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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평 1934년
식민지 시대 한 지식인의 일기
살림출판사 200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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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역자 서문
제1장 1934년 일기
제2장 1934년 사설
부록 1934년 일기 원문
색인

저자 소개 2

文一平, 본관:남평(南平), 호:호암(湖巖)

1888(고종 25)∼1936. 사학자·언론인.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호암(湖巖). 일평은 자(字)이다. 평안북도 의주출신. 천두(天斗)의 아들이다. 1905년 유학을 떠나 일본의 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서 이광수(李光洙)와 같이 공부하였다. 1911년 정치학 연구를 목적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다.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주로 상해(上海)의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생활하였다. 중국신문사 대공화보(大共和報)에 근무하면서 논설을 쓰기도 하였다. 홍명희(洪命熹)·조소앙(趙素昻)·정인보(鄭寅普)와 함께 생활하면서 교학하였다. 역사 연구는 주로 1930년대
1888(고종 25)∼1936. 사학자·언론인.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호암(湖巖). 일평은 자(字)이다. 평안북도 의주출신. 천두(天斗)의 아들이다. 1905년 유학을 떠나 일본의 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서 이광수(李光洙)와 같이 공부하였다.

1911년 정치학 연구를 목적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다.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주로 상해(上海)의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생활하였다. 중국신문사 대공화보(大共和報)에 근무하면서 논설을 쓰기도 하였다. 홍명희(洪命熹)·조소앙(趙素昻)·정인보(鄭寅普)와 함께 생활하면서 교학하였다. 역사 연구는 주로 1930년대에 이루어졌다. 일제의 우리 나라에 대한 정신적·내면적 침략이 갈수록 심화되어 국학 연구가 밑바탕에서부터 흔들리던 시기에 역사 연구를 통해 언외(言外)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1888.5.15~1939.4.3 한국의 사학자 겸 언론인. 「조선일보」 편집고문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국사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 많은 논문을 집필하였다. 저서에 『조선사화』, 『호암전집』, 『한국의 문화』 등이 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03년 5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2005년 6월에는 독립기념관에 그의 어록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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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행정학과와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다. 2008년 4월부터 1년 계획으로 일본 와세다대 외국인연구원으로 한일관계를 연구 중이다. 학술서 『세종시대 ‘가’와 ‘국가’』, 대중역사서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을 출간했고,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의 광복, 광복의 역사』(공저), 『조선일보 사람들-일제시대편』(공저) 집필에 참여했다. 논문으로 「조선초 개국주도파와 개국후 참여파의 정치사상적 갈등: 정도전과 하륜을 중심으로」, 「조선초기 변계량의 시대인식과 권도론」, 「세종시대의 정
고려대 행정학과와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다. 2008년 4월부터 1년 계획으로 일본 와세다대 외국인연구원으로 한일관계를 연구 중이다. 학술서 『세종시대 ‘가’와 ‘국가’』, 대중역사서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을 출간했고,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의 광복, 광복의 역사』(공저), 『조선일보 사람들-일제시대편』(공저) 집필에 참여했다. 논문으로 「조선초 개국주도파와 개국후 참여파의 정치사상적 갈등: 정도전과 하륜을 중심으로」, 「조선초기 변계량의 시대인식과 권도론」, 「세종시대의 정치: 가와 국가의 긴장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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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45쪽 | 510g | 153*224*30mm
ISBN13
9788952209412

출판사 리뷰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의 대가 문일평의 내면과
1930년대 시대상을 볼 수 있는 희귀 자료


호암(湖巖) 문일평(1888~1939)은 “신채호가 제기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여러 문제들을 진전시켜, 민중지향적인 민족주의 역사학으로 발전”시킨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자이다. 그는 조선글(훈민정음)의 창제를 조선심(朝鮮心)의 결정(結晶)으로 보는 등 우리 문화적 요소를 중시하였다. 이는 ‘혼’이나 ‘얼’과 같은 정신주의적 면모를 강조한 당대의 여타 사학자들과 괘를 달리하는 그의 특징적 시각이다. 또 민중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였고, 언론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역사 관련 글을 남겼다. 또한 대중을 상대로 한 많은 강연을 통하여 한국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문일평은 1933년 평북 정주의 금광왕 방응모(方應謨)가 조선일보 경영권을 인수할 때 입사하여 타계할 때까지 조선일보 편집고문으로 활동하였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일평의 1934년 일기에 조선일보에서 일한 내용, 조선일보와 관계한 인물들의 다수 등장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공부를 잠시 멈추고 언론인으로 활동한 것은 가계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이 시기부터 문일평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바탕으로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문일평의 1934년 일기는 한 중국인 골동품상이 갖고 있던 것의 복사물을 저본으로 했다. 원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기에 현재로선 유일한 원본인 이 복사물은,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잘 알려진 문일평의 생활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일기에는 이광수와 홍명희는 물론 김성수, 안재홍, 정인보, 한용운, 백낙준, 이병도 등 당대 언론계와 학계의 최고 지식인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 자료를 통해 문일평이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며 시대를 살아갔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문일평이 평소 관심을 두고 보았던 서적들, 신문에 사설과 연재물을 쓰기 위해 참고한 책들도 상세히 적혀 있어 문일평 연구의 필수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여기에 당시의 언론탄압 분위기와 생활품의 물가 등 시대상과, 매일매일의 날씨도 기록되어 있어 1930년대의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소중하게 쓰일 것이다.

