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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문| Corea인가, Korea인가 1. 우리나라 로마자 표기에 관한 의문점 2. 최초의 Korea 3. Corea의 탄생, Korea로의 변천 |1부| 高麗를 최초로 기록하다 1. 서양인 최초로 高麗를 기록한 카르피니 2. 루브룩의 《몽골 제국 여행기》와 Caule 3.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Cauli 4.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 나온 高麗 5. '카탈루니아 지도'에 등장한 엉뚱한 Caulij 6. 조선 시대 아랍인의 역사책에 나온 高麗 보론|Corea 표기의 어원 ‘高麗’의 원래 발음은 무엇이었나 |2부| 저마다의 발음대로 표기하다 1. 대항해 시대, 다양한 표기가 나타나다 2. 서양 고지도에 등장한 우리나라 표기들 3. 우리나라를 직접 경험한 서양인들 4. 다양하게 표기된 로마자 국호들 보론|서양 지도에 그려진 우리나라 모습의 변천 |3부| Corea가 다른 표기들을 압도하다 1. Corea의 탄생과 어원 2. Corea, 점차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하다 3. 제국의 시대, Corea의 시대 4. 조양 문서에 쓰인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 |4부| Korea의 시대가 열리다 1. Corea, Korea의 도전에 직면하다 2. 대한국의 설립과 로마자 국호 3. 20세기 초, Corea를 압도하는 Korea 4. 일본의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 표기 5. 남과 북의 로마자 국호 Korea 부록 참고문헌 영문초록 글을 마치며 |
吳寅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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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 Corea를 Korea로 바꾸었다?
문득 예전부터 늘 들어왔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국호가 원래는 Corea였는데,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행사 때 알파벳 순서에 따라 우리나라가 먼저 입장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 일본이 Corea의 C를 K로 바꿨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가 Korea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이 말은 역사적 사실일까?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의 로마자 명칭은 Chosen이었고, 우리의 땅은 ‘대일본제국’ 영토의 일부였다. 따라서 우리는 올림픽은 물론이고 어떠한 국제경기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을 내걸고 출전할 수 없었다. 손기정 선수와 같은 조선인들은 일본의 대표로 출전했다. 그러니 위와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 p. 16 루브룩은 왜 고려를 Caule라고 표기했을까? 고려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루브룩은 몽골인이나 중국인으로부터 고려 사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현재 ‘고려’라고 발음하는 한자 ‘高麗’를 ‘gaori’와 비슷하게 발음한다. 중국의 북방계 언어(만다린)에서는 ‘까우리’에 가깝게 발음하고 남방계 언어(칸토니즈)에서는 ‘까오리’에 가깝게 발음한다. 두 발음을 좀 더 빨리 하면 ‘꼬리’로도 들릴 것이다. 그래서 루브룩은 중국 사람들의 高麗 발음을 듣고 라틴어식 철자로 Caule로 표기한 것이다. --- p. 39 하멜이 조선 사람으로부터 직접 듣고 표기한 Tiocenkouk 하멜은 1668년(현종 9) 자신의 표류기에서, ……우리나라가 Tiocenkouk이고 그 이전에는 Caoli였으며 수도는 Sior(서울)이라고 기술했다. 당시에도 순수한 우리말 ‘서울’과 비슷하게 발음했음을 알 수 있는 흥미 있는 기록이다. ……‘Tiocenkouk’의 ‘Tiocen’은 1500년대 후반부터 문헌과 지도에서 나오기 시작한 일본식 Tiauxen, Tiauxem과 다르다. Tiocen은 하멜이 조선에 사는 동안 조선 사람으로부터 ‘朝鮮’이라는 발음을 직접 듣고 표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1590년대 이후 줄곧 사용되어온 Tiauxen 대신 굳이 Tiocen이라고 표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멜은 조선에서 13년 동안이나 머물렀기 때문에, 그렇게 표기했을 것이다. --- p. 129 최초의 Corea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가 Corea로 표기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포르투갈의 조선 선교 책임자 빌렐라가 1571년 예수회의 보르하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 “……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Corea라고 불리는 다른 왕국……”이라는 언급이 보인다. 20여 년 후 Corea로 표기한 지도도 등장했다. 출판년도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 지도는 1590년경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탈디-작자 불명의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는 1555년에 출간된 요드의 세계지도를 다시 작성해 완성한 것이다. 이 지도에서 우리나라의 북 끝이 CHINA로 표기된 중국에 붙은 가늘고 기다란 반도로 그려지고, 그 오른 동해상에 ‘Corea’라는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 pp. 151~152 Core를 모태로 하여 태어난 Corea 1596년 출간된 《린스호턴의 동양수로기》는 Core와 Corea의 상관관계를 포착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의 에는 분명 우리나라가 Insula de Core(꼬레 섬)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저서에 실린 아르놀뒤스 랑그렌의 지도를 보면 Ilha de Corea(꼬레아 섬)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 한 가지, 1596년 《린스호턴의 동양수로기》초판에는 우리나라가 Core로 표기되었던 것이 1599년 라틴어 판에서는 Corea로 바뀌어 있다. 이들은 Core를 하나의 나라로 인식하고 Core에 접미사 a를 붙이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 pp. 158~159 윤치호의 영어 일기에 나타난 Corea에서 Korea로의 변천 C와 K를 혼용하는 미국의 사회상은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윤치호는 초대 미국 공사 푸트(Jucius H. Foote)의 통역으로 근무하다가 1884년 갑신정변 이후 1888년부터 1893년까지 미국에서 체류했다. 이영호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미국 공사의 통역으로 일하던 1883~1884년까지만 해도 문서를 영어로 번역할 때 Corea를 사용했다. 그는 미국에서 머물 때부터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893년 9월까지만 해도 계속 Corea를 사용했다. 그런데 귀국 후인 1898년 6월까지 매년 Korea의 사용 빈도를 조금씩 높여나가다가 1898년 11월부터는 Korea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게 된다. --- pp.207~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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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의도
