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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임을 알리는 표석과 시비가 있다. 언덕을 둘러싼 울타리에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손때가 많이 탄 곳은 되려 깨끗하고 부드럽다. 형상이 남아있지 않아도 시인의 시는 자연스레 읽힌다. 원체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시였다. 손끝으로 울타리를 훑어가다 길이 아닌 곳에 발을 디뎠다. 낯선 발소리에 놀란 새들 이 허겁지겁 하늘로 흩어졌다. 규모는 작지만, 시와 풍경이 어우러진 산책로는 사람들의 발길로 풍성하다.
---「윤동주」중에서 한창이어서인지 낮의 메밀꽃도 소금을 뿌린 듯 새하얗다. 앙증맞은 벤치들과 조형물은 광활한 흰 물결 사이에서 제 몸을 내밀며 재미를 더한다. 메밀꽃은 하얗고, 열매와 줄기는 빨갛지만 열매가 다 익게 되면 검게 변한다. 이파리는 초록이고, 뿌리는 노랗다. 멀리서 보면 하얀색 밭이지만 가까이 보면 많은 색이 숨어있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이효석」중에서 얼굴의 주근깨가 도드라졌다. 잠시 멈추었던 일상의 시계를 돌려야 할 때다. 여행은 한 걸음 물러나 일상을 돌아보는 경험이다. 그러나 강진은 공백이 많았던 여행지였기에, 반대로 여행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서울로 올라와 죽지(竹紙)를 펼쳤고, 비어있는 공간을 마주했다. 품어 온 모란의 공백을 붓끝에 실어 내렸다. 이듬해의 모란을 기다린 다. 그때는 그 질박한 아름다움을 보고 돌아와, 생생한 풋향기를 종이에 가득 담아야겠다. ---「김영랑」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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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글, 한 폭의 수채화
눈으로 밟는 작가들의 발자취 어린 시절부터 시와 소설을 좋아했던 저자는 가방에 꼭 시집과 소설책 한 권을 넣고 다닌다. 만날 수 없는 작가가 그리워 책 한 권과 스케치북 하나를 들고, 작가의 집으로 떠난 여행. 작가의 초상의 눈빛엔 우수가 어려 있고, 유품과 친필원고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작가의 눈을 빌려 바라본 정경에서 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었다. 여행을 마치면 항상 스케치북을 펼치고 그림을 그렸다. 여행지의 정경, 작품의 배경 등이 일러스트와 수채화로 탄생했다. 『작가의 집으로』를 읽으면 누군가는 분명히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분명히 작가의 오랜 작품들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질 것이다. 시인과 빨간 우체통, 봉평의 메밀꽃 작가가 남긴 스토리들 유치환 시인은 어린 시절 이사를 해 경남 통영과 거제, 두 곳에서 시인을 기념하고 있다. 두 문학관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세워져 있다. 평생 사랑하는 연인에게 5천 통의 편지를 쓴 유치환 시인을 기리기 위해서다. 시인의 사랑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행복’ 중)와 같은 작품으로 피어났다. 박인환 시인은 밀린 외상 술값을 내라는 주인의 성화에 즉석에서 주인의 러브 스토리를 소재로 시를 지었다. 이어서 노래까지 만들었는데 주인이 외상값을 안 받을 테니, 그만하라고 말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1970년대 큰 인기를 끈 시 「목마와 숙녀」의 탄생 비화다. 강원도 봉평의 메밀꽃을 보면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의 정경을 보며 소설 속 주인공이 걷던 길을 떠올려본다. 평범한 길과 집도, 물레방앗간과 수숫단도 작품의 배경이 되면서 특별해진다. 바다 너머의 해외 작가들을 만나다 ‘작가와의 동행’을 위한 안내서 동시대를 같이 산 작가들의 발자취를 밟으며, 바다 너머로 발을 넓혔다. 소설 『빙점』으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랑 받은 미우라 아야코, 천재 낭만 시인이라 불리며 짧은 생을 살다간 이시카와 다쿠보쿠, 아름다운 바다 너머로 슬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를 작품에 담은 하이타니 겐지로, 일평생 자기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았던 헤르만 헤세까지. 그 발자취를 동행하며 서정적인 문학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