시대의 증언자 문일평
1934년 4월 17일자 일기를 보면 문일평과 김성수의 만남 이야기가 나온다.

두계(이병도)를 찾아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인촌(仁村) 김성수를 만났다. 인촌이 내 손을 쥐고 탄식하면서 어찌하여 세상일이 여기에 이르렀는가,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끝내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촌의 뜻은 최린(崔麟) 등을 넌지시 가리켜 말한 것이다. - 67쪽

당시에는 민족지사들이 변절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변절의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 세태를 보는 이의 심정이 착잡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최린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이런 그가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제민족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의)를 내세우며 친일파로 변절하였으니, 민족주의 역사학자 문일평의 마음이 “애석”하지 않을 리 없었다.
심각한 언론 탄압도 묵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1월 13일자 일기를 보면 「동아일보」 조석간이 단군 기사 때문에 압수당했다는 구절이 나오고, 사설이 사내에서 압수당하는가 하면(3월 18일자), 외국 관련 기사가 정당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압수당하기도 한다(5월 3일).

역사학자 문일평
그는 각종 문헌을 비교해 오류를 바로잡는 역사학자로서의 임무를 잊지 않는다.

『승정원일기』에서 통리기무아문이 고종 18년 신사 정월에 창설되었다는 기사를 뽑아냈다. 그렇다면 『조선사강좌』의 ‘중앙과 지방제도’에서 고종 17년 경진에 설치되었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대동기년』과 최육당의 『조선사』에서 고종 19년 임오라 한 것 또한 잘못이다. 전자는 1년이 앞섰고 후자는 1년이 뒤졌다. - 2월 6일자(35쪽)

문헌고증을 중시한 역사학자답게 그날그날의 날씨를 기록했음은 물론, 당시의 물가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일기에 따르면 괘지는 100매에 16전(2월 5일), 책상보 한 장에 1원 80전(3월 2일), 가습기를 설치하고 식대를 포함한 병원 하루 입원비는 1원 45전(3월 16일), 만년필 한 자루는 4원 20전, 잉크 한 병은 28전(4월 6일)이었다.

생활인 문일평
문일평의 생활은 풍족하진 않아 보인다. 2월 26일자 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오늘은 봉급일이다. 태반이 공제되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전에 쌀과 땔감 값 빚진 것을 아직도 완전히 갚지 못했다. - 43쪽

급기야 며느리(혜경이 어미)가 금가락지를 팔아 경도(京都)에서 유학하고 있는 남편(문일평의 아들 동표)에게 학비를 부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2월 27일). 4월 2일에는 문일평이 지인에게 손수 며느리의 취직을 부탁한다. 5월 29일자 일기에서는 “내가 빚지는 것에 단련되어 있음이 이보다 심할 수 없다.”라 기록하는 등 가난에 대한 깊은 자괴감을 보이고 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맘대로 사지 못하고 남이 책을 사면 자기가 빌려서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7월 6일).
그럼에도 술은 무척이나 즐긴 모양이다. 일기 곳곳에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하루(3월 10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집에 돌아와 모두 토해내고 다음날(3월 11일) 몸져누워 회사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가계에 대한 문일평의 태도가 어느 정도는 이중적인 것이, 5월 30일에 돈 50원 때문에 막심한 곤란을 겪고 있다 적었는데, 6월 7일에는 구두 한 켤레 값으로 9원을 내고 양복 값을 선불로 10원이나 지불하였다. 이후 일기를 보면 형편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닌 듯한데, 이런 지출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궁금하다.
아비 된 이의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3월 27일자 일기를 보면 경도(京都)에서 유학하는 아들 동표의 성적이 매우 양호(평균 76점)하고 1, 2학년 때보다 나아지는 것에 기쁨을 표하고 있다. 딸이 파혼 당하자 밤잠을 설치고(9월 23일), 파혼의 당사자인 김순호를 불러 훈계한 후 사람됨이 매우 불량하다고 기록(9월 25일)했으며, 남에게 김순호의 흠을 꼬집는(10월 6일) 범상함을 보인 후, 결국 김순호를 불러 야단치고 사과를 받기까지 이른다(10월 16일).
그는 사람됨이 호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기를 보면 시대를 고민하는 꼬장꼬장한 선비의 모습이 그려지나, 자기의 소신을 호쾌하게 밝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 일기가 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을까?

차를 탔는데 정류장 몇 곳을 지나쳤다. 비를 무릅쓰고 내려 돌아왔다. 전차장의 부주의와 불친절이 매우 미운 바가 있다. - 11월 6일자(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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