(1) Corea인가, Korea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는 Korea이다. 1948년 남과 북은 각기 정부 수립을 선포하면서 로마자 국호를 ‘Republic of Korea’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천명했고,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국제사회에서 Korea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출렁이는 와중에 눈에 띄는 현상이 있었다. 한국 팀의 응원단 ‘붉은악마’가 손에 잡고 높이 들어 올린 응원 띠에 ‘Korea’가 아닌 ‘Corea’가 새겨져 있었다. 그들이 부른 응원가도 자세히 들어보면 ‘오 필승 코리아’가 아니라 ‘오 필승 꼬레아’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는 Corea인가, Korea인가? (2) 서양 문헌과 고지도 속에 담긴 1000년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의 역사! 이 책은 13세기 카르피니, 루브룩, 마르코 폴로가 남긴 초기의 기록에서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서양 선교사들의 각종 보고서, 하멜 표류기의 다양한 판본, 마테오 리치 등 서양의 지도 제작자들이 만든 세계지도, 19세기 말 서양 각국이 조선과 체결한 조약문서, 그리피스, 알렌, 헐버트 등 서양인이 저술한 한국 관련 저작과 윤치호의 영어 일기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각종 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의 1000년 변천사를 고찰했다. 대항해 시대를 풍미한 Core, Cory, Coria, Caoli, Corai, Corea 등 각양각색의 표기들이 각축을 벌이다가 17~19세기를 거쳐 Corea로 수렴되는 과정, 그리고 20세기를 전후해 Corea의 C가 K로 변모하는 과정과 그 원인을 역사적으로 고찰함으로써, Corea와 Korea의 오랜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3) ‘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단행본! 그동안 서양인의 한국 인식을 다룬 책들이 꾸준히 번역 출간되어왔다. 다양한 판본의 하멜 표류기들, 집문당의 ‘한말 외국인 기록’ 시리즈(1999~2005), 도서출판 책과함께가 출간한 《스웨덴 기자 이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2005),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2006),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2007), 살림출판사의 ‘그들이 본 우리’ 시리즈(2008~)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부르고 표기했는지를 다룬 책은 없었다. 서양 고지도와 고문헌에 표기된 국호에 관한 논문이나 Corea에서 Korea로의 변천을 다룬 글은 있었지만, 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통사는 없었다. 지은이 오인동은 국내의《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각종 개항기 문서는 물론이고 해외 도서관의 서양 고문헌과 고지도, 한국학 연구 성과들을 두루 섭렵하여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의 역사를 복원했다. 특히 16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한 Corea 표기가 17~19세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다양한 표기들을 제치고 ‘Corea의 시대’를 여는 과정을 치밀하게 분석한 2부와 3부는 어느 전문가도 해내지 못한 귀중한 연구 성과이다. *주요내용 |서문| Corea인가, Korea인가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는 Korea가 아니라 Corea여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사실(史實)에 근거한 논쟁보다는 막연한 추측이 대부분이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해보아야 한다. |1부| 高麗를 최초로 기록하다 13~14세기 몽골 제국이 통합해놓은 유라시아의 여행로를 따라, 루브룩과 같은 선교사들이나 마르코 폴로 같은 여행가들이 속속 중국 땅을 밟았다. 루브룩는 《몽골 제국 여행기》에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우리나라를 각각 Caule와 Cauli로 표기했는데, 이는 중국어 발음 ‘까우리’나 ‘까오리’라는 발음을 듣고 로마자로 표음한 것이었다. 그들이 만약 고려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고려를 방문했다면 아마도 다른 표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2부| 저마다의 발음대로 표기하다 15세기 후반부터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포르투갈을 필두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극동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양인들은 주로 일본과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나라를 접했고, 그러다 보니 高麗의 일본 발음에 따라 표기한 Coray, Corai, Corei 등이나 중국 발음에 따른 Cauli 등이 유행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는 하멜, 카를레티 등 우리나라를 직접 방문하거나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 사람들이 생겨났고, 朝鮮의 우리식 발음으로 표기한 저술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유럽 각국이 자국의 언어 관습대로 표기했고 다양한 창구를 통해 우리나라를 접했기 때문에, 수많은 표기가 혼재하는 양상을 보였다. |3부| Corea가 다른 표기들을 압도하다 Corea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인 선교사 빌렐라가 1571년에 쓴 편지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16~17세기를 거치면서 Core, Coria, Caoli, Corai 등 다양한 표기들과 경쟁을 벌였다. Core라는 표기에 나라 이름 접미사 a가 붙어 파생된 Corea라는 표기는, 19세기 전반에 이르면 우리나라 관련 기록을 담은 서양 문헌 12종 가운데 9종에서 사용될 정도로 대세를 차지했다. 19세기에 본격적인 ‘Corea의 시대’가 열린 것은 당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4부| Korea의 시대가 열리다 Korea는 현재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로마자 표기이다. 하지만 Korea가 서양인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는다. Korea의 팽창은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도 애초에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Corea를 주로 사용했으나, 19세기 말부터 Korea의 사용 빈도를 높여나갔음이 미국 공사관의 공식 문서나 기독교 선교사들의 문헌에서 확인된다. 그러한 여파가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현재 우리나라는 Korea를 공식 로마자 표기로 사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