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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책머리에 사랑의 주유소 개펄 위를 흐르는 상실감 물이 번지듯, 내 안으로 중천中天을 건너는 등빛 미로와 다음 미로 겨울 베네치아 카니발을 위한 속죄 기도가 시작될 무렵 백 개의 섬에서 행불行不! 그래도 조금 나은 베네치아의 더위 비발디의 고아 소년 소녀 오케스트라 바다에 닿는 돌층계, 어서 안아주세요 바닷물이 들어오는 결혼 5백 년 전의 베네치아 컬러로 달이 뜨는 오늘 저녁에 리도 섬의 인파, 사랑은 심장에 베네치아의 폭설이 달콤하기만 했던 연인들 하루 세 번 마주쳐도 세 번 다 다정한 여인들 음식 배달 소포 꾸러미 대가족 베네치아의 눈사람 수상 버스들을 스치며 반짝이는 길 하나가 흰 빨래들과 안개 리도 섬의 흰 공 가난한 연인들의 골목 베니스 영화제, 맨땅에 의자를 놓아둔 극장에 떠오르는 달 당신 없는 골목 장애인 부부의 음료수 가게에 앉아 진정한 베네치아, 유대인 지역 베네치아의 모네 침묵이 아니라면 당신을 산 마르코 콜로세움의 달 흐르는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에서 기다립니다 산 피에트로 광장에서 교황을 보다 성인상 로마엔 밤에 오세요 테르미니 역 뒤쪽의 작은 방 구름을 좋아하는 관점 로마의 시간, 풀코스 나폴리 나폴리 소렌토의 ‘6개월만’ 폼페이에 짓고 싶은 마음 폼페이, 쓰러진 마음의 정류장 다비드 앞에서 함박눈 속의 미켈란젤로 피렌체에서 목판에 그림을 그리며 벽화 토스카나의 이방인 흑백 대리석 주택에 든 날 채석장과 사랑의 문제 피렌체에서 돌을 깎으며 탑, 이렇게 좁은 곳을 보면 당신과 서고 싶고 아시시의 올리브 숲 동그란 지붕창 폐허, 따뜻한 빛깔의 헝겊 한 조각 벽과 제라늄 화분 콘도티 거리의 금붕어 편지 아르마니 진을 입은 여전사 문헌 보관소 쪽 표정 입상에의 욕망 사랑의 정상 당신으로 다 채우기 전엔 성 프란체스코와 키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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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베네치아를 비우는 동안 거기서 당신은 또 내 사랑을 받겠지만 당신이 몹시도 앓던 얼어붙은 밤, 곤돌라를 부르러 다니던 베네치아의 나는 문밖에서 눈사람으로 생을 마감할 것 같습니다.
--- 「베네치아의 눈사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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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의 순수한 감정이란 결국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내게 있어 여행은 숫제 사랑을 따라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여기 사랑, 이라는 숭고함을 생으로 받든 한 시인이 있다. 예서 그의 사랑은 앞서 달려 나가는 빠름이 아니라 뒤쫓아 나가는 느림을 닮았다. 그러니 그 사랑, 커다란 함성일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사랑, 나지막한 읊조림으로 저 혼자 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그럴 수밖에. 이를 풀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할 테다. 더없이 사랑해서 더없이 실이 풀렸다면 홀로 앉아 엉킨 실을 푸는 더없이 외로운 시간은 바로 더없이 사랑한 자의 몫일 터, 이를 자처한 자가 바로 시인 황학주다. 포토에세이 『당신, 이라는 여행』은 시인 황학주가 이탈리아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남긴 사진과 산문의 어우름이다. 그 역시 글머리에 밝혔듯이 이 책은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삶의 풍경을 이야기하려한’ 것도 아니고, ‘문학을 생각한 것도 사람살이를 주제로 다루려는 의도도’ 애초부터 가지지 않고 써나간 글이다. 그렇게 여행지에서의 감정과 마음의 무늬를 뒤따라 가보는 여행의 그 순수를 좇다 보니 오롯이 남은 것이 사랑. 황학주는 말한다. ‘내게 있어 여행은 숫제 사랑을 따라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라고. 사랑의 시작은, 다시 말해 여정의 시작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된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의 흥분과 기대로 사랑이 꿈틀대듯 이탈리아를 통과하는 동안 그가 남긴 기록들은 다만 그 열정만으로도 데이기 충분할 만큼의 뜨거운 온도. 그리고 만난 땅이 베네치아. 그곳에서 그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음을 느낀다. 경험의 여유, 안도. 그러나 이도 너무 짧았던가. 결국 그의 발이 찾아간 곳은 아프리카였으니까. 총 3부로 나누어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프리카로 각각의 장을 두었던 데는 이렇듯 이유가 있었다. 사랑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라는 커다란 비유에 빗대기에 아주 적절했으므로. 그래서 ‘베네치아에서 늘 오래 묵었다’ 고 저자는 앞서 고백했을 것이다. 이는 한순간도 빠짐없이 사랑으로 가 닿았다는 그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려니. 무엇보다 이 책은 황학주를 비롯해 그와 자주 여행길에 올랐던 이상윤, 박태희, 오지혜, 드니스 맥길의 사진이 함께 하여 그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전체적인 통일성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다양한 시선이 결합되어 한 권 속에 여러 권의 책을 보는 듯한 묘미가 개성이라면 또한 개성이겠다. “현관문을 밀자 등빛들이 중천을 건너고 있습니다. 10월 24일, 베네치아의 밤은 쌀쌀해서 사랑은 온몸에 돋는 소름이 말한 대로입니다. 나는 으스스 떨리는 발걸음으로 광장을 달렸지요. 모든 길은 광장으로 통해서 뒷골목을 이루던 사랑들도 광장으로 나온 밤입니다. 보랏빛 가로등과 조명 불빛 속에서 다섯 갈래 골목이 걸어가고 열 갈래 골목이 옆으로 누운 밤입니다. 당신은 몸살 기운과 생리통으로 가장 아름다워지고, 예전에 산 산 마르코 대성당의 과수원이었던 이 자리에서 유일한 나의 헌혈자, 사랑의 과일, 가장 싱싱한 시골뜨기. 나는 좁고 번잡한 골목의 한 약국에서 영어로 약을 삽니다. 물으면 달님이 아프니 약을 달라 하지요. 그 밤 사랑은 앓으며 새로운 골목을 멀리멀리 안은 것일 테지요.” -「중천을 건너는 등빛」중에서 그러나 오래도록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이처럼 시로 빚은 것 같은 황학주의 문장이다. 여성보다 더 예민한 촉수로 여성을 만지고 어르고 안는 섬세한 손가락이야말로 황학주만의 유별난 특기이겠다. 닭살이 돋는다면 어떠랴.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지면 어떠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 그 얼굴인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