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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마태복음 5장 축복|소금과 빛|율법에 대한 가르침|분노에 대한 가르침|간음에 대한 가르침|이혼에 대한 가르침|맹세에 대한 가르침|보복에 대한 가르침|원수를 사랑 마태복음 6장 구제에 대한 가르침|기도에 대한 가르침|금식에 대한 가르침|하늘의 보물|몸의 등불|하나님과 맘몬|배려와 염려 마태복음 7장 다른 사람을 판단|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좁은 문|열매로 앎|너를 알지 못하노라|두 개의 기초 성경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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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겪는 고통을 애통하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통하는 마음에는 위로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삶의 고통에 대해 애통하지 않습니다. 불만과 회한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 마음은 결국 고통당하는 상태를 바꾸려는 것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고통에 처해 불만을 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순화한다는 것은 정말 복된 마음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고통을 불만으로 반사하는 게 아니라 슬픔으로 껴안는 것은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마음으로만 고통을 슬픔으로 껴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나 박해받은 그리스도인이 보인 것입니다.---p.36
구약에서는 누구나 율법을 지키면 된다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말로 주어진 것이니 그 말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으니 예수님을 따라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원래 뜻하는 완성은 말을 지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름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이 주지 못하는 생명을 예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르침으로 주시는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한계입니다. 새 생명을 지니지 못하는 한 세상에 태어난 생명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되는데 결국 세상에 머무는 삶을 보이게 될 뿐입니다. 새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한 세상에 속하여 살 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새 생명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속한 생명으로는 따를 수 없습니다. ---p.74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지만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마음의 염려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마음은 구하는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살게 될 때 세상에 필요한 것은 베풀어 주시는 대로 족하게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자로서 취해야 할 자세라고 들려주는 것입니다. ---p.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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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에 대하여
신약성서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은 ‘산상보훈’이라고 하여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물론이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읽고 이야기하는, 오히려 세상에서 보고 듣는 여타의 가르침보다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가르침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예수의 산상보훈은 이 세상 많은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고. 왜냐? 이 가르침은 듣고 이해하며 이해한 대로 사는 데서 끝나는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듯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이해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핵심인 산상보훈을 들려주며 예수의 관심은 그의 제자들에게 가 있다. 나를 따르는 제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긍휼히 여기는 등 이들 복 있는 자들이 받을 상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생명이다. 세상은 그 상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나 복 있는 자들은 받아 누리리니 그 생명은 자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리라. 산상보훈에 담긴 의미와 그 실천에 대해 말하는 강의와 해설서 등이 여럿 나와 있지만,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묵상집으로서 산상보훈의 가르침이 곧 예수 자신이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쓰여졌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내용, 생명을 주는 그 축복이 오늘 예수 앞에 나아와 산상보훈을 받는 우리에게도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