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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ls Udd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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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남겨둔 개 사료도 다 떨어져 이제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을 고양이에게 내줬다. 소시지, 닭고기, 생선 그라탱. 물론 고양이는 다 먹었지만 뭔가 좀 머뭇거렸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참치 냄새가 나는 건사료 한 봉지를 사 들고 왔다. 식료품점의 잘 아는 계산원 앞에 고양이 사료를 놓으면서 조금 멍청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 사료를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이미지와도 들어맞지 않았으므로 해명할 필요를 느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 헛간에 눌러앉았는데 가여워 보이더라고요.” “그럼 그냥 거기 쭉 있겠네요.” 여자는 스스로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래 쭉 있겠지. 살짝 한숨 쉬며 생각했다. --- p.18~19 여신 바스트 또는 바스테트는 원래 암사자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집고양이로 변모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걸 퇴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스테트는 고대 이집트인의 가슴속에서 사랑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여신의 그림과 동상이 다수이고 일부 그림에서는 한배에서 나온 아기 고양이에게 둘러싸여 있다. (…) 고고학자들은 이 여신의 이름으로 봉헌된 여러 신전에서 고양이 미라 수만 구를 발견했다. 집고양이가 죽으면 가족들은 상실감을 느꼈고 돈이 넉넉히 있으면 집안의 귀염둥이를, 아니면 집안의 수호 여신을 방부 처리해서 ‘고양이 묘지’에 묻었다. 이집트의 고양이 문화는 매력적인 면이 있다. 고양이는 별다른 잡소리를 안 내는 평화롭고 현실적인 동물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진중함도 갖추었다. 우리 귀여운 나비마저도 집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를 잘 찾아내는 면모가 여신답다. --- p.34~35 고양이는 왜 골골댈까? 어떻게 하는 걸까? 고양잇과 동물은 모두 그르렁거릴까? 호랑이가 그르렁댄다면 그 소리는 마치 콘크리트 벽을 억지로 밀고 들어가는 전기 드릴 같겠지. 이런 게 궁금해진 것은 처음이라 자연사에 해박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 친구가 내 질문을 누구에게 전하는가 싶더니 결국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동물학 교수와 함께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선 내 질문들에 상냥하게 대답 해주려 했다. (…) 과학은 뭔가 대단히 멋진 점이 있다. 아무리 하잘것없어 보이는 질문이라도 언제나 누군가는 가장 진지한 자세로 훌륭한 과학이 요구하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해답을 알아내려 한다. 과학이 밝혀냈듯이 고양이는 성대에 작은 주름이 여럿 있다. 그르렁거릴 때 바로 이곳이 진동한다. 이 소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모두 낼 수 있는데 마치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을 올리고 내릴 때 모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 p.49~50 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 적도 없고 이제 그 고양이도 떠나버렸다.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어쩌면 행복한 사랑 이야기란 양쪽 모두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에 고마워하며 서로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해 봐도 상실감은 계속 그 자리에 있다. 마음을 갉아먹으면서. (…)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을 사랑하지만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보답을 받지는 못한다고 한다. 기껏해야 믿음을 얻을 뿐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구달은 엄청난 명예를 얻은 듯 자랑스러워하고 만족스러워한다. 내 생각에 나비도 똑같아서 우리는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다. 나비는 천천히 우리를 믿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또 그만큼 나비를 믿지 않는다. 어느 화창한 날에 나비는 다시 사라질지 모르고 그러면 우리는 상실감과 고양이 특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만 끌어안은 채 남겨질 것이다. 그저 이 순간만은 나비가 돌아와서 마냥 기쁠 뿐이다. --- p.63,--- p.72~73 고양이는 웃을 수 없지만 모든 면을 따져볼 때 어쩌면 나비도 내가 털실 조각을 가지고 이리저리 숨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할지 모른다. 꽃이 활짝 핀 절굿대를 정원에서 빙빙 돌리다가 내가 어지러워하는 모습이 들통 나면 약간 거만한 태도로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참 꼴사나워!” 나는 손주들이 어릴 때 놀아주었던 것처럼 나비와 놀아주면서 사냥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를 들어서 나비가 나의 ‘할아버지 본능’을 자극해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84~85 정신과 의사였던 나는 어린 시절에 어땠느냐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자신한다. 흐트러진 어린 시절을 보내면 불안정한 성인이 되어 남들과의 관계에 우유부단해지는 반면에 애정이 넘치는 환경에서 자라면 안정적이고 도량이 넓다. 이런 원칙들이 고양이에게도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싶다. --- p.135~136 언젠가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시인 장 콕토는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데 경찰 고양이 같은 게 없어서 그런 것뿐이랬다. 인간에게 충성을 다할 준비가 된 개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고 덧붙였다. (…)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점점 더 많은 인기를 얻은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니리라. 현대인은 스스로를 집단의 구성원보다는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보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와 쉽게 동일시한다. 주인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이따금 거의 인정하지 않으려는 뻔뻔한 고양이가 강박적으로 우리 비위를 맞추려는 개보다 매력적으로 보인다. 누구든 길들여지기보다는 제멋대로 굴고 싶지 않을까. --- p.157, pp1.67~168 주목할 점은 고양이가 삶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버린다는 것이 아니고 어째서 사람은 그러지 않느냐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잠잘 겨를이 별로 없다. 도무지 쓸모없어 보이기도 하는 온갖 일에 항상 바쁘다. 책을 읽거나 전화를 걸거나 일을 마쳐야 한다. 친구, 친지 또는 직장 동료와 근황 잡담을 하고 사회, 직장 또는 정치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둬야 한다. 잘 차려입고 제대로 먹는 데 돈과 시간을 바치고 최신 유행도 파악해야 한다. 