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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dal 1 멋지게 그을린 아프리칸 걸
scandal 2 마다가스카르까지 아직 십억 년 scandal 3 혹시 강도를 만나더라도, 다 같이 '살람마' scandal 4 혼자 와서, 정말 다행이야 scandal 5 이오시의 동화 scandal 6 내가 피자를 사줘도 될까요? scandal 7 새까맣고 기분 좋은 내가 있었다 에필로그를 위한 방콕 aftern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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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이란 경험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섹스나 마약이나 죽음처럼 말이다. 나는 포르트돌팡, 피아나란추아, 디에고 슈레즈, 마하장가 같은 낯선 이름의 도시를 헤매다 어느새 길을 잃곤 했다. 지도와 방위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론니 플래닛의 알파벳 밑으로 밑줄이 빽빽이 쳐졌지만 나는 마다가스카르에 대해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삶은 설명문이 아니다. 막막함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세상이 스타크래프트의 초기 맵처럼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다짐했다. 이곳이 안전하고 저곳에 저글 떼가 잠복해 있을지라도, 나는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 pp.20-21 멋지게 그을린 아프리칸 걸 계단의 난간 사이로 P와 대화하고 있는 천사가 보였다. 천사는 가슴 부분이 주황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검은색인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고, 옆구리에는 빨간 헬멧을 끼고 있었다. 짧고 검은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지만 눈썹과 얼굴선이 단호하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어딘지 사람의 마음을 끄는 얼굴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 얼굴을 훔쳐보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손거울을 바라보았다. 슬플 정도로 정직한 맨얼굴. 모공은 넓고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부가 푸석푸석하다. 게다가 두꺼운 뿔테 안경까지 끼고 있다. 몇 년 전 다큐멘터리에 나온 모델의 화장기 없는 예쁜 얼굴을 본 뒤로 ‘아프리카에선 맨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맨얼굴에 티셔츠를 대충 걸쳐도 진흙탕 속의 진주처럼 빛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런 여자들이 진짜 미녀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진흙탕 속에 빠지면 그냥 진흙으로 보일 뿐이다. 질퍽질퍽하고 초라해서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한다. ‘웬 진흙덩이가 여기 있네?’ 하고 신기한 마음에 발로 툭 걷어차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배낭을 뒤지며 여행자답지 않은 상상을 했다. 쓸데없는 맥가이버 칼 대신 마스카라를, 휴대용 정수기 대신 메이크업 베이스를, 윈드브레이커 대신 가벼운 원피스를 가져왔다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하고 중얼거리며 뿔테 안경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주황색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방을 나섰다. “봉주르? 앙샹테, 즈마펠 진(안녕? 반가워요. 진이라고 해요).” 나는 천사 앞에서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사는 “파흐동(뭐라구요)?” 하고 귀를 종긋 세우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상냥한 태도로 “봉주르” 하고 인사했다. 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 pp.65-66 마다가스카르까지 아직 십억 년 아침 늦게 눈을 떴지만 방은 어두침침했다. 담요처럼 두꺼운 커튼이 햇살을 차단했다. 알람소리도, 오전 수업도, 눈부신 아침햇살도, 부담감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당황스러워서 일찍 일어났다. '여행'이라고 하면 신나고 즐거운 일이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떠나보면 그렇지도 않다. 매일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장엄한 풍경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벽지에 장미가 몇 개나 되는지 셀 수도 있다. 신나고 즐겁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여행자의 유일한 의무이다. --- p.99 혹시 강도를 만나더라도 다 같이 ‘살람마’ 그 여자애는 분명 나를 보고 있었다. 맨발에, 커다랗고 붉은 꽃이 수놓아진 찢어진 치마, 수줍은 미소. 다른 아이들은 전부 뺨이 발그스레한 은발의 할머니가 사탕을 뿌려대는 창가에 몰려들었다. 오직 그 아이만이 멀찍이서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제가 보고 있는 건 당신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듯 활짝 웃었다. 