 선인들의 위대함을 노래하다! 이 책은 지리산 화개동을 유람하고, 은거하고, 수도한 한국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노래한 시와 글귀로 이곳의 지리적?문화적 특징을 규명한다. 지리산 화개동과 사랑에 빠져 이곳에 기거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서산대사와 최치원 그리고 그들이 자연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 나선 많은 후대의 문인들, 시간을 넘나들며 이곳을 여행하고 그리워한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1558년 화개동을 유람한 조식은 「유류두록」을 남겼는데,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의 유람이 아름다운 산과 물을 보면서 즐거웠던 점이 많았지만, 그 보다는 부춘동에서 한유한을 만나고, 덕은동에서 정여창을 만나고, 옥종 정수역에서 조지서를 만난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물을 보고 산을 보았으며, 그 산수 속에서 고인을 만났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았다”고 하였다. 또한 불교음악의 발원지 칠불사, 최치원이 학을 불러 타고 갔다는 청학동, 고려 시대 한유한이 속세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와 은거한 부춘동천 등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 수많은 화개동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을 그 시대 무릉도원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저자는 화개동 일대에 널리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닌 설화들을 바로잡고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화개동의 역사문화적인 실체를 밝히고 제대로 된 가치를 조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는 화개동을 과거의 역사문화적 공간으로 재편했는데 같은 문화권을 공유하는 ‘동천문화’ 개념이 그것이다. 화개동천은 산이 빙 둘러 있고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니까 화개동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골짜기를 중심으로 작은 동을 다시 동천 개념으로 분류하면 화개동천, 부춘동천과 덕은동천, 쌍계동천과 청학동천 그리고 삼신동천으로 나뉘는 것이다.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화개동천 화개동천은 예부터 현실 세계와 떨어져 있는 때 묻지 않고 깨끗한 구역이며, 또 신선이 살고 있는 세계이며, 권력의 억압이 미치지 않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낙토(樂土)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꼭 한 번 가서 흉금을 상쾌하게 하고, 세속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고 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화개장은 화개동으로 들어가는 동구로서 그 안에 삼신동천, 쌍계동천, 청학동천 등 신선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다 화개동천 바로 아래에 조선 전기 유학자 정여창(鄭汝昌)이 은거하여 독서한 악양정(岳陽亭)이 있고, 그 아래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은자 한유한(韓惟漢)의 은거지 부춘동천이 있다. 그러니 이곳을 유람하는 사람들은 화개동천에 이르러 특별한 설렘과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꽃이 사방 언덕에 피어있고,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도화원(桃花園)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곳 또한 화개동천이다. 이 곳은 쌍계동천, 청학동천, 삼신동천 등의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초입의 이미지, 별천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현실 세계와 구별되는 이미지를 가지며 화개동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학을 불러 타고 간 ‘청정 구역’ 진감선사가 중국 선불교를 들여와 이 땅에 퍼뜨린 곳인 쌍계사가 있는 곳이 쌍계동천이다. 이 곳은 우리나라 선불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유학자의 관점으로 보면, 고운 최치원이 만년에 은거한 곳으로, 그의 필적과 비문, 영정과 거쳐하던 공간이 남아 있는 곳이다. 화개동에 전해 오는 전설에는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지리산에 살아 있다는 신선의 이미지가 더 크다. 청학동은 ‘푸른 학이 사는 골짜기’이다. 학은 신선이 벗하는 동물이다. 신선이 사는 신선세계는 한마디로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 구역을 의미한다. 후대 문인들은 쌍계동과 청학동에서 신선 세계의 청정함을 느끼면서 최치원의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느꼈던 것이다. 흔적만 남아있는 선인들과 승려의 수도처 화개동은 선인들과 승려들의 수도처이기도 하다. 삼신동은 지리산 주능선 영신봉 밑에 있던 영신사(靈神寺), 의신마을에 있던 의신사(義神寺), 범왕리에 있던 신흥사(神興寺), 이 세 사찰이 있어 삼신동으로 불렸다. 삼신동 구역에는 영신사, 의신사, 신흥사뿐만 아니라, 서산대사가 머물던 내은적암, 일곱 사람이 성불했다는 칠불사 등 이름난 사찰이 많다. 따라서 이곳은 신선과 승려들이 사는 선계(仙界)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지리산 주능선 아래 깊숙한 골짜기에 있는 이 동천은 속인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는 청정한 곳이니, 선인과 승려의 수도처로서는 최적지이다. 끝으로 화개동 하면 사람들은 화개장터와 쌍계사 십리벚꽃길만 떠올린다. 화개동은 더 이상 무릉도원이나 별천지의 이미지를 갖지 못한다. 저자는 옛 기상에 미치지 못하는 오늘날 화개동의 현실을 우려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부춘동과 덕은동에서 유학자들이 은거하여 지조를 지키거나 독서를 하며 수양한 곳으로서의 은거문화, 화개동에서 속세와 떨어진 무릉도원의 이미지, 쌍계동과 청학동에서 신선 세계의 청정한 이미지, 삼신동에서 선인과 승려들이 수도를 하여 득도한 수도처로서의 이미지를 화개동의 네 가지 문화원형으로 보고 이를 지키고 알려나갈 것을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