이런, 우리도 시간을 철철 흘려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잖아? 고양이는 이런 걱정거리 없이 잘 산다. --- p.172 나비는 음악에 딱히 관심은 없는 듯싶은데 내가 음악을 들을 때면 자주 딴 방으로 간다. 그런데 어떨 땐 1.5미터 높이 스피커들 사이로 가서 양탄자 위에 눕는다. 말러나 쇼스타코비치가 총알처럼 소리를 쏘아대지만 그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고양이는 아주 느긋하게 잠시 매무새를 가다듬고 웅크린 다음에 쥐 죽은 듯 조용한 방인 것처럼 잠든다. 잠깐 동안 나는 음악을 잊고 놀란 눈으로 나비를 바라본다. 어쩌면 저렇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 시끄럽지만 안 중요한 것들을 개의치 않고 나지막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잽싸게 담아두는 능력이 나는 정말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나 같은 늙은이의 무딘 감각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 p.175~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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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리처럼 고양이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스웨덴 원로 심리학자와 조그만 얼룩고양이가 만났을 때 열일곱 살 무렵 애완동물은 앞으로 절대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 결심을 육십 년 동안 지켜온 노 심리학 교수는 어느 날 정원 창고에 숨어든 길고양이와 맞닥뜨리고, 놀랍고 짜증스럽게도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다. 거리 두기와 길들이기가 반복되는 고양이와의 일상. 정신과 의사였던 저자는 ‘나비’의 과거를 추측하며 재미를 찾고 때로 탄식한다. “따지고 보면 고양이의 심리를 얼마나 분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분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멈출 수 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은 고양이의 의도를 모두 잘못 짚고, 둘의 관계는 상당한 오해를 기초로 한다고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서라기보다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 공동체의 형편도 그렇지 않겠느냐고 슬며시 덧붙인다. 물론 고양이의 심리만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로 인해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돌봐주고 배려해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배려를 받는 것만큼 중요다고 말한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보다 나쁜 일만 아니라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과 맞닥뜨리는 것이 스스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때가 많으리라 본다. 노인은 어떤 습관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나비 덕에 우리는 이런저런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대개는 유익했다.” 고양이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작은 고양이야, 작은 고양이야 길에서 뭐 하니 너는 누구 거니, 누구 거니 이런 염병할, 나는 내 거야. _ 피트 헤인, [스톡홀름 라임]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고양이가 지닌 미덕에 대한 예찬도 빠지지 않는다. 고양이는 충성스러운 개와 달리 독립의 완벽한 상징이다. 동물을 인간이 만든 도덕적 기준으로 바라보던 시대에는 믿을 만한 개에 비해 믿음 없는 고양이가 늘 불리했지만, 이제 시대정신이 바뀌었다.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점점 더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집단의 구성원이기보다는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 싶은 현대인들이 자신을 고양이와 쉽게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인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이따금 거의 인정하지 않으려는 뻔뻔한 고양이가 강박적으로 우리 비위를 맞추려는 개보다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나 길들여지기보다는 제멋대로 굴고 싶지 않겠느냐면서. 또한 고양이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편하게 지낸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삶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버리는데, 어째서 사람은 그러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고양이는 곧바로 ‘지금 이 순간’의 존재가 되는 법을 일깨우는 최고의 교관이며, 미리 걱정하는 법이 없다. 본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질적 차이도 잘 느낀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련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는 고양이에게 꼭 배워야할 덕목이라고 말한다. 괜찮은 것과 더 나은 것이 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더 나은 것을 고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딱히 더 나은 게 없다면 꽤 비참한 상황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시끄럽지만 안 중요한 것들은 개의치 않고 나지막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잽싸게 담아두는 능력이 나는 정말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고양이 작명론 저자는 고양이에 관한 다른 작가들의 생각도 끌어들인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T. S. 엘리엇은 자신의 시 [고양이 이름 짓기(The Naming of Cats)]에서 고양이에게는 세 개의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보통 부르는 이름, 하나는 좀 더 개성 있고 사적인 이름, 또 하나는 고양이만이 아는 이름”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은 고양이들마다 여러 이름을 지어주고 필요에 따라 번갈아가며 불렀다. 레싱의 작명은 몹시 사랑스러워 고양이가 마치 아기처럼 여러 별명을 얻는다. 한편 모든 수필가의 정신적 아버지 미셸 드 몽테뉴는 “내가 고양이랑 놀 때 누가 재미를 더 느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으며,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시인 장 콕토는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경찰 고양이 같은 게 없어서 그런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생물학자 칼 폰 린네는 “고양이와 사람은 원래부터 적대적”이라고 했으며 동물학자 스벤 닐손은 “유럽 들고양이는 새와 물고기를 잡아먹는 ‘위험한 맹수’인데 집고양이도 그런 야생 친척의 성질을 많이 간직했으며 음흉하고 광폭한 성정은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는 이처럼 고양이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의 감동과 철학적 깨달음뿐 아니라, 고양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재미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