아이가 웃을 때마다 빨갛고 예쁜 바나나 꽃이 얼굴에 피었다. 나는 아이의 시선을 외면한 채 고개를 숙여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읽었다. 두 페이지쯤 더 읽은 후 창밖을 다시 보았다. 아직도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비 내리는 오후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강아지를 보는 것처럼, 차마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나는 사탕도 펜도 과자도 없어서 신맛 나는 빨간 열매를 들고 기차에서 내렸다. 여자애가 '나예요, 저 외국인이 찾는 사람은 바로 나예요'라는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나는 싱긋 웃으며 열매를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애는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붉은 열매를 받아서 숲속으로 집어던졌다. 서양인들이 기차 안에서 쳐다보고 있어서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녀를 지나쳐 역으로 갔다. 사실은 등에서 식은땀이 2리터는 흐르고 있었다. 역에서는 엄마와 함께 서 있는 조그만 남자애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거 줘, 라는 말을 하듯. “이게 먹고 싶다고?” 나는 자상하고 아이를 좋아하는 외국인인 척 몸을 구부려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빨간 과일을 내밀었다. 아까 외면당한 충격을 이 아이한테서 보상받고 싶었다. 남자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고는 내 목에 걸린 MP3를 덥석 잡았다. “이거 줘.” 나는 털썩 쓰러질 것 같았다. 기차로 돌아오니 아까 그 여자애가 이번엔 미국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앞자리의 커플 중 한 명인 금발의 미국 여자이다.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창밖으로 프랑스산 주황색 BIC 펜을 던졌다. 펜을 주은 아이가 이번에는 활짝 웃었다. 열차가 떠날 때까지 언제까지고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국 여자도 남자친구로 보이는 짧은 갈색 머리의 어깨에 기대어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 pp.137-138 혼자 와서, 정말 다행이야 “새까맣게 탔네, 탔어.” P는 혀를 끌끌 차면서 즐거워했다. 회색 실내화를 신고, 면바지와 셔츠는 구김 하나 없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곱슬머리도 여전하다. 그는 내 여행보다는 아프리카적인 내 피부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5년 동안 여기서 산 나보다 더 까매질 수 있는 거죠? 마다가스카르인과 별 차이가 없네요.” “까매서 예쁘지 않아요?” 나는 새까만 피부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내 여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마나카라의 태양과 이오시의 태양, 포르트돌팡의 태양이 내 피부뿐 아니라 영혼도 건강하게 그을려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 p.224 내가 피자를 사줘도 될까요? 카엘의 사촌 형제들이 바비큐를 굽고 있어. 몸집이 작은 마다가스카르인은 카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한글로 ‘요르단 운동’이라고 적힌 바지를 입고 왔어. 내가 그걸 지적하니까, 카엘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어. “글쎄, 나도 모르겠어.” “한글인데 왜 몰라?” “아마 기독교적인 운동일 거야.” “그게 뭔데?” “나도 모른다니까!” --- p.240 내 마다가스카르 친구를 소개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왼쪽 뺨과 오른쪽 뺨에 입을 맞췄고, 그리고 다시 왼쪽 뺨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가 내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 났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처럼 귓속이 시끄러웠다. 멀리서 공항 안전요원이 “방콕행 비행기에 빨리 탑승하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입술을 떼자 그가 내 귓가에 “주 뗌므.”라고 속삭였다. 동굴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주 뗌므’가 오랫동안 몸 안에서 방향 없이 메아리쳤다. “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가 간절한 눈으로 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안녕히. 수속을 밟는 동안 유리벽 너머로 바라보는 눈길이 등에 느껴졌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고 그대로 비행기를 향해 걸어갔다. 한국에서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든가 “과연 여행이 재밌을까?”라는 의문이 빨간 모자의 할머니로 분장한 늑대의 꼬리처럼 줄줄 따라다녔다. 그러나 무사히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했다. 험한 길에서 사흘 내내 버스를 탄 적도 있었고, 바퀴벌레와 같이 잠들기도 했다. 눈물을 흘릴 만큼 외로운 밤이 있었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을 출 정도로 즐거운 낮도 있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웃는 얼굴이 근사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이로써 해피엔딩인가? 아니다. 해피엔딩은 상황이 모두 좋아진 타이밍을 포착해서 허겁지겁 끝내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마지막 페이지 너머로 불행이 폭풍우처럼 몰려올지 모른다. 폭풍우가 아니더라도, 나의 배는 높거나 낮은 파도로 항상 출렁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항해가 무섭다고 여겨질 때, 나는 마다가스카르의 바닷가를 기억하리라. 그곳에선 파도가 흥얼거리듯 다가왔고, 태양이 소프라노의 곡을 불렀으며, 야자수들이 코러스를 넣듯 흔들거렸고, 이어폰을 낀 채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던 새까맣고 기분 좋은 내가 있었다. --- p.311 새까맣고 기분 좋은 내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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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마다가스카르에서 벌어지는 여행자의 두근두근 로맨스
아프리칸 걸이 되고 싶었던 Jin, 사랑에 빠지다 재수생 시절 우연히 보게 된 TV 속의 아프리카. 금발의 미녀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단숨에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후 여대생의 3년이 흘렀고, 졸업을 앞두고 마치 재수 시절처럼 막막하기만 할 때, Jin은 그때의 아프리카를 떠올렸다. 마다가스카르로 떠난 Jin은-물론 로맨스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여행지는 유럽도 아니고 아프리카도 아닌 아프리카 섬나라였던 것이다- 예고 없이 불쑥 다가온 현지인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린다. 한국을 떠난 지 1주일만의 일이다. ‘붉은 땅과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멋진 아프리칸 걸’이 되겠다는 결심 하나로 재수 시절을 버텼고, 취업을 앞둔 불안한 시기에 용기를 내 그 결심을 실천하려던 참이었다. 뭔가 거창한 여행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춘기 소녀마냥 ‘팡’ 하고 한순간에 터지는 연애는 목록에 없던 것. 스물넷의 풋풋한 여행자는 목록에 없던 ‘로맨스 여행’을 시작한다. 스물넷의 눈으로 바라본 마다가스카르에 달콤한 여행 스캔들이 곁들여졌다. 어쭙잖은 밀고 당기기에, 질투심 유발, 토라지기, 바닐라 맛 키스...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는 독자는 마치 로맨스 소설을 읽듯, 친구의 연애 상담을 해주듯 결말을 기대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스물넷 Jin이 바라본 날 것 그대로의 마다가스카르 어린왕자와 바오밥나무가 아니었다면 마다가스카르의 인지도는 0%에 가깝지 않을까. 안다 하더라도 ‘로맨틱한 이름을 가진 섬나라’ ‘아프리카 근처의 어느 곳’ 정도로 희미하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소위 ‘오지’를 다녀온 여행자는 질척한 미개발국의 현실을 뻔한 어투로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오지여행자의 착각에 빠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를 보여주는데 급급하지 않고,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 없이 한국인 친구를 만나듯 마다가스카르인들을 만났고 그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졌다. Jin의 여행이 이목을 끄는 건 스물넷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마다가스카르를 써냈다는 점 때문이다. 편견 없는 눈으로 본 Jin의 마다가스카르는 2박3일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바퀴벌레와 함께 잠들어야 하는 질척한 나라이고, 가슴이 콩닥거리는 길 위의 로맨스를 만들어 간 곳이다. 백일장 헌터의 글 맛 나는 여행 에세이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백일장 대필 아르바이트 했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업(?)으로 하는 발랄한 여대생의 여행기는 남다르다. 요즘 출간되는 뭇 여행서들이 현란한 사진과 편집으로 자극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이 책은 그녀의 특별한 마다가스카르 여행과 연애담을 위트 있는 문체로 풀어내, 글 자체로 독자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사춘기 소녀처럼 발랄하고 엉뚱하면서, 때론 지나치게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는 문장들은 《호텔 마다가스카르》의 가장 큰 미덕이다. 10~20대 독자라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비유와 표현에, 30~40대 독자는 스물넷의 재기 발랄함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사진의 힘에 기댄 여행기가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Jin의 ‘글 맛 나는 여행기’는 특별한 여행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한 장의 사진보다 힘 있는 한 문장이 미지의 나라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상상력을 무한으로